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제 여기에서 천사보다 뛰어난 인자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누가 어디서 증거하여 가로대 이게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요 당시 그렇게 들고 다니는 성경책이 없었죠. 그렇게 책을 엮을 수 있는 기술이 안됐고 좀 이렇게 종이가 이렇게 사용되지 않을 때고 그때 겨우 있는게 파피루스였거든요. 갈대 잎을 횡으로 놓고 풀칠을 해서 다시 종으로 놓고 풀칠을 해서 횡으로 놓고 풀칠을 해서 종으로 놓고 해서 오늘날 합판처럼 만드는 거죠. 거기에다 인제 열매 같은거나 이런 것들을 짓쳐서 염료로 만든 잉크로 쓰는 거죠. 근데 부스러진단 말이죠. 그러니깐 성경하나라고 하면 아마 한그루마 될 정도로 구약만 해도 그렇게 엄청났고 그게 아니면 그다음에 이제 더 부자집 사람들이 쓰던게 양피지 였단말이죠 양피지. 그러니깐 양피지는 두루마리로 되어 있으니깐 그건 뭐 한없죠. 한 리어카 실어도 구약이 안 될 정도니깐 그렇게 가지고 다닐 수가 없었죠. 설교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옆에다 펼쳐놓고 쓸 수 있는 상황이 안됐죠. 그러니깐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시편에서 보긴 봤는데 지금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잘 안나는 거에요. 그러니깐 어디에선가 일렀으되 그러면서 이제 나오는 거죠. 그래서 구약에 이런식으로 인용되는 구절들이 구약하고 차이가 나는 거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기억을 더듬어 갔기 때문이고 그리고 당시에 헬레니즘 시대니깐 그 히랍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언어는 그 히랍어였어요. 헬라어죠. 코인에 헬라어. 그 헬라어로 된 성경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는 구약에 원래 성경인 히브리 성경보다는 그 칠십인 이야기라고 해서 구약성경을 히랍어로 번역한 것이 있었어요.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빨랐거든요. 그러니깐 그 성경에서 인용을 하니깐 아무래도 번역하다 보니깐 좀 차이가 날꺼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데서 오는 차이점들이에요. 근데 거의 정확하게 인용을 하고 있죠. 그죠 그래서 뭐냐 그랬냐면 시편 6편 시편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8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건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이거는 이제 사람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리고 인자가 무엇이건데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이게 결국 이거는 사람에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는 건데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여기서 권고한다 라는 말은 찾아오신다 그런 얘기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깐 이렇게 잘 살아라 그렇게 권고한다 라는 뜻이 아니라 한자 성경을 보면 달라요. 그러니깐 이거는 히브리말로 바카드인데 방문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권고한다 라는 말이 긍정적으로도 쓰이고 부정적으로도 쓰이죠. 여기선 긍정적으로 쓰였지만 주께서 권고하시는 날에는 너희들이 망한다 이럴 때에는 주님께서 오시긴 오시는데 심판을 위해서 오시는 거죠. 그러니깐 양면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권고하신다라는 이야기는 인자를 사람이 무엇이건데 저를 생각하시고 그게 생각하신다는게 깊이 사랑하시고 관심을 갖으신다라는 거고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주님이.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인자를 말하자면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역사해주시는 그런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하면 저를 잠깐동안 평소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그러죠. 잠깐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거는 언제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 때에 하늘에 영광을 감추시고 그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때문에 사람에 몸을 입고 참 사람으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천사들보다 못하신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어떻게 해요? 예수님이 계세말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에 도움을 받으면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모든 면에서 천사들보다 못한것 처럼 여겨졌는데 그것은 육신을 입고 잠시 이 세상에 계시고 마지막에는 자기에 몸을 화목 제물로 드릴 때까지만 그러했고 또 실질적으로 천사들보다 못했다라기 보다는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신성을 인성 밑에 감추시는 동안에만 사람들 보기에 그 분이 천사들보다 훨씬 못하다고 여겨졌을 뿐이지 사실 그러한 것은 아니였다 라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나중에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잠시 그런 일들이 있고나서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 주시는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신 것이죠.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셨느냐? 결국은 뭐냐하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에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그 공로 때문에 이렇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그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심으로써 이제 이 성자가 천사들과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피조물에 통치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죠. 그게 뭐냐면 하나님이 이 인자를 권고 하시는거 그것이 사람이 무엇이건데 저를 생각하시며 라고 연관되어지는 이야기는 뭐냐면 하나님이 인자를 권고하시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죠. 왜 자기에 외 아들을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셔야 했어요. 보내신 하나님이 끊임없이 만나주시고 그래서 은혜와 능력 진리와 영광을 충만하게 하셔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그 분을 단지 천사보다 못한 사람으로 알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충만함을 보고 그 분을 통해서 아버지께 나아 갈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죠? 왜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됐죠? 그것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국 사람인 우리를 생각하신 결과라는 거죠. 사람인 우리를 생각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아들에 피를 힘입어서 우리를 당신과의 화목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신 것이죠. 그러니깐 사람이 무엇이건데 저를 생각하시고 인자가 무엇이건데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이 두 가지가 함께 엮어 있는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성자를 이 세상에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내려 보내시고 그리고 그 성자를 버려도지 아니하시고 끊임없이 권고하시는 하나님에 그 은혜를 보면서 인자를 향한 사랑뿐 아니라 그 인자로 말미암아 구속받을 우리 자신에 대한 하나님에 그 놀랍고 크신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에요. 이게 첫째구요 그래서 우리들이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에 그 큰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시고 이건 뭐냐 면은 왕을 삼는 것을 보여주는 대관식에 장면이에요 대관식에. 그래서 자기에 아들을 이제 아버지가 죽던지 아버지가 왕을 양위하고 그리고 아들이 이제 만조백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 왕위 계승식을 갖고 거기에 왕관을 쓰면서 등극하는 장면 그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거거든요. 존귀와 영광으로 관 씌우시고 그 다음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는 거죠. 전자는 영광을 보여주고 후자는 통치를 보여주고. 그래서 그렇게 놀라운 영광을 한 몸에 받으시고 그리고 실제로 주님이 주시는 권위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런 놀라운 영광을 보면서 그 놀라운 영광을 보면서 결국 우리들이 배우게 되는 것은 뭐냐 하면 성자가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사람이 흔히 빠졌던 천사를 숭배하던 그런 사상을 염두해서 보면 그런 천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정말 한 없는 영광을 한 몸에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게 그런 뜨겁고 정말 찬란하고 놀라운 영광을 한 몸에 지닌 것을 보여주면서 그러면서 영광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도 나중에 이처럼 아들이 영광을 받으신 것 처럼 우리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들어갈 영광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에 아들이 그렇게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은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는 일이 있었어요. 이게 뭐냐 하면 지상 생애에 부끄러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몸을 입고 겸비하게 낮아지셔서 주님과 영혼을 섬기시던 그런 때가 있으셨어요. 똑같이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면서 우리들이 열심히 잠시 낮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겸비하게 주님을 섬기고 영혼들을 섬기며 그렇게 낮아지게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에 그 영광스러운 높아지심처럼 우리를 그렇게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기대하면서 잠시 이 사는 세상에서 힘들고 고달프고 주님을 섬기기에 눈물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성자 예수도 잠시는 천사보다 못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염두해 두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에 잠시 천사보다도 못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런 삶을 살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걸어가는 그런 자녀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