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7일 새벽예배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 5:5).
그렇게 잠시 동안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열어 주는 제사장에 직분도 그렇게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야 했다면 그러면 한 번에 자기를 드려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그 제사에는 정말 더 특별히 부름을 받으신 그런 존재가 아니면 대제사장에 역할을 할 수 없었겠죠.
저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에 제사 제도 속에 나오는 그 대제사장에 영광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그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사장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영광이 대제사장에게 있었고 그래서 그 대제사장에 아름다운 그 직분은 더더욱 제사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주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야지만 이 대제사장으로 섬기는 일이 가능했다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은 예수님을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대제사장이라고 볼 때에 그것은 아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오늘 성경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 중에 아버지께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거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것이 아버지에 뜻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것이 당신에 생애에 미션이라고 하는 사실을 거듭거듭 해서 강조하셨고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아주 명백하게 특별히 고난에 때가 다가올수록 아주 노골적으로 모든 사람이 오해할 수 없게 분명히 표명하셨단 말이죠. 그래서 이것은 대제사장으로써 우리를 위해서 드리는 그 속죄가 정말 전적으로 대제사장으로 드리는 속죄가 전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명이였고 그리고 대제사장으로 드리는 당신에 헌신과 그 희생이 아무나 맘을 먹으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였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면요. 두 가지 생각을 함께 해야한다 이렇게 봅니다. 우선 첫 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에 매우 특별함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감당 하실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죠.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면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특별함 부르심이 있었다 이야기죠. 예수님이 오셔서 실제적으로 우리에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구약 시대에는 그 예수님을 예표하는 수 많은 인물들이 나타났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인물들이 예수님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고 단번에 우리에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게 해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일궈내실 분이 오시고 또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준 사람들 왜 그런 사람들이 필요 했습니까? 그래야지만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 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보내 주셨습니다. 멀리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으로부터 시작해서 구약에 역사 신약에 역사에 가깝게 다가올수록 구체적으로 인물들을 통해서 메시아가 어떤 분으로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을 보여 주셨고 또 인물들 자신이 예수님이 모형은 아니지만은 그러나 하나님 말씀 선포를 통해서 그래서 사람들에게 점점더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에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영원한 속죄에 이르는 대제사장 되실까 하는 것이 점점점점더 명백하게 예언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어떤 인물에 출현을 두고 성경에 이렇게 긴 세월동안 예고된 인물이 없습니다. 그렇죠? 이렇게 길게 예고된 인물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구약 시대에도 정상적으로 깨어 있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오신 메시아에 기대 속에서 사는 것이죠.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런 메시아에 의한 구속에 깊이를 누렸던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이 제사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 제사를 드려 주심으로써 하나님과 보다 깊고 영구적인 그 화해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메시아에 출현에 고대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신앙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 온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측면은 뭐냐 하면 예수님에 독특한 성품에서 찾아 볼 수가 있지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제사장에 직분이 매우 특별했지만 그래서 거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이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였지만은 그러나 그 특별함이 능가할 수 없는 일반적인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다름아닌 그들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 이였습니다.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러니깐 그들이 특별하긴 했지만은 모두가 죄인 이였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되었어도 그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영원한 속죄에 이르는 단번에 제사를 드려 줄 수는 없었던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거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면 다시 두 가지 때문인데 그 분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죠. 그러니깐 사람인 동시에 참사람인 동시에 참 하느님이셨던 거죠. 그러니깐 참사람이셨으니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실 수 있었고 또 참 하나님 이셨으니깐 죄 없으실 수 있었고 그 죄죽음이 영원한 속죄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 드려주신 제사가 영원한 속죄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었던 원인을 우리가 거기서 찾아야한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이 말하기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독특한 그 지위를 이야기 하는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그 제사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앞에 수없이 제사를 드리면서 임시적으로 하나님과의 길을 열어주고 갔던 그 수많은 대제사장들은 단지 사람에 불과했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연약함에 둘러 싸여 있는 인간 죄를 면할려고 애를 썼지만 그러나 성결할려고 애를 썼지만 그러나 그 죄와 결별할 수 없는 아주 연약한 인간들일 뿐이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임시적이 교제에 이외에 다른 것들은 열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사실이 예수님에 이 대제사장 직무에 수행이 앞서 갔던 수 많은 대제사장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과 영원한 속죄의 효과를 갖고 있었다고 논증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이제 그 구원을 위한 하나님에 위대한 역사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제일 처음 우리를 압도하는 것이 하나님에 놀라운 지혜에요. 그래서 하나님에 놀라운 지혜 즉 우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영원히 단번에 우리에 죄를 속한 속하는 제사를 드리는 그 대제사장을 세운 그 일이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과 감사와 그리고 찬양을 불러 일으키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그렇게 해서 드려진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드린 그 제사의 독특성이에요. 그 제사의 독특성. 그 대제사에 독특성이에요. 그 독특성이 뭐냐 하면 자기 아들 자신에 몸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는 그 놀라운 지혜 그것을 통해서 그 제사의 효과가 영원히 있게 하셨고 더 이상에 제사가 필요 없고 믿음으로 그 제사가 모든 죄인들에게 항시 적용되는 그런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이죠. 그것은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셨어야 했으니까 그것이 보여주는 놀라운 희생 그리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크고 놀라운 사랑. 이런 것들이 정말 놀라운 하나님에 위대한 역사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런 놀라운 사실을 보면서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에 크신 사랑과 놀라운 은혜를 인해서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 곳곳에 나오는 하나님에 구원에 역사에 관한 이 찬송은 단순히 감사에 찬송이 아니에요. 하나님에 복음에 지혜에 놀라운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에 놀라운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기 위해서 제물로 죽어가신 하나님에 어린양 그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에 부활에 놀라운 지혜. 이런 것들을 보면서 도저히 우리에 힘으로는 풀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정말 영광스러운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느끼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