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19일 새벽예배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6)
구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 중에 하나가 멜키세덱입니다. 멜키는 히브리 말에 멜렉 멜렉은 왕이고 멜키 그러면 나에 왕 이정도 되겠죠. 그리고 세덱은 의의입니다. 그래서 의의에 왕 뭐 그런 정도로 그렇게 번역이 되는 건데 멜키세덱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석이 없어요. 딱 한번 나오는데 창세기 14장 보면은 아브람때에 이제 그 소돔이 있고 그랬는데 다른 작은 나라들이 연합을 해서 싸움이 벌어 집니다. 그러는 와중에서 왜 아브라함이 싸움에 말려들게 되냐하면 싸우는 과정에서 소돔에 살고 있던 롯이 가족과 함께 잡혀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깐 인제 아브라함이 소돔왕과 사람들을 도와서 그래서 가서 구출해 옵니다. 전쟁을 하니깐 노획물도 얻었을꺼 아니에요? 그래서 싸우고 이기고 돌아올 때 그때 마중나오는 인물이 있는데 멜키세덱이라는 사람입니다. 살롬 왕이라고 나오는데 하나님에 제사장이라고 나와요 아마 예루살렘에 왕이였을거다 그렇게들 해석을 하고 어떻게 거기에 제사장이 나오는지 그 사람은 그 위에는 어떤 가문을 타고 제사장이라는 것이 내려오게 되었는지 하나님에 제사장이 기능이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해서 명쾌한 해석을 잘 못합니다. 한번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시편에서도 나오고 여기 히브리서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그 멜키세덱은 하나의 전설처럼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인물로서 하나님에 제사장이고 밑도 끝도 없는 제사장이다. 그래서 뭔가 신비스러운 인물로 부곽이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멜키세덱에 반차를 쫒았다. 멜키세덱에 이야기는 거기밖에 안나오는데 그렇다 이거죠. 어떤 면에서 그런 유비가 이루어지냐면 멜키세덱이 밑도 끝도 없이 어느 가문이나 어느 혈통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멜키세덱이 제사장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그래서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것처럼 예수님 또한 분명히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 다윗에 후손으로 오셨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사장에 혈통을 타고 오신것도 아니고 또 무슨 가문이나 이게 그런 것에 있어서 아버지가 대제사장이라든지 가문을 타고 온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단번에 하나님에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에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 몸을 화목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거를 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멜키세덱과 비교하는 거죠. 또 우연에 일치 인지는 모르지만 멜키세덱이 아브라함 일행을 맞이 할 때에 일어난 일이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들을 축복한 것 이였고 두 번째는 그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준비해 나눠 줍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면서 그러면서 당신에 권한에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과 상당한 관계가 있느거 이렇게 되고. 그 다음에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십일조를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에게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 났거든요. 이것도 예수님과 아주 묘한 유비를 이룬다 이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멜키세덱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것을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겁니다. 뭘 이야기 하다가. 아무나 대제사장이 되는게 아니다. 아론에 자손들만 될 수 있는 거고 그랬던 것처럼 구약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셔서 넌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널 낳았도다. 이렇게 하나님에 아들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단번에 제사를 드리는 속죄의 효과를 가져오는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이였기 때문에 선택하신 분이였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될수 있었다. 그거를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예수님이 매우 특별하신 분이로써 주님에 선택하심을 입어서 하나님에 자녀 하나님에 아들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를 드려 주시는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이죠. 그분 이후에는 누구도 이런 일을 위해서 선택받은 사람도 없고 또 그 선택을 받기에 적합한 사람도 존재하지를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았고 또 실재로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제사장 직분이 매우 특별한 것이였고 그리고 이 대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자기에 몸을 버리신 그 희생적인 속죄에 제사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 앞에 이르는 보좌에 이르는 산 길을 얻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죄인인 우리들이 장시간이나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려서 그 속죄에 공로를 의지해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이름을 부르고 용서를 빌수 있는 그런 특별한 은혜를 우리들이 입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 일생에 있어서 살아가는 날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영원한 찬송 제목이 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같이 쓸모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시고 그리고 자기를 바치신 하나님에 놀랍고 크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들이 날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 당연한 의무이고 그리고 매 순간 단 한순간도 자신들이 그리스도 예수에 십자가에 공로로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에 십자가에 공로로 깊이 은혜를 입어서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속죄에 은혜를 입은 것은 비할데 없는 영광스러운 특권이고 만약에 이런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런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없었다라고 할꺼 같으면 그러면 아마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인생에 상황을 모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고 누리고 이러는 일들에 골몰하면서 살지만 자주 자주 어떤 분은 매일같이 구원받지 못했으면은 죄 가운데에서 멸망 받을 수 없었던 우리 자신과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구원의 의미를 얻게 된 우리 자신들을 깊이 비교하면서 그러면서 거기에서 한없는 위로와 용기 그리고 은혜를 힘입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