조금 번역이 애매하긴 하죠. 천사들에게 하신 말씀인지 뭔지 그렇죠? 근데 이렇게 됩니다. 다시 성경을 보세요. 천사들을 이제 히랍어 원문에서 보면 이렇게 되요.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확고하여 되어가 아니고 확고하여 확고하여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그런데 이게 just 정확한 정당한 보음 혹은 정당한 대가를 받았거든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율법을 가르키는 거죠. 율법. 그래서 왜 그럼 그 율법을 천사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그렇게 했느냐? 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지만 하나님 곁에는 항상 왕이신 하나님에 명령을 출납하는 천사가 있어서 그래서 그 천사들을 통해서 그 하나님께서 당신에 말씀을 들려주시죠. 그런데 이 천사가 하나님에 말씀을 들려줄 때에는 항상 하나님에 권위로 들려줍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에 명령을 그대로 전하죠. 그 중에 좋은 예가 어디 나오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그 마리아의 수태에 예고에서도 보면은 하나님에 권위를 가지고 천사가 하나님에 말씀을 전해주는 거죠. 그러니깐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 라는 이야기가 없어도 그래도 하나님께서 당신에 명령을 인간에게 전하실 때에 천사들을 통해서 하시는 거죠. 그래서 율법 그 자체를 천사들에게 천사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이 이렇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그 율법이 견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견고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견고하게 됐다. 그런 뜻인데. 그건 아니고 그렇게 주신 율법이 확고했다. 그러니깐 무슨 뜻이냐? 사람에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서 법이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을 통해 주신 그 율법에 말씀이 확고했다. 사람에 의해서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이고 상황에 따라서 고무줄처럼 이렇게 늘렸다 저렇게 늘렸다 하면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확고했다 이거죠. 확고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은 좁은 길을 걸어가는데 가상 자리에 칼날이 서 있으면 사람이 그 칼날을 피해 가야지 그죠? 좁으니깐 그냥 칼날에다가 몸을 댄다고 그러면은 그 칼날이 그 사람을 비켜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확고하였다. 움직이지 않고 견고 하였다. 그 이야기거든요. 그렇게 확고하고 견고하게 움직이지 않는 그것이 율법이였고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칼인 율법에 돌격해서 부딪히는 것과 똑같다 이거죠. 그러니깐 인간에 뭐에 의해서 잣대처럼 이렇게 막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이거죠. 그 뜻이 그 의미가 바로 견고하게 되어 그 뜻이다. 천사들을 통해서 주신 그 율법이 확고해서 움직이지 않고 확고해서 그래서 그렇게 범죄한 사람들 사람이에요 그래서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도움을 받았거든 아직까지도 공병전이라는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한자면 한자를 써 놨을 텐데 한글로 이렇게 해놨어요. 그래서 어떤 히랍어 성경을 찾아보면 just입니다 just. 그래서 정당함 응분의 직역을 하자면 은 그렇게 되겠죠. 범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응분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면 응분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면 그러니까 우리들이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 뭐냐 하면 율법을 어겼는데 거기에는 범죄와 불순종이 있었는데 그 범죄와 불순종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셨다 그런거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죄를 다루시던 방법이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에 율법을 하나님이 하나님에 백성들로 하여금 이렇게 살아라 하는 법이였는데 그 법을 고의적으로 어기거나 혹은 그 법에 순종치 않게되면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자면 확증하신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치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그런 마음을 가진 존재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시고 그리고 그에게 그 범죄와 불순종에 어울리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셨어요. 작은 범죄는 작게 대응하시고 큰 범죄에 대해서는 크게 대가를 치르게 하시면서 그러면서 그 하나님에 공유로우신 성품에 따라서 그 백성들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들을 훈련시키셨다 이런 것이죠. 사도에 이야기는 지금 뭘 말하고 싶은 것이냐면 결국은 구원 얻지도 못하고 그죠? 율법을 통해서 구원 얻을 수 없었잖아요. 근데 하나님이 지키면서 살라고 주신 그 율법을 어겼는데도 그 시대 사람들이 정당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라고 할 것 같으면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구원을 하찮게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치고 않고 또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에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것들을 정확하고 파악하고 그대로 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겠느냐? 생각해보라 라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들이 오늘도 그 얘기를 조금 하려고 합니다만 오늘날 은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운동처럼 번지고 있거든요. 여러분들이 읽어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필립 얀씨라고 불리는 작가가 놀라운 하나님에 은혜라는 책을 썼죠. 그로부터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에 은혜에 대한 광범한 탐구가 있고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운동화 시켜서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죠. 뭐 다 그럴수 있죠.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니깐. 근데 이 교회 역사를 보면 항상 기독교에 진리가 균형있게 전해져야지 어느 한면을 극대화 시켜서 전하면은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러니깐 오늘날 사람들이 죄에 대한 생각이 매우 약화되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결국은 뭡니까? 죄에 대한 생각이 매우 약화되어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은혜만을 강조하고 그 은혜에 대한 인간에 책임을 균형있게 강조하지 않으니깐 그러니깐 죄 자체를 그저 하나님 앞에 유감스러운 정고 그러고 좀 뭔가 나를 좀 불편하게 하는 정도 생각을 하지 해석을 안 한다는 거죠. 더군다나 불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거 그렇게 심각한 죄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불순종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못 받게 하는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막을 수 없지만 서도 그렇게 때문에 우리에 인생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정도로 소극적으로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러면 그런 생각들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에 대한 공정한 생각이냐? 그건 아니거든요. 잘못된 거라 이거죠. 그러면은 그런 것들이 잘 못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이거죠.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그거거든요. 율법에 시대에는 그 율법을 어기고 그 율법을 올바로 지키지 않고 범죄하고 불순종하면 바로 칼이 들어와요. 그리고 하나님에 심판이 들어왔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정말 그런 하나님에 은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고 정말 하나님이 주신 그 큰 구원에 놀라운 은혠데 그렇다면 율법보다는 더 감사한 것이 아니냐 우리들이 받은 구원이. 율법을 통해서는 겨우 죄를 깨달을 뿐이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걸 알고 가슴 아파 할 수 있을 뿐인데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구원은 값없는 하나님의 은사로서 우리가 그것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 아니냐 그거죠. 그렇다면 그렇게 마음껏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고 할꺼 같으면 우리들이 얼마나 더 그 구원을 감사하고 하나님에 뜻대로 살아야 되는지 생각해 보라 이거죠. 근데 그런 구원을 하나님 앞에 등한이 여기고 하찮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에 영혼에 어떤 좋은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 생각해 보라는 거죠. 율법을 주셨을 때도 인간에 그런 복종과 순종을 하나님이 기대하셨다면 그 죄라는 인간들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은혜로 그 구원을 주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도록 힘써야 되겠느냐?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서 그 두 가지를 함께 새겨. 함께 새겨야 됩니다. 뭐냐 하면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구원에 은혜가 율법을 받았던 이스라엘백성들에 축복에 비해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인가 그것이 첫 째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그런 놀라운 하나님에 은혜를 우리들이 받았으니깐 최소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 구약에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힘 썻던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감사하고 힘쓰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느냐? 그때 그 안에 하나님과의 생명에 교제가 있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이 어려운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신령한 은혜와 힘 능력 이런 것들을 공급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