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7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히 3:10-11).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강퍅함으로 말미암아서 그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 보면 강퍅하게 되는 것, 강퍅하게 되어서 그 마음으로는 미혹되어서 길을 알지 못하는 거 어제 말씀드렸죠. 또 하나는 뭐냐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데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래서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한다는 걸 말씀하십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못 들어가게 하시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강퍅한 사람들이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사람들을 모두 죽게 하시기 위해서 충분히 가나안땅을 빨리 들어갈 수 있는데도 못 들어가게 하시는거죠 다 죽은 다음에 그담에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사실은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라고 해서 마음이 강팍할 가능성이 없고 애굽에서 태어난 세대라고 해서 강퍅한 그런 것은 아닌데 하나님이 이 사건을 통해서 그 마음의 강퍅하고 불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죄인가를 보여주시는 거죠 이렇게 광야에서 다시 태어난 세대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말하자면 우리가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죠 여기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안식에 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는 것이거든요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이됩니다. 내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우선 첫째는 이 안식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안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불순종함으로서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믿는다는 신앙을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의 표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마음의 강퍅함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도 마음이 굳어질 때가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는게 뭐냐면 구원의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아주 탁월한 표가 뭐냐하면 마음의 강퍅함이라는거죠 그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뛰어난 표다 이거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사람에게는 모두 이 부드러운 마음과 강퍅한 마음이 공존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잘 믿고 은혜생활 하고 회계하고 이렇게 자기의 영적인 건강을 방치시키지 않으면은 그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부드러움이 존재하지 않는 영적으로 아주 딱닥한 마음이에요 그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을까.. 그러니까 마음의 강퍅함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이다라는 얘기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주님을 대적하고 그 강퍅한 마음을 갖게 되면 불순종이 아주 쉽게 되거든요 불순종하게 되고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그들이 모두 죽고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표다라는 얘기고요 두 번째는 뭐냐하면 광야에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안식을 못 누린 것뿐만 아니라 마음이 강퍅한동안에는 이세상을 살면서 안식을 누릴수 없어요 여기에 안식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히랍어로 카타파우시스라는 단어인데 안식을 뜻하는 히랍어 단어가 대표적인게 두 개가 있는데 카타파우시스라는 사바티스누스라는 단어에요 사바티스누스는 여러분이 알다싶이 영어의 사바뜨 데이라 해서 안식일 거기에서 어원이 같은거에요 그건 히브리어의 사바뜨에서 나온건데 둘다 안식으로 번역이 되는데 사바티스누스라는것은 쉼이에 쉼 그러니까 편안한 쉼에서오는 안식이고 카타파우시는 구속으로 오는 안식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는것은 그 뒤에 그리스도계신거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 그 은총을 입는데서 오는 영과 육의 안식을 의미하는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만 못한게 아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님과의 화해가 없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어떤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는 포근한 쉼 그런게 없다는 것이죠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안가죠. 이런 애기에요 이렇게 예수님 믿으면서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순간에 가만히 돌아보면은 풍랑이 너무 많아 인생에 사업도 안되고 애들은 속석이고 부부관계도 썩 좋지 않고 몸도 서름 서름 아프고 뭐 그냥 희망적인게 별로 없고 우울하고 힘들어 그런데 그 도를 뛰어넘어서 고통스런 환란이 닥친거에요 근데 그럼속에서 하나님 간절하게 의지하고 매달리고 보니까 변화를 받았어 예수님을 만나고 놀랍게 변화를 받았다고 이상하게 변화를 받았다고 해서 집에가니까 갑자기 가정이 좋아지고 사업장에서 돈이 펑펑 쏟아지고 육신의 병이 씻은듯 낫고 그런건 아니에요 환경은 그대로인거 같에 근데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정말 주님을 만난데에서 오는 기쁨과 아 이제 예수안에 있다 그런 어떤 영혼의 포근한 안식이 느껴질때 있자나요 그게 여기서 얘기하는 카타파우시스에요 그러니까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의 화해가 없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이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숙으로 말미암는 진실한 쉼 그걸 누릴수가 없는거에요. 그게 바로 누구의 안식이냐면 하나님의 안식이에요.
찬송 메마른 땅을 종일걸어가도 나 피곤치않이 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그 손으로 덥으시네.
그런 예쁜 안식 그건 환경을 초월하는거에요 근심걱정없고 환경이 평안한것 같아도 그 속에서 영혼의 쉼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 많아요 먹을것 먹고 입을것 입고 그리고 특별히 자기를 속썩이는 사람없어도 영혼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영 많아요. 그럼 모든 안식이 강퍅한 사람들에게는 없단말이에요. 이건 정말 진리인거에요 진리. 그렇죠. 여러분들도 이렇게 살아가면서 모든 한경 갖추어지고 그래도 마음에 참다운 안식이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런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서 살아가요.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안식이라고 하는 것이 강퍅한 사람들에게는 없는거에요. 그래서 가만히 보시면 여러분들의 신앙의 경험을 돌아다보면 특이한 평강 그래서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따라서 그 안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온전한 쉼을 누리면서 살아가던 그 신앙의 때가 언제인가 하면 마음이 부드럽던 때에요 부드럽던 때. 마음이 부드럽던 때. 근데 그 마음이라는 것이 강퍅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드럽기 위해서는 저절로 그렇게 부드러워 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절로 부드러워지는게 아니에요.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대기 중에 집안의 부엌에 갖다놓은 밀가루와 같아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계속 말라요. 그래서 껍질이 딱딱해져요. 그래서 오래도록 반죽을 놓아두면 겉이 딱딱해지죠. 그래서 필요한게 무엇이냐면 진실한 참회에요. 그걸 통해서 통회함으로써 이것들이 깨트려지거든요. 마음의 굳음이 제거되요. 굳어질만하면 또다시 통회하고 이렇게 하면서 마음의 부드러움을 유지하게 되거든요. 누구든지 누구든지. 그러니까 가만히 보면 우리들이 영혼의 참다운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던 때가 언제였냐면 환경이 좋고 사람들이 내말 잘 듣던 그런 때가 아니라 정말 영혼의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던 때는 하나님 앞에 나를 많이 깨뜨리던 때. 그때에는 영혼의 안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회개하고 나면 하나님이 다시 나와 함께 하시는 것 같고 뉘우치고나면 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마음에 부어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용기를 얻게 되는거죠. 이러한 현재적인 안식, 아까 말씀들인 것이 미래적인 안식이라면 지금 말씀드리는 두 번째 것은 현재적인 안식이에요. 현재적인 안식이 없다 해서 어떻게 하면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현재적인 안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꼭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속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음의 부드러운 것이 우리의 특징이 되도록 그렇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시지만 그 서령님은 부드러워지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만 녹이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께 성령님이 마음을 녹이셔서 부드럽게 하시지만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도와 주셔서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에 할래를 행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마음의 굳은 것을 제거 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님이 주셔서 그래서 새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 갈 때 우리들이 이런 안식을 현재적으로도 누리고 미래적으로도 소유할수 있는 그런 오늘이라는 시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한해도 여러분들이 수시로 자신의 마음을 매일매일 잘 간수해서 강퍅해지지 않고 정말 순전하고 온전해 질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