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6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히 3:10-11).
강퍅에 대해서 말씀하다가 오늘 이 십 절 과 십 일절이 나오는 겁니다. 강퍅에 관해서 이야기 하다가 구 절이 나오거든요. 결국 알 수 있는게 뭐냐 하면은 강퍅해지면은 그 마음이 하나님에 진노를 산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지면 하나님에 진노를 사게 된다. 진노를 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실질적인 행동과 악을 보시면서만 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상태에 대해서도 진노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은 잠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많은 샘과 같아서 그래서 그 샘으로부터 물들이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샘에서 물이 흘러서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바로 인간에 마음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 마음을 보면 그 사람에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을 보면은 앞으로 그 사람 마음에서 무어가 흘러 나와서 그래서 흘러나온 그것이 그들에 삶을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그 마음들의 상태를 향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신거에요. 그리고 또 이제 그 마음에 마음을 향해 진노하신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면 그 마음에 진노가 삶으로 흘러나와서 그래서 결국은 더 큰 죄와 악을 짓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마음 지킴에 교리는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아주 치명적으로 중요한 교리입니다. 마치 마음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이런 것과 같은 거예요. 중국에서 나오는 이야긴데 아편이 엄청나게 중국에서 성행했잖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근데 이제 아편을 담배에 파이프에다 아편을 놓고 마루에 누워서 그 아편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몽한 상탠데 이렇게 밖을 쳐다보니깐 왠 도둑이 담장을 넘는 거예요. 담장을 기웃기웃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러니깐 그 아편을 하고 있는 중국 사람이 생각을 하는 거에요. 저거 저녀석이 남의 담을 기웃거려 뭘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담은 넘어가라 담을 한참 들여다 보더니 담을 담 위로 기어 올라왔어요 내려 오기만 해봐라. 내려왔어요. 어 저녀석이 남의 집을 들어와? 가까이 오기만 해봐라. 가까이 왔어. 이 사람이 이렇게 보니깐 도둑이 보니깐 아편을 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에요. 너는 그래라. 이젠 들어와? 마루에 올라오기만 해봐라? 올라왔어요. 이게 너무 아편에 취해서 정신이 없고 그 다음에 그 순간이 너무 달콤하니깐 깨트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 방에 뭘 가지러 들어가기만 해봐라. 들어갔어요. 막 뒤지기만 해봐라. 실컷 뒤졌어요. 보따리 싸가지고 나왔어요. 나오기만 해봐라. 나왔어요. 보따리 싸들고 갔어요. 다시 오기만 해봐라. 근데 그게 결국 뭘 보여주냐 하면은 우리 마음에 대적들이 딱 나타났을 때 제일 처음에 그것을 처치하는 것이 제일 피를 적게 흘리고 쉬운건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 그때에는 그게 중요하게 생각 안하고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큰 군대를 만들 때까지 내버려 둔단 말이죠. 그러니깐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 진노를 사는 것이다. 강퍅해지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에 마음에도 영향을 안 받고 하나님의 의지에도 영향을 안 받고 하나님에 정서에도 영향을 안 받는 북어 같이 딱딱하게 마른 그런 마음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강퍅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세요? 아세요? 강퍅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세요? 그 자체가 이미 벌써 하나님에 진노를 보여주는 거에요. 스스로 강퍅한 마음을 지녔을 때 깊은 고통속에 빠져들게 하면서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이제 오늘 첫 번째 이야기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특징이 뭐냐하면 미혹이에요 미혹. 미혹이라는 뜻이 뭐에요? 사실이 아닌데 사실처럼 생각하거나 옳지 않은데 옳은 것처럼 이해해서 그래서 혼란에 빠지는 것이 미혹입니다. 마치 미혹 된 상태에서의 삶이 라고 하는 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방향타가 망가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단 말이죠. 혹은 운전수가 착시 현상을 일으켜서 개울 위에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다음에 길 위에 호수가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하는 그런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이 미혹이 바로 이렇게 강퍅한 마음에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 겪는 고충이에요. 우리들이 한번 그런 생각을 해보세요. 안경을 썻는데 그 안경이 군데군데 판판한 알이 아니라 이렇게 이렇게 마치 휘어 있는 그런 안경을 굽이 쳐있는 그런 안경을 골이 파인 그런 유리같은 안경을 쓴다면 은 사물이 제대로 볼 수 없잖아요. 사람에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인식하고 느끼고 또 행동을 하게하는 그런 거울과 같은거에요. 그래서 그거를 이렇게 보게끔 만들어주는 그것이 바로 마음이란 말이죠. 마음 자체가 강퍅해져있을 때에는 그런 식으로 기능하기가 제대로 기능하기가 힘든 거예요. 그래서 마치 골판지 처럼 되어 있는 유리를 유리알로 된 안경을 낀 것처럼 모든 것들이 미혹되어서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런것들은 결국은 강퍅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마음이 굽어지게 되면은 들리지 않는 말도 들리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모든 것들을 그렇게 강퍅한 마음으로 모든 걸 받아들여 재해석 해버리는 그러면서 이 속에서 커다란 사고에 혼란이 일어나고 어려움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아주 큰 혼란과 어려움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결국 강퍅한 마음에서 오는 미혹에 현상들 이에요.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이전에 해왔고 은혜 생활을 해 왔고 또 어떤한 열심을 품고 있던 지간에 일단 방향이 잘 못 되게 되면은 그 모든 것들이 소용이 없는 거예요. 바로 안가니깐. 쉽게 이야기 하면은 방향타가 망가진 자동차가 시속 280km로 달릴수 있는 성능을 가졌다. 그건 더 무서운 거죠. 차라리 망가져서 한시간에 5km 못간다고 하면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죠. 그런 미혹이에요. 그래서 그런 미혹에 상태에서 다행히 다행히 어느 순간에 하나님에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면 자기가 미혹에 상태에 있다라고 하는 것들을 깨닫게 되요. 미혹에 상태에 있다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되면 그 다음에 그걸 고칠수 있는 길이 주어지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계속 미혹에 미혹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삶이 실타래처럼 막 얶히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우리에 마음을 강퍅하게 했던 사탄에 역사 뭐 사탄에 역사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부패성 때문에 또 우리들이 실제로 범죄함으로써 그러면서 우리들에 마음은 그렇게 굳어지고 악화되어 가는 거거든요. 그런 모든 과정들을 거치면서 그러면서 우리들에 마음이 실제적으로 강퍅해지고 악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모두 기억하면서 그러면서 그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 마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거죠. 그래서 우리에 마음은 우리 자신에 도움 없이는 절대로 강퍅해지지 않아요. 우리 자신에 도움없이는 절대로 강퍅해지지 않아요. 오히려 마음이 부드러워 질때에는 하나님이 주체인데 강퍅해 질때는 우리 자신이 주체에요. 그래서 타고나나 부패성이나 혹은 우리 자신에 죄 그런걸로 말미암아서 우리 자신이 마음이 강퍅해 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중요했기 때문에 강퍅해지지 말라라는 경고를 끊임없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모든 것을 주고도 우리들이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마음이 바로 가치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고 그리고 우리에 신령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한해 시작하면서 마음을 잘 지켜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