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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의 뿌리는 불신앙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당에 나아온 사랑하는 모든 지체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와 같이 내리시고 그래서 핍절한 영혼들이 없도록 하나님이 복을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이 시간에도 오셔서 우리 각 사람 마음속에 이 말씀으로 역사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실 견고하던 믿음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참 좋겠는데, 야속하게도 우리의 믿음은 늘 흔들립니다. 우리는 우리 바깥에서 들어오는 많은 유혹들, 그리고 커다란 죄악들을 대치하면서 싸우지만, 그러나 사실 정작 우리의 신앙을 허무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당연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이런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허무는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염려는 보이지 않으면서 서서히 우리의 영적인 삶을 고갈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예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는 염려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쓸모없는 낭비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오늘 말씀하시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먹고 입고 마시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문제는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취임을 하기 전에 남북의 전쟁이 나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이고, 경제는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전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의 문제는 물론 전쟁보다는 덜하겠지만 이거는 단순한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IMF가 났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는지 기억하시죠. 요새도 카드빚에 쫓겨서 수많은 사람들이 투신자살하는 것이 80년대 분신자살하면서 빌딩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유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문에 나고 알려지는것만 해도 이러니 그 속에서 죽은자와 다름없이 지옥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속에서 오는 가정과 인간 관계의 파괴와 이런 것들은 가히 단순한 생활의 문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절대절명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생활의 지혜를 발휘하려고 애를 쓰고, 무엇이든지 벌어보려고 애를 쓰고 경제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정말 지혜롭게 경제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돈도 없는데 펑펑 낭비하고 빚 얻어다 쓰고 이렇게 덤벙대면서 살면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어려운 때에는 자신에게 여유가 있어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절제하고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럼 모든 것을 우리들이 깊이 인정하면서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하냐면 그렇게 지혜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물질을 저축하고 그래서 미래에 다가올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대비하고 이런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난하고 있는 것은 뭐냐면 염려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그 염려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면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온전한 신뢰 이것이 부족한 데서 모든 염려가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염려가 그래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면, 내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것이라고 하는 편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믿음이 있으면 뇌를 빼버리고 생각이 없이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아니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뇌도 있고 뭐도 있어서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잘하까 생각도 하지만 그러나 염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잘할까 궁리하고 탐구하는 것과 염려하는 것은 다른 것이예요. 그렇게 탐구하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충성스런 사람들의 본분이예요. 그래서 충성이라고 그렇게 이야기 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동을 하는 것만 충성이 아니고, 생각을 하는 것도 충성이예요. 그래서 게으름은 육체적인 게으름도 있지만, 정신적인 게으름도 있어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부주의한 것, 이런 모든 것들이 다 게으름이예요. 그래서 많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염려가 아닙니다.
저는 교회를 하면서 8월에 접어들면 내년 구상을 하기 시작해서 10월쯤 될때에는 모든 구상을 끝냅니다. 그 다음에 2월이 지나가면 3월부터 서서히 하반기 구상을 시작을 해서 5월쯤이면 모든 구상을 끝냅니다. 그러면 그렇게 구상을 하고 고민을 할 때에는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이고, 어떤 때에는 생각이 복잡하고, 여기에 종이 두장을 놓고 제가 설교 준비를 합니다. 설교 준비를 하는 종이 한 장, 교회 행정 하는 종이 한 장, 설교 준비하다가 떠오르면 이쪽에다 써놓고, 자꾸 잊어버리니까, 기억력을 믿을 수 없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설교준비하다가 떠오르면 여기에다가 쓰고, 길거리 가다가 생각이 나면 핸드폰에 메모를 해 두고, 와서 열어보고 다시 적어놓고, 이걸 하다가 말씀이 생각나면 이리로 가고, 가리숭해서 어떻게 하냐? 저는 저대로 사는 방법이 있어요. 그렇게 10년을 살아왔어요. 그렇게 해서 쭉 해서 이제 그래서 어느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8월 달, 9월 달쯤이 되서는 고민이 절정에 달하죠. 그러다가 10월쯤 접어들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10월 말쯤해서 대충 신년도의 모든 것들이 쫙 그림이 나와요. 그렇게 해 놓고 그다음에 가고, 신년 사경회 끝나고 나서, 2월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3월서부터 또 한달내지 두달동안 고민을 하면서 하반기 계획을 짭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데 어떤 때에는 잠이 안와서 밤을 하얗게 밝히죠. 