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0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간다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뜻이죠. 그러니깐 이거는 대체로 기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아주 굉장히 중요합니다.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은.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마음을 기러 내며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마음 쏟지 않으면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로는 기도를 안하면 그냥 기본적인 삶을 살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특별한 삶을 살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그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그렇게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은 점점 사람이 망가지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기적과 놀라운 하느님에 은혜를 받고도 광야에서 원망하고 하나님 앞에 불신앙함으로써 결국 안식을 보지 못하고 멸망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하고 불신앙해서 그 안식에 들어가도록 부적합하도록 마음이 강팍해질만한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에 영혼에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말씀에 의해서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예리하여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고 마음에 생각과 뜻을 다 들어내는 그 말씀 앞에서 자기를 정확하게 보고 그리고 그렇게 정확하게 깨닫게된 자신에 상태를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서 주님에 은혜로 자기를 변화시켜 주시도록 기도하는 진실한 자기 깨우침과 깊은 변화 없이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새로워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아주 급속하게 급속하게 망가져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그렇게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고 거기로부터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말씀과 자기를 고쳐주시는 하나님에 은혜에 의해서 계속 치료되고 하나님 앞에 고쳐지지 아니하면은 그러면 망가지는 거죠. 그래서 결국 자기 신앙을 위해서 뭘 노력하고 뭘 생각을 하고 뭘 고민하면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깊이 몸부림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생애가 없으면 그런 모든 노력들이 자신에 신앙에 영향을 끼치기가 힘든 것이다 그런 것이죠. 예를 들자면 진리에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그리고 감사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잊어버리고 나면은 그게 그 사람에 영혼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겠어요. 그러나 그것을 받아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리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화고 부르짖고 간고하면 이렇게 하면 아주 그 말씀 살아서 역사해서 그 사람을 아주 강력하게 바꿔 놓는 거죠. 이런 힘이 결국은 기도 속에서 나오는 거예요. 근데 오늘 그래서 여기 성경에서도 은혜에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지니라. 왜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죠. 예수님이 우리에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에게 비록 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양심과 율법에 거리낌 없이 진실하기만 하면 주님에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예수에 보혈에 힘입어서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거죠. 근데 그 보좌를 은혜의 보좌라고 부르는 거죠. 그래서 그 은혜가 뭐냐 하면 정말 가치 없는 죄인들인데 하나님이 정말 후하게 대우를 해주시는 것을 의미하죠. 우리들이 기도 할 때마다 그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아요. 정말 가치 없는 죄인인데 하나님이 정말 후하게 대우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복음 제대로 알고 기도에 세계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공통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살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에 경험을 미루어 보더라도 기도가 생생히 살아 있고 하나님 앞에서 그 기도 속에서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하나님에 은혜를 경험하는 그 때에는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 살아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기쁨과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런 여러분에 경험이 그걸 증명하잖아요. 그죠? 그래서 그 우리에 기도를 들을시는 하나님에 보좌를 특별히 은혜의 보좌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니깐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은혜의 샘이 말라있는 거죠. 그리고 마르고 있는 중이죠. 그러니깐 그렇게 되니깐 사실 모든 것들은 은혜에 거든요. 그러니깐 아무리 아름다운 동산 정원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는 나무도 있고 풀도 이끼도 있고 꽃도 있고 잔디도 있고 많은 식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종류는 많지만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정원 동산 정원과 같은 동산 한 복판 사이로 충분한 물이 흐르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살아 있어요. 근데 물이 딱 끊어지고 나면 이끼도 마르고 잔디도 시들기 시작하고 꽃도 더 이상 피지 않고 나무도 더 이상 자라고 잎을 내지 않는단 말이죠. 