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3일 새벽예배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히 3: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고 증언하여 40년 동안 나의 행사를 봤다. 우선 마음을 강팍하게 하면 삶이 불순종과 죄로 치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신자가 자기 마음을 다스리면서 사는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마음을 지키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마음에 관한 경고에 말씀도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도가 이제 자기 수신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말도 바로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는 구약에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러면서 그들에게 모든 핍박과 환람 앞에서 뒤로 미끌어지지 않는 비결 자기에 마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강팍해 지는 마음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강팍해진 마음에 본보기를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많이 보고 굉장히 커다란 어떤 일을 경험하면 이렇게 그 놀라운 역사를 볼 것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놀라운 역사를 보면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꺼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팍해졌던 사람들에 대명사로써 거론되고 있죠. 특별히 광야시절에. 근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하나님에 그 위대한 기적을 본 사람들이 없어요. 그렇게 많은 기적으로 전철된 삶을 살았으면서도 마음이 강팍해지는 것을 막을수가 없었으니 감동이나 놀라운 기적이나 강한 하나님에 역사만에 문제가 아니라 신자의 마음을 강팍하지 않도록 자기가 지켜나가는 것은 이것은 자기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될 그런 부분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깊이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꺼 같으면 이제 여기에 나오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그렇고 증엄하였다. 근데 여기서 시험했다 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게 사실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는 안돼거든요. 근데 여기서 시험 했다 라고 나오니깐 이거 무슨 의미냐 하면은 인간들에 끊임없는 불순종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반역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됐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불순종과 죄악 그리고 반역 이런 것들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이 시험이 되었다. 어떻게 얼마나 참으시나 얼마나 한번하신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나 얼마나 계속해서 사랑하실 수 있나 이런 것들을 시험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받아들이실 정도로 받아들이실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끔찍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반역하고 범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살았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마음으로 하여금 이렇게 시험이라고 느끼게끔 하는 그 자체가 인간에 커다란 죄죠. 커다란 죄죠. 하나님은 물론 무한히 참으실 수 있고 무한히 사랑하실 수 있고 또 무한히 공유로우시고 무한히 진실하신 분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당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운 이런 모든 성품으로 당신에 백성들을 평상적으로 깊이 보호하고 인도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이렇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럴 때에 우리를 향한 사랑 연합들이 증진되는 거죠. 그런데 인간들에 불순종과 죄악은 하나님에 인내를 시험하고 하나님에 신실하심과 이런 것들을 시험하는 거죠. 하나님에 마음에 그렇게 비치는 거죠. 우리도 아이들 기르다 보면은 인내에 한계 같은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어떻게 얘들이 이럴까 정말 이래서 애들이 사람이 될까? 이럴 정도로 이제까지 잘 참고 사랑해 왔는데 그런 어떤 한계같은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물론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은 우리 편에서 보면 한계를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뭐냐 하면 시험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때는 뭐냐 하면 자식들을 야단치고 그러는데 그 한도를 넘지 않고 야단을 칠 때에는 이렇게 야단을 쳐서 이 아이가 바르게 돼야지 그러고 야단을 치지만 그 한도를 딱 넘게되면 화가 나서 야단을 치는 거에요. 우리 학교 다닐때에도 어느 선생님이 너무너무 화가 나니깐 너무 좋으신 분이였는데 애들을 막 방망이로 두들겨 패면서 내가 너희 좋은 사람 되라고 이렇게 패는 줄 아냐? 선생님들은 항상 때리면서 내가 너희들 미워서 때리냐? 너희 사람 되라고 때리는데 그날은 틀려요. 야 내가 이렇게 패면 너희들 너희 사람 되라고 패는 줄 알지? 아니다. 하도 승질이 나서 팬다. 그러면서 때리는 거에요. 결국 그게 뭐냐 하면 그 인내에 한도를 넘어버리는 거죠. 하나님에 입장에서는 한도라는 것은 없지만 인간에 죄와 악함이 너무 심하니깐 하나님이 이것은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짓는 죄나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참으시나 놀리며 시험하는 것처럼 받아 들여질 정도로 그렇게 불순종한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니깐 그 결국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은 당신을 시험하는 것으로 보이는 거죠. 이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마음을 강팍하게 했기 때문에 인간이 그렇게 악해 지는 것이다. 인간이 악해 질수 있는 범위는 무한해요 무한해. 무한대에 악에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 인간이에요. 그래서 우리 자신을 다스리면서 사는 그것 우리에 삶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부로서의 우리에 마음 이거를 지키면서 사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매일 매일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요.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한가지에요. 그렇죠. 자기 마음을 부인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에 삶을 부인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갖고 싶은게 있어도 아니야 그러고 부인할 수 있어야 그러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니야 라고 부정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고 그래야 되잖아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우리 자신에 마음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서 강팍해지지 않도록 그렇게 조심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 강팍하다라는 자체가 뭐가 말라가지고 딱딱해지는 거라고 제가 지난 시간에 설명 드렸잖아요. 그래서 옛날에도 보면은 뭐 그때 냉장고가 있겠습니까 뭐가 있겠습니까 뭐 없죠. 그래서 집안에서도 그렇게 수제비 같은 거 만들기 위해서 반죽을 놓을 때도 옛날에 한문에 보니깐 그거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항상 물에 젖은 보자기로 싸서 그래서 놔두는 거에요. 그냥 내버려두면 조금 지나면 껍데기 딱딱해 지는데 그걸 그냥 뜯어가지고 국에 집어 넣으면 안익어요. 그래서 할수 없이 껍데기를 벗겨내서 버려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단 말이죠. 더 오래되면은 못 쓰죠. 그렇게 우리 자신에 마음을 젖은 보자기로 싸서 밀가루 반죽처럼 관리를 해야되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살아야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그래서 살아 생전에는 신앙생활 잘 하다 죽기 직전에 강팍해져서 그렇게 하나님 없이 죽는 사람도 성경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깐 생명이 있는 날동안 이게 그렇게 마음을 간직해 나아가요. 이게 손이나 다리나 팔로 하는게 아니니깐 기력이 없어도 해야되고 또 할수 있어요. 그래서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해나아가는 거죠.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길이고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