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상반자를 했는데요. 미혹하는 일이 신자에게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걸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우리에 신앙 그 자체가 정말 체계적인 교리 위에 그리고 사상 위에 놓여져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적인 탐구 이것이 정말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지적인 탐구를 통해 얻게 된 참된 교리적인 지식이 체험을 통해서 진리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갖게 만들어 주고 그렇게 하면서 그 지식 그 자체가 견고하게 자기를 붙들어 주는 그런 변화가 있어야 된다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렇게 미혹한 길에서 돌아선 자는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요.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우선 첫 번째로 사망에서 구하는 것이요. 이 믿음은 어떻게 믿는가 하는 것을 우리자신이 결정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를 따라서 가야 되죠. 그러니깐 달리기 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달리기 하는 트랙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그거 남에 트랙에 들어가서 달리면 실격입니다. 그리고 중거리를 뛸 때에는 얼마를 뛰어야지만 그 다음에 트랙을 넘나들고 맘대로 달릴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어요. 그 안에 규칙을 위반하고 남에 트랙으로 들어가면은 그건 실격입니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실격입니다. 이런 복잡한 규칙들이 정해져 있어서 그래서 그 복잡한 규칙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규칙을 따라서 뛰지 않으면 실격이거든요. 우리들 흔히 그렇게 생각 하거든요. 그저 커다란 골격만 맞으면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믿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아무도 책임져 주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진리가 아닌 올바르지 않은 신앙사상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러분들이 망가지고 나면은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렇게나 배우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신앙에 초기에 성경을 바르게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일평생 그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주 그냥 성경을 보면서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왜곡된 해석을 토대로 줄을 이으면서 신앙에 뼈대가 형성되는 거죠. 안고쳐 집니다. 정말 안 고쳐져요. 그러기 때문에 올바르게 하나님에 말씀을 배우고 그리고 그 말씀의 토대 위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은 어떻게 하냐면 사망이라고 하는 거죠. 미혹되어서 잘 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은 다른 신앙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건 사망이다. 사망이라는 것이 뭘 의미합니까? 눈은 두 가지 점에서 사망이잖아요. 일단 올바르지 않은 길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 길이 참으로 우리를 주님 믿는 길로 우리를 안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망으로 이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항상 믿을 때에는 주님에 어떤 주권적은 은혜를 통해서 믿지만 믿고 난 뒤에는 내가 왜 그것을 믿을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들을 철저하게 설명하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믿는 바가 확실하고 견고하다라는 확신을 가져요. 그래서 지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공격을 당할 때에도 그 공격을 통해서 자기가 믿고 있는 진리가 참 사실이고 확실하다라고 하는 것들을 검증하고 확인하고 다시 확증하면서 점점더 자신이 성경을 올바르게 믿고 있다 라고 하는 그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단지 내가 오늘 성경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그런 직선적인 것만을 가지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진리다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성경은 기록된 이후로 구약에 모세 오경 같은 것들을 주전천오백년경이라고 본다면은 그러면은 약 삼천오백년동안 해석이 되어 왔고 신약은 이천년 가까이 해석이 되어 왔어요. 어떻게 보면 오늘 날 우리들이 택하는 성경에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삼천오백년 길면 삼천오백년 짧으면 이천년 동안 계속 되어온 교회 역사에 성경 해석에 다양한 길들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한 거에 지나지 않아요. 근데 그것이 오류일 수도 있고 참일 수도 있어요. 근데 오류냐 참이냐 하는 것이 역사 속에서 많이 판가름이 났거든요. 오늘날 일부에서 성경을 이렇게 아주 우화적으로 해석하다 그러는데 성경을 이렇게 말하자면 굉장히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해석하는 거 있죠. 예를 들자면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에 비유를 하면 실제로 그랬어요. 어느 교회에 나온 신문으로 거기서 설교를 쭉 했는데 주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입니다. 그리고 엽전 두 개를 주었다고 그러는데 그 두 개가 무엇인지 압니까? 이게 신약과 구약입니다. 그 분은 그것을 어디서 본게 아니라 당신 자신이 해석을 했는데 이미 그렇게 해석한 사람들이 한 천 사오백년 전에 있었어요. 이미. 그리고 그건 벌써 그 계열로 굉장히 두텁게 형성이 되어서 결국 그게 마지막에는 기독교에 정상적인 성경 해석에 틀에서 벗어나서 겉가지로 나가서 이게 잘못 됬다라는 것이 벌써 오래전에 벌써 판명이 된거예요. 이분은 이렇게 해석을 했는데 이게 자기가 어디서 배운게 아니라 자기가 올바르다고 해석을 했는데 결국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은 옛날에 그것이 잘 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판정이 난 거걱든요. 근데 그런 역사를 그렇게 이해를 하면은 이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했다가 저 사람들이 곁가지로 나가서 결국은 성경적인 신앙을 잃어 버렸구나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는데 그런걸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오늘 내가 성경을 들여다 보면서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러면서 어떤 그 잘못된 해석들을 평가 할 기회도 없이 그렇게 배워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거에요.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것이고. 