왜냐하면 잠을 잘 수 없는게 고통 스러워서 잠이 안오는게 아니라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반짝반짝하고 쇠락하게 빛나요. 주일날 한 6시간씩 설교했는데도 밤에 머리가 쇠락하게 빛나요. 그리고 한잠 못잘때도 있어요. 나는 그것이 충성스런 삶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오죠.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쓸 때에 그 문제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기도도 힘이 있지, 뇌를 빼 놓은 사람처럼 생각없이 덜렁덜렁 다니다가 기도하러 무릎을 꿇으면 그때 비로소 생각이 나서 도와 달라고 막 그러고,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되는데되는 데로 살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염려하면 안되요. 염려하면 곧바로 우리의 영성의 손해를 가져와요. 그러면서 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부실할 때에는 항상 이 염려가 많아져요. 그래서 궁리는 많이 하고, 고민은 많이 하고, 정보도 많이 얻고, 사람들과 상의도 많이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염려는 안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 모두 맡기는 거예요. 내가 맡아서 다 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께 다 맡기는 거예요. 나도 다하고, 하나님도 다 하시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항상 하나님께서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직원하나를 뽑아도 그렇게 고민하고 뽑으면 거의 좋은 사람이 와서 봉사를 하게 되고, 교역자 하나를 써도 그렇게 고민하면서 하면 좋은 교역자가가 오고 어려운 문제가 생겨나서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쓰고 숫자를 헤아리고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몇 달을 고민하고 나면 뜻밖의 지혜를 주셔서 기가막히게 해결 방안을 마련하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겁니다. 항상 자신의 지혜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서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고민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염려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면 그 염려가 금방 우리의 영혼의 커다란 무기력을 가져오고, 그리고 머리는 살아서 막 움직이면서 열이 나는데, 과부하가 걸려서 열이 나는데 이 가슴은 식기 시작합니다. 이 염려라고 하는 그 정체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부족한데서 오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가장 잘 돌보아 주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온전한 신뢰와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를 잘 돌볼 사람이 누구예요? 나 자신이예요. 나 자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나 자신이 내 문제를 끌어안고 살려고 할 때 믿음을 따라서 살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온전한 위탁이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냐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맑고 투명해야 해요. 그런데 투명하지가 않아 우선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기울여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쏟아 놓으며, 하나님과의 화목을 계속 증진시키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야 되는데,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가 생겨날텐데 그렇게 안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가니까 수많은 염려들이 떠오르는 것이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경제가 이처럼 어렵고 많이 고통스러운 때에 지혜를 짜고 그 모든걸 궁리하고, 시장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꼭 해야할 일들이예요.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잘될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제한 삶이예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 하나가 혼자서 씩씩하게 사는 것이예요. 하나님은 당신을 온전히 의지할 때에 당신의 백성들을 가장 사랑스럽게 보십니다. 혼자 잘했다고 혼자 인간 승리를 한번 엮어보겠다고 하나님없이 날뛰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냐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투명해야 해요. 죄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의 은혜를 구하고, 그리고 내가 무엇인가 게으른 삶이 있다면 그것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부지런한 삶을 살고,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자유함을 가젹다 주지 않는 그런 그 성령께 불순종하는 그런 삶이 있다면 그것을 진심으로 돌이켜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어떠한 걸림돌도 없이 맑고 명진한 관계가 되도록, 혼탁해지지 않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그리고 그 분께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 때문에 영혼이 손해를 보고, 심령이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 우리 자신의 그 염려와 근심이 하나님께 맡겨지지 않았기 때문인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하나님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것이면 그것이 가시와 같은 고통이라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것이면 제왕의 면류관이라도 그것은 우리를 지옥과 같은 삶으로 인도할 뿐이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의 삶의 모든 기준점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면, 내가 이세상에서 잘 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잘되는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굶으면 내가 굶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굶고 고통을 받는 거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면 사실 우리에게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으셨던 것이 뭐냐며는 하나님 아버지는 너희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귀하게 생각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너희를 정말 귀하게 생각하신다.
