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 21 새벽예배
2003년 11월 10일 새벽설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히 10:32).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이 당시에는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곧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 박해는 굉장히 큰것이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선교 초기에 처음 신앙이 들어올 때에는 그 예수 믿는다는 것은 곧 박해를 의미했죠. 더욱이 그 당시에는 그 씨족사회니까 그래서 철저하게 씨족사회니까 그러니까 그 당시 야소교라고 불리던 서양의 종교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씨족과의 결별을 의미하였다는 말이었죠. 그러니까 엄청난 박해가 뒤따랐습니다. 지금도 제주도 같은데에 가보면 사람들이 신앙생활하고 있지만, 대부분 다 외지에서 와서 그 직업 관계상, 사업 관계상 온 사람들이 교회 다니지, 본토박이는 정말 보통 전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많이 사회가 민주화된 가운데서도 그런데, 당시 이 히브리서 문맥에서 보면 당시의 그 로마시대 때에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고, 더우기 히브리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에 속한 히브리 민족으로서 그 사람이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이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예수교 신앙으로 개종한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다는 거죠. 우리가 생각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거기엔 반드시 핍박이 뒤따르고 그리고 그 핍박은 정말 삶의 뿌리채 흔들어 놓는 그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혼자서 떠도는 사람들이라면 좀 쉬웠겠지만 가족을 거느린 이런 사람은 굉장히 어려 운 것이었겠죠. 지금도 이태리 로마에 가면 세바스티아노란 사람의 무덤이 있는데, 그 사람이 로마 황제의 친위 대장이었는데, 그 사람이 개종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죠. 최후에는 어떻게 되냐면 이 사람이 그 카타콤에 사는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먹을 것들을 공급해 주다가 부하에게 적발되죠. 그래서 결국은 부하들이 장군을 향해서 수없이 수백 명이 화살을 쏩니다. 그래서 결국은 고슴도치처럼 화살에 완전히 맞고 그리고 죽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온 얼굴에 웃음을 띄며 그렇게 순교를 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한 교회가 아직까지 있어요.
그런 정치적이고, 동 씨족간의 그런 핍박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는 말이죠. 그런데도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핍박의 큰 시험을 견디고,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는 뭔가가 있어야 됐다는 것이죠. 그것이 뭐냐면 진리의 빛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빛을 받고, 그리고 선명하게 자기의 마음속에 새겨져서 이 세상에서 박해를 피하면서 참된 생명과 진리로부터 멀어지느니 차라리 박해와 고난을 당할지라도 내가 참된 생명을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내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견디면서 참고 그리고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 중에 배교자가 나옵니다, 배교자가.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 두가지가 있는데, 우선 첫째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빛을 받고, 그리고 그 빛을 통해서 자신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생의 최고의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 분을 믿고 따르는 그것은 이 세상에서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이런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교할 수 있다라고 하는 사실, 그러니까 그 사실은 결국 뭘 의미하냐면 지난번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참된 신자는 배교할 수 없어요. 참되다라고 하는 의미는 성화의 의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구원 받은 성도는 배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걸 통해서 깨닫는 사실은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서도 참된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첫 번째이고, 또 하나는 뭐냐하면 그런 핍박과 고난을 견딘 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교할 수 있다라고 하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이걸 보면서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 은혜의 항시성, 다시 말하면 한번 하나님의 말씀의 비췸을 받고 은혜를 받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그 말씀에 붙들려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예요. 그래서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오히려 그 배교자들은 절대 자신이 배교할 리가 없다고 믿고, 참된 신자들은 배교할 위험성에 대해서 항상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 예전에 한번 비췸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의 세계를 알았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 교만해지거나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걱정 없다고 생각 하거나 그래서 방종에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전에 하나님의 더 크고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살아드려야 할 삶은 정말 특별한 것이어야 하는, 더 많이 하나님을 섬기고 더 온전해 더 온전해지고 그리고 더 분명한 태도로 이 비진리 앞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을 사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일종의 신앙적 결의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그 신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더 온전한 삶을 살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삶을 만든다는 것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온전해지고,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새로워져서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될 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도 체험하고 은혜의 빛도 받고 그리고 그 은혜 때문에 핍박과 고난도 이겨왔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님 앞에 훌륭하게 말씀의 영향을 받고 핍박과 고난을 이긴 헌신적인 삶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 경험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런 핍박과 고난 속에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이겨왔기 때문에 오늘도 그렇게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는 그런 은혜가 필요하다. 그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 역사할 때 그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배교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온전한 신앙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굳게 믿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라고 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는 거입니다. 더 많은 은혜를 받았을수록 지금 그 은혜가 내 안에 역사하고 있는지, 그리고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수록 내가 지금 그런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아버지 앞에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그리고 고난을 이기고 박해를 이기면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신앙, 이 신앙을 통해서 받게 될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고난을 잠시 피하고 살아가는 이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귀하다고 믿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아와 이처럼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고, 저희들 한사람, 한사람 이렇게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며 현재적인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