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심심치 않는 논쟁은 이 히브리서를 누가 썼을까 하는 거죠. 바울 서신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인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이렇게 된거 라든지 그런 공통적인데 히브리서에서는 안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히브리서가 사도 바울이 썼다고 볼 수 없다 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나 이제 대부분에 많은 사람들은 이 히브리서가 바울에 저작이라는 사실을 별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면은 머리말은 그렇게 안 되어 있지만 이 히브리서를 쓰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하나는 정통적인 히브리인으로서 히브리 정통적인 히브리인이여서 구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특별히 제사 제도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와 체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여야 하고 두 번째는 복음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서 그 구약에 제사가 예언이 어떻게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 되었는가를 연결 지을 수 있는 복음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럴만한 사람이 사도 바울을 빼놓고 누가 있겠느냐 이렇게 보고 실제로 속으로 넘어가 보면 문체나 이런 스타일이 머리말은 없지만 사도 바울에 편지와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아마 이 글이 사도 바울에 작품이다 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두 번째 견해에 서 있습니다. 근데 이 편지는 히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요.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그들이 히브리인들이 고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이때는 이미 박해가 시작된 때입니다. 그래서 이 커다란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박해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하나님에 아들이시라는 거 그리고 히브리인들로서 자신이 알고 있었던 구약에 모든 증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 이였다 라는 거 그거를 보여 주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제 그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믿고 따르는 가운데 받게 되는 박해와 고난이 잠깐 동안이고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이 믿음과 구원에 축복은 잠깐 받는 박해에 고통보다 훨씬 큰 것이라는 것. 그래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위에 굳게 서라는 것을 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느닷없이 옛적에 여러 모양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모양 여러 부분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여기서 시작되죠.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뭐냐 하면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이미 신약시대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 특별히 인간이 타락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등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죠. 그래서 그 하나님은 당신에 말씀을 통해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보이시고 또 어떻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보이시고 또 구원 얻은 백성들이 어떻게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를 보이시고 그 정도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미래에 될 일을 보이시고 그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을 청취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는 거룩한 능력도 하나님이 함께 부어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깐 이런 원리는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것이죠. 그래도 만약에 우리들이 말씀하는 하나님 앞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지 않는다고 할꺼 같으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알아도 부분적이고 또 미숙한 지식을 소유할 수밖에 없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잃은 자들에게 공급해 주시는 그런 능력 주심도 경험 할 수 없다 이거죠. 우리들이 한번 우리들에 신앙생활을 돌아 보십시오. 우리들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깊이 방황하고 헤맬 때에 그 때에 어떻게 우리들이 참 진리가 어떤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죠?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죠. 죄 가운데 있어서 모두 힘을 잃어 버리고 방황하고 있을 때에 그 뜨거운 하나님에 용서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서란 말이죠. 심지어는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바닥을 헤매는 것 같은 짐승과 같은 삶을 살 때에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성도다운 삶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도 하나님에 말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서 우리 가슴에 피 묻은 칼을 내려 놓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것이야. 만약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구원도 성화도 변화도 능력도 풍성한 삶도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는 거. 그래서 청교도는 말하기를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실상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 마음을 헤아리고 사는 이 착하고 효성스러운 삶이 없다면은 사실상 무신론. 사실상 무신론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다. 두 번째는 뭐냐하면 마지막으로 근데 그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여러 부분 여러 모양이라는 것은 그 선지자들이 하나님에 말씀을 증거했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오셔서 우리 이 세상을 어떻게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지를 말씀하셨는데 모두 말하고 죽은 선지자는 없다 이거죠. 그래서 어느 선지자는 어느 부분을 어떤 선지자는 어떤 모양으로 이렇게 예언을 했는데 그 선지자들에 말씀 전해준 말씀이 하나하나가 모두 성취된 최종적인 그림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당신이 말씀하시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항상 하나님은 당신에 사랑하는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항상 홀로 하나님에 말씀을 듣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당신이 특별히 택한 종들을 통해서 당신에 마음을 전수 시키시고 당신에 말씀을 보내셔서 그 말씀을 들은 사랑하는 모든 지체들이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느끼고 그 하나님의 능력 주심을 경험하고 사죄의 은혜를 체험하게 만드시는 거죠. 오늘날은 이제 선지자들이 없죠. 그래서 지금 우리들에게 말씀을 전해주실 때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지자들이 이미 기록해 놓은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옛날같이 선지자들이 아니면 도저히 하나님에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지는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의 성경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이상 선지자 없이도 우리들이 그 하나님에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고 하면서 신앙생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여전히 이 성경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고 제대로 깨닫지 않고 여전히 이 성경을 뜨겁게 사랑하고 또 이 성경 속에 담겨진 하나님에 그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또 들어도 그것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당신에 종들을 보내서 그 성경을 열게 하고 그래서 그 말씀을 증거하게 하고 그래서 그 말씀에 은혜와 감화를 입어서 수시로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만들어주고 그리고 이 하나님에 말씀을 사랑하고 이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겠다 라고 하는 거룩하고 착한 결심을 불러 일으키시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에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일에 생활과 자신이 이 하나님에 말씀을 탐구하고 읽고 묵상하고 하는 노력들이 하나님에 말씀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와 함께 병행되어 가야되.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풍부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붙드는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