산에 같은데 이렇게 가면 꽃들이 있잖아요. 정말 꺾을 마음이 안들어요. 별로 꺽는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 자리에 놓았을 때 제일 예쁘고, 그걸 꺾어가지고 집에까지 오면 벌써 다 시들어 보기 싫어요. 사람도 이런 백합화가 마침 백합화가 폈네. 기가 막히게 백합화가 있네 들의 백합화가 아니지만 이런 백합화를 볼때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요? 그러면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이예요. 꽃 받을 때 신경질 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그런 사람도 있어요. 어떤 남편이 꽃을 탁 사다주니까 부인이 신경질을 확 내며 먹지도 못하는데 왜 그렇게 돈을 쓰냐고 말이지 그건 겉으로 그러는 거지 속으로는 다 좋아합니다. 여러분 오늘 꽃 좀 사가지고 말이죠 남편한테 한점 갖다줘봐요. 아내한테 좀 닭살 돋긴하지만 이 꽃 한다발해서 그래서 여보 내 마음이야 이것 받고 그리고 오늘 사경회 갑시다 그리고 줘봐요. 그러면 너무 마음이 좋죠.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해. 근데 이거는 며칠 피고 나면 시드는 열흘 이상가는 꽃이 없어. 며칠 피고 나면 다 시들어지고 아궁이에 던지는 들풀과 다름없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너희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하는데 그걸 누가 그렇게 기르는지 한번 생각해 봐라. 하나님께서 그러시지 않느냐?
근데 너희들은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귀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하나님이 당신 자신이 직접 흙으로 우리를 빚어서 이 세상에 창조하시고, 그리고 온 창조세계의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당신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깊은 곳에 심어준 그런 피조물이예요.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상관없이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예요. 근데 우리는 그 정도가 아니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죄 때문에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그 형상에서도 하나님을 사귈 수 없는 우리들을 당신의 구원의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게 하시면서까지 값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예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가슴벅찬 감격으로 외치는 것이 뭐냐면,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들도 우리에게 주셨는데, 하나님께 무엇이 우리를 위해서 아까운 것이 있겠느냐? 당신 자신의 영광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그 사실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
염려를 많이 하는데, 마지막에 남은 것은 마치 장작이 한참 타고나면 마지막에 재밖에 남지 않는데, 그 재는 아무짝에도 쓸데 없어서 그리고 털어버립니다. 그래서 제 방에 나무를 때는데 겨울이 되면 그게 일이예요. 장작을 때는건 좋은데 그 재 치우다가 항상 불에 디어, 겨울이 되면 이 손에 지문이 안 남을 정도로 불꽃이 튑니다. 그게 보통 지저분한 일이 아니야. 염려를 많이 하고 나면 같은 생각인데, 염려를 많이 하고 나면 가슴이 숯처럼 까맣게 타서 생기를 잃어버리고, 같은 생각인데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묵상하고 나면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우리의 가슴 속에서 생겨나요. 그 염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냔 말이죠.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염려를 해봐야 너희의 키가 한자나 자라겠느냐? 너희들 자신의 인생을 개선하는데는 그 염려가 아무 필요가 없고, 근심이 아무 도움이 안되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재처럼 까맣게 타버린 가슴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명을 잃어버린 차가움과 사람을 향한 원망과 절망 밖에는 남는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면 항상 이것을 생각해야 해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말 귀한 존재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주시고, 자기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아 구원하셨고, 그것 뿐만 아니죠.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우리의 인생의 많은 날들이 회상하고 보면, 굽이굽이 힘들고 어려운 많은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걸어온 길이예요. 염려도 하고 근심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인생의 그 고비를 넘게하신 분은 역시 하나님이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폭풍우 흑암 속을 헤칠때에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고난의 고비를 허덕이며 넘을 때에도 우리를 붙잡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어요.
(찬양)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없네
정말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왜 버리시겠어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는 때로 신앙까지 팔고, 우리의 영혼까지 죽여 가면서까지 세상에 있는 것들 때문에 염려하고 가슴을 태우고, 그래서 영적으로 깊은 손해에 빠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않으니까 때로는 이 세상에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허락하셔서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주님이 꼭 보여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당하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라 남이 알지 못하는 마음의 많은 근심이 사실은 근심하라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상황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만들어 주신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사랑하게 될 때에 그때에 놀랍게 우리 인생의 이런 문제들이 해결이 됩니다.
