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러면서 계속해서 예수님에 지상에 생애를 서술해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하는 이야기가 모든 것을 복종케 하셨고 그래서 그 발아래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지만 아직 우리가 복종한 것은 완전히 보지 못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화목 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그 성자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물 아래 모두 복종케 하셨지만 아직 복종하는 그것을 우리들이 모두 본 것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렇게 만물이 모두 성자에 발 앞에 복종케 하셨지만 그렇게 복종케 하신 사실은 언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냐 하냐면은 주님이 이 세상을 재림 주러 오셔서 심판하실 때 그때에 이 세상에 모든 만물이 그 분에 발 앞에 있는 것과 그분이 성불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복종하여 다스리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주님이 다스리시는 것이 나타나지 않는 거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믿음에 눈으로 볼 수 있지만은 그러나 세상에 모든 것들이 그 분에 발 앞에 복종하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 볼 수 있게 되는 때는 바로 성자께서 그렇게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 날에 모든 만물들이 그 분에 발 아래 복종하는 것을 볼 것이라는 거죠. 근데 그때까지는 아직 복종케 하셨지만은 그러나복종하는 그 모든 광경들을 보시지 못하는 것이죠. 보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이제 아직 그런 주님은 볼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그 분에 모습을 우리들이 본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본다 이거죠. 그게 하나에 상징적인 거죠.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이 당시에는 예수님에 생애를 목격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기 때문에 본 사람들 그리고 목격한 일 세대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에 지상에 생애가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는 거죠. 근데 그 모습이 뭐냐 하면 잠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존귀와 영광으로 관 쓰신 예수 그리스도 본다 이거죠. 그래서 비록 이 세상에 계셨지만 그러나 수시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단지 사람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믿음에 눈을 가진 사람은 충분히 볼 수 있도록 그 분에 하나님 되심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에 지상 생애를 본 사람 중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록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온 것처럼 보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언뜻언뜻 드러나는 하나님에 성품과 그리고 이 세상에서 부활하셔서 그래서 다시 하나님에 보좌 우편에 오르시는 사건을 통해서 존귀와 영광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생애에 계신 동안에는 그분이 참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천사보다 조금 못하신 분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로 주님께서 이렇게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천사보다 조금 못한 자로써 그렇게 이 세상에 오시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도록 허락해 주신 그것은 무엇 때문이였습니까? 사람에 몸을 입으신 것은 사람에 몸을 입어야 지만 죽으실 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죠. 예수님은 원래 화목 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죽지 아니하고서는 속죄에 사업을 이룰 수가 없었고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만이 하나님이 당신에 죽음을 통해서 인간과 화해하시고자는 하나님에 계획을 이뤄 드릴수가 있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제물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그리고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이 한 제물로써 죽으심으로써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도모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에 그 성신을 보면서 결국은 마지막으로 죄의 대가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에 고난을 그 인성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인간을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죠. 그러니깐 죽음을 맛 보실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하실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이 인간에 죄를 위해서 대신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그 사건은 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는 우리 인간들에 관점에서의 죽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거죠. 그런 죽음을 위해서 성자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죠. 그러니깐 예수님이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셨다는 이유 때문에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이 천사보다도 못한 자요 그리고 인간에 불우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복음에 깊은 비밀들이 감추어진 것입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사람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고 그리고 그렇게 사람처럼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바로 사람에 몸을 입이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에 계획 이였다 라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라는 그 사실 자체 때문에 우리들은 황공해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고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 자체가 우리 성자 예수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수치요 치욕이요. 우리에게는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건져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에 특별한 은혜가 된다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그리스도 예수에 도성이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리고 주님이 육체에 계실 때에 당신 자신을 화목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하셨다 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이루신 이 화목을 오늘 우리들이 잘 지키면서 주님 앞에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