황폐한 동산이 되는 것 처럼 은혜가 그치고 나면 어떻게 되요? 감사도 없고 사랑도 없고 인내도 없고 충성도 없고 착하게 사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그리고는 그냥 근근덕신으로 기본적인 신앙에 형식들을 흉내 내면서 살아가는 거죠. 생명이 없는 신앙생활 그렇게 살아가면 안되는 것이다. 라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저는 기도하지 않는 것을 보면은 참 마음이 아파요. 어제도 우리 목사님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자기는 교회 교육자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조용히 얘기했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됩니다.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니깐 정말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가지고 생각해봐도 그 하루에 단 삼십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면은 성경을 다 거꾸로 써야되요. 다시 써야 되요. 그럴 수 있다면 예수님은 왜 바보같이 그 많은 시간을 통곡과 눈물 속에서 기도하셨고 이른 새벽마다 깊은 밤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을까. 하셨겠습니까? 왜 그러셨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커다란 영력을 받았다는 사도들과 바울 사도와 그 많은 신약 성경에 인물들이 왜 그렇게 기도에 헌신해 왔겠으면 기도사 속에서도 많은 주에 종들이 왜 그렇게 깊은 기도 속에서 몸 부림 치면서 인생을 살아 왔겠습니까? 그럴 수 없거든요. 그러니깐 그래왔기 때문에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가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 사람을 능가할 수가 없는 거에요. 기도 할 때 하나님 앞에 그의 기도가 연락받지 못하고 기도 속에서 거의 하나님을 만나려고 해도 주님이 만나주시지 않는 사람이면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깊은 기도 속에서 몸 부림 치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면 그래서 주님이 그 기도 시간에 당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과 그를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보여주신다면 그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거죠. 우리가 그 은혜에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와 능력을 힘입지를 않으면 우리는 도저히 이 세상을 이길 수도 없고 그보다 더 중요한건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마음이 강팍해져서 주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갈 수 없게 하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 잘못된 작용들을 우리가 억제할 수 없는 것이에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화락하고 강하고 그리고 막된 존재인지를 우리 자신도 잘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은혜에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예수님에 비유에 그런게 있잖아요. 사람이 건축을 하려면 집을 지을 때는 자기 돈이 있는걸 보고 그 다음에 집을 건축할 때 얼마쯤 들가를 생각하고 하고. 전쟁을 할 때에는 적군이 쳐들어오면 적에 군사가 얼만 줄 알고 내 군사가 얼만 줄 알고 그러고서 싸움을 시작하지 않냐?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서부터 분명하게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희생이 없으면 신앙생활 자체가 성립이 불가능하다 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해요. 저는 솔직히 주일날 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 꽉차는 조금 밖에 기쁨지 않아요. 새벽 시간에 우리 교회뿐 아니라 조국에 교회 예배당에 가득 차서 그래서 우리에 믿음에 선조들이 하나님에 은혜를 구하며 주에 보좌 앞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리는 그런 삶을 우리들이 살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개개인이 문제를 갖고 간절히 기도를 해도 그게 변하는게 느껴지는데 교회가 온전히 한마음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까? 그니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도 하나님이 이미 보내주기로 약속하신 거거든요. 그럼 그냥 보내주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안보내 주셔요.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그 때에 성령에 강림이 이루어 지는 거죠. 그러면서 강하고 놀라운 그 은혜의 역사가 거기에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 이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도의 가장 큰 의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이기고 그 다음에 죄를 죽이는 삶에 출발은 이 항상 기도에 순발력을 유지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살아갈 때에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간직해야 할 것이 나는 이렇게 살다가 내일 새벽에 나아가서 기도해야 될 사람이다. 또 하나는 기도하면서 마음속에서 새겨야 할 것은 이 기도가 끝난 후에 나는 가서 이 기도대로 살아야 할 사람이다. 이게 꼭 필수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께 부탁하는 건. 뭐 일주일이나 사십일 정도 기도하고 마는 것 그런거 필요 없어요. 그 사람에 인생 전체가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숨 몰아시기 운동 한 이십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숨 안쉬고 그렇게 살 수 있어요. 그렇게 살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너무 기도하기 힘들어도 충성 그리고 자기를 꺾고 이기면서 기도에 헌신하고 그리고 그 은혜에 보좌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매달리는 사무친 몸부림이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오늘도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기 바랍니다. 앞부분은 내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