가끔 보면 하나님 앞에 건조한 삶을 살다가 도저히 내 힘으로 극복할 수가 없어서 어떤 어려운 문제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립니다. 제가 어저께 아침에 설교하는 가운데 돈이 필요해서 돈 달라고 기도하다가 성령의 체험을 한 것에 대해서 잠깐 간증했습니다만은 인생이 그런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당신 앞으로 인도하시고 당신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는 방법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는 방법만큼이나 무궁무진합니다. 많은 방법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고,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셔서 이 세상에 정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 밖에 없다라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당신이 자녀들이 당신을 온전히 의지하며 당신 품에서 사는 그것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이 두눈을 질끈 감으신 채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시기도 하시는 거죠. 거기에서 회초리에 맞으면서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하고, 시련을 당하면서 거기에서 자기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내 혼자의 힘으로 살수없다라고 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까지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들이 염려하며 근심하는 그 끈을 어느 순간에 놓고, 그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그리고 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시는 분이 나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도 무엇이 좋은가 하는 것도 나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때에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더하시고, 우리의 영혼도 살리시고, 우리의 육신의 필요들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여러분들에게 문제를 주셨지만, 염려하며 가슴을 재처럼 태우라고 염려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염려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떠났던 하나님, 염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버렸던 그 하나님, 밀쳐주었던 그 신앙의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에게 그런 기회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문제를 주신 그 옆에는 언제나 먼곳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바로 그 옆에 답안지가 함께 있어요.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할 뿐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깊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보지 못했던 문제의 답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서, 염려로 인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상하고 여러분들의 영혼이 병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오늘 이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 염려했던 것을 깊이 회개하고, 내가 정말 주님을 신뢰합니다. 이제껏까지 내 인생을 주관하고, 그리고 움직여 오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던 하나님, 이제도 저를 붙들어 주시고, 그리고 제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 주시옵소서. 제가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가져오신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기도합시다.
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선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오늘 많이 모였으니까 조금 소리내면서 기도해도 되겠죠. 그래서 우리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내 염려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신앙은 병들었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용서해 주시고, 정말 하나님 앞에, 정말 주님께 맡기면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고, 이번 사경회에 우리를 만나주시도록 우리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게서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간구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정말로 저희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앞에 불순종하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인생의 짐들을 스스로 짊어지고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 한사람 한사람이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역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저희들이 우리의 문제를 모두 짊어지고 아버지 앞에 염려로 우리의 가슴을 태우며,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던 것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시고, 주님이 우리를 이땅에 창조하셨으며, 또한 우리를 그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사오니, 오 주여 오늘 이시간에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일평생 저희들 의지하며 살아갈 분이 하나님 한분 뿐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빕니다. 저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부어주시고,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아끼지 아니하실 줄 우리가 알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인격적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깊이 사랑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하나님 한분만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더해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 아버지,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들풀도 입히시고,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먹이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아버지 앞에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아니하고, 염려로 우리의 가슴을 태우고, 우리의 영혼을 상하게 하였던 것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염려 속에서 우리의 고통이, 그리고 그 고통을 타고 많은 죄들이 우리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 오게 되었고, 우리의 기도의 영과 그리고 우리의 은혜의 세계들을 파괴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무엇을 하든지 온전히 저희들이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아버지께서 역사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하옵나이다. 자비하신 주님. 오늘 이시간에도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아버지 앞에서 저희들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되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의 손길을 의뢰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 이 스스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독립심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이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도 나아와서 아버지 앞에 기도합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고, 저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에서 저희들을 구해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아버지 앞에 토하도록 역사하여 주시고,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저희들의 기도의 문을 열어주셔서 아버지 앞에 전심으로 간구하고 기도하도록 하나님이 많이 복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그 일과 우리를 위해서 이제껏 인도하신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도록 도와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크신 사랑과 은혜 때문에 우리들이 오늘날까지 살아왔고,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제까지 산것도 주님의 은혜요. 또 앞으로 살 것도 주님의 은혜뿐임을 알게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께 더 많이 사랑받을수록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을 믿사오니,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전심으로 의지하며 아버지 앞에서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고, 저희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아버지 앞에서 날마다 주님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비록 우리의 눈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이여 그리스도 예수의 의로움을 의지하고 ,우리를 돕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의지하며 우리들이 아버지 하나님이여 인생의 어두움의 때를 헤처나갈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시간에도 저희를 도와주시고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걱정으로 말미암아 염려로 인하여 어두워진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주님의 은혜의 빛으로 비추시고, 주의 말씀으로 우리의 근심의 먹구름들이 물러가게 하셔서 우리를 전심으로 사랑하시는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시간에도 저희들에게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성령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저희들 가운데 충만하게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로 저희의 영혼들을 어루만지시고, 아버지 하나님이여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마음에 은혜의 불을 붙여주시기를 간곡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도 주님의 성령께서 저희들을 어루만지시고 주께서 강한 은혜로 저희들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와주시고 은혜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