근데 그런 것들이 말하자면은 그런 것들을 모두 배울 수 는 없겠지만 그러나 나름대로 상당한 지식들을 갖추어서 그래서 오늘 내가 믿고 있고 이 성경을 통해서 해석되는 바들이 내가 정말 굳게 믿고 신뢰하는 바다 그런 신앙 위에서 우리들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우리들이 노력을 하면서 우리가 의미 있는 바가 정말 왜 하나님이 진리이고 그리고 왜 이것을 우리가 믿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성경에 진리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사상들은 어떤 점에서 잘못 되었는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이해하면서 그러면서 나아갈 때 우리에 신앙 지식이 견고해지고 미혹에 흐르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미혹하는 사람들은 뜨끈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어차피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신앙생활을 잘 안하는 사람들이니깐 일차적인 표적은 지식은 없고 열심만 있는 사람들이 훌륭한 말하자면은 고기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미혹에 낚시 밥을 던지면 은 덥석 무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에 일생을 망치게 되는 거예요. 그 결과가 뭐냐 면은 사망이다 사망. 그래서 올바른 신앙의 지식과 토대 위에서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통이 증대되는 것이지 올라르지 않은 길을 택하고 나면은 거기에는 영적인 사망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여기에 보면 은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미혹되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뭐냐면 하면 거룩한 삶 이라던지 경건한 삶 이라던지 그런 거 없어요. 그러니깐 무엇인가 종교적인 열정이 있고 그러지만은 올바르지 않은 교리에 터 위에서는 올바른 삶이 구축될 수 없거든요. 그니깐 미혹된 것도 하나님 앞에 잘못된 거지만 미혹된 이후에 삶에 열매들이 얼마나 많이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하겠는가. 우리가 올바른 진리를 믿고 그 진리대로 열심히 살지를 못해도 이 말하자면 많은 죄의 열매들이 맺히는데 하물며 올바르지 않은 길을 확신하고 그 길을 열심히 달려가면서 사는데 거기서 맺히는 열매들이 얼마나 괴상하겠어요. 그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올바로 보여줄 수 있어요? 실제로 말이죠. 저는 그 교회를 열린교회를 하고 나서는 그렇게 뼈아픈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만 예전에 교육자 생활할 때 보면은 교인들이 가끔 이단에 빠지거나 그런 일 있잖아요. 그러면은 그렇게 빠져가지고 잘못된 삶에 열매를 보여주고 나면은 그 집안이 절대로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종교 그 자체에 대해서 아예 질려버렸기 때문에 안 받아 들여. 그러니깐 대게 상당히 기독교에 가까이 왔으면서도 기독교를 절대로 안 믿는 집안이 집안 종류가 대게 둘인데 하나는 뭐냐 하면 이단에 빠진 경우하고 교회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아주 못된 일을 당한 사람들 하고. 그 사람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안 믿으려고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거를 만회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깐 그래서 잘못된 길을 걸어. 그 자체가 뭐 죄 아니에요? 자기가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은 개인적인 내가 말씀 드렸나? 개인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없어요. 그런 게 어딨어. 내 신앙이 모든 사람하고 연관 되는 거지 개인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없어요. 그니까 다 공동체 신앙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신앙이에요. 내가 올바로 신앙 생활하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문제이고 가정에 문제이고 세상에 문제라 이거죠. 그래서 내가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서서 그 빛대신 주님을 드러내고 그래서 그 주님을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아버지 앞에 나와야할 필요를 느끼는 이런 변화들을 불러 일으켜야 되는데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올바른 신앙에 토대 위에서 서야 되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올바른 신앙터 위에 서지 못하면은 그들이 결코 그런 것들을 드러낼 수 없죠. 그렇게 드러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릇된 교리를 택하고 미혹되어서 하나님과는 다른 전혀 다른 하나님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 보여준다 라고 할거 같으면은 그 자체보다 더 큰 죄가 어딨겠느냐 그거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 그 자체가 큰 죄에요.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 그 자체가 가장 커다란 죄 중에 하나에요. 더욱 믿는 사람에게는 현존하는 자신에 존재 그 자체를 통해서 선교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회개해야 할 수많은 죄들을 만들어 내는 것. 주님에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서도 못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처음서부터 올바르지 않은 것을 진리라고 확신하고 그릇된 길로 내 달리는데 그 이후에 맺어지는 수 많은 죄의 열매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우리 교회에도 보면은 좀 이단이라고 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은 뭔가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서 성경을 배우고 교회 바깥에서 활동하고 이러다가 의외로 하나님 인격적으로 만나서 다시 신앙생활을 즐기거든요. 자신들이 뼈져리게 고백해요. 이제는 자신이 잘못돤 방향으로 들어서서 주님을 찾을려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끝임없는 권고함과 끝임없는 괴로움 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는 자기 자신이 올바른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나니깐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시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 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 죄를 덮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른 방식으로 믿지 아니하는 미혹된 사람들 이교도들은 물론이거니와 또 이교도는 아니지만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참된 복음과 신앙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많은 죄 가운데 살 사람들을 하나님께 영광 돌릴수 있는 사람들로 바꿔 놓는 것이에요.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이런 삶을 사는거 그래서 실제적으로 이런 삶을 사는 모든 것들이 믿음이라는 거죠. 야고보 선생이 그걸 이야기. 진짜 살아있는 믿음이 그런 믿음이라는 걸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것으로 야고보서는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