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1-13).
가끔 성경에 보면은 기본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딴 이야기가 성경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좀 갑작스럽지만은 그게 앞에 이야기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뭐라 그럴까요 문학적으로 말하자면은 그런 방식들이 뭔가를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예를 들어서 강조하는 그런 기법입니다. 일종에. 이 사람들이 모두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아니였지만 물론 누가같은 사람들 누가나 다윗같은 사람들은 또 모세같은 사람은 예외 였지만 대부분 문학가는 아니였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기법들을 의도적으로 활용했을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는데 일종에 강조에 기법입니다. 그래서 음악에서 보면은 화음을 맞춰서 진행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이렇게 어떤 계를 확 차고 올라갈 때에는 그 상식을 깨고 불협화음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하나에 평범하게 흘러가던 곡에서 차고 올라가는 어떤 비상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게 말하자면은 그런거다 이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뭔가 이렇게 뭔가 광물이 지질학에서 이야기 하는 관입이라는게 있잖아요. 그래서 지층과 지층이 이렇게 돼 있는데 지층을 깨고 어떤 새로운 물질들이 들어온 것 같은 그런 관입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런 것들이 성경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이게 그런 거거든요.
계속 안식과 순종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나오다가 갑자기 느닷없이 하나님에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그러고 하나님에 말씀이 튀어 나온단 말이죠. 그게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일까? 그게 뭐냐면은 바로 앞부분에 보면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랬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또 다른 안식. 소위 얘기하는 카타파우시스이죠. 그리스도에 구속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누리게 되는 완전한 안식. 완전한 안식. 그런 것들은 믿음으로 힘쓰고 애 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깐 그렇게 믿음으로 순종하고 주님에 뜻대로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힘을 쓰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가운데에 획득 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 안식이라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늘 하는 이야기지만 신앙생활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근데 그 공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그냥 그렇게 뭘 할 때에 공을 들인다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 인생에 추구점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에 인생에 추구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분명하게 자신에 인생에 있어서 추구점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자로서 살아가고 그렇게 해서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고 싶다 라고 그런 소원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깐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뜰 때에도 그런 생각 어떻하면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으로 변화 될 수 있을까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오늘 하루에 인생이 오늘 하루에 삶이 내 인생에 이러한 목표에 기여하도록 그렇게 살아온 삶이였는가.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저께 밤에는 저녁 때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뭐냐면은 우리가 모두 이 세상에 있을 때 죽음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는데 언제 하나님보고 우리를 데려가시라고 해야 되는가. 근데 나이가 들면은 갑자기 들었어요. 나이가 들면은 물리적인 노쇠현상이 오잖아요. 이제 뇌세포도 많이 파괴되고 온 몸과 모든 것들이 다 그래요. 그런데 딴 거 다해도 살 수 있거든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모든 기관들 중에 특별히 뇌와 이런 것들이 약화되어서 그래서 어떻하던지 내 안에서 이 땅에 살려 두어봐야 하나님 보시기에 이 땅에 살려 두어봐야 더 이상 성화에 진전이 있을 수 없을 때 그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둬가시기 가장 좋을 때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물론 그게 신앙생활 하면서 심취해 빠지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물리적인 손상으로 인해서 더 이상 그런 작용을 계속 할 수 없을 때 그 때에 우리가 이 세상에 남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이 무얼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그것이 계속해서 자기 인생 전체를 계속 고뇌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께서 부르시는 그 죽음에 순간에 마치 집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이가 저 먼 발치에서 골목 어귀를 돌아서 엄마가 오는 걸 보면서 막 달려가서 그 치마 폭에 싸여서 안기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우리들이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또 그 하늘 안식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살면서도 늘 경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늘을 경험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데 근데 그 그런 하늘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애써서 순종하고 이렇게 살아가야 되거든요.
근데 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에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그러면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나니 그러면서 마음에 생각과 뜻이 드러나는 것이 없고 그러고 하나님에 말씀에 작용에 대해서 막 나오는 거거든요. 무슨 의미겠어요. 이런 뜻입니다. 뭐냐 하면 그 인간이 그렇게 신자가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에 안식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순종하기를 힘쓰면서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게 뭐겠어요. 그것들이 모두 인간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어디에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 그리고 마음에 생각과 뜻.
인제 월요일날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이거는 해부학적인 분류가 아니에요. 이게 모든 것들이 어쨌든 인간에 내면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이 그 사람들을 순종하며 살게 하기도 하고 불순종하면서 살게 하시도 하는데 그렇게 불순종 하면서 살면은 광야에 이스라엘백성이 안식을 얻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얻을 수 없다 이 얘기에요. 무슨 문제라는 거예요? 마음에 문제라이거죠. 더 깊은 기원을 캐들어가면 마음이라 이거죠. 그래서 그 앞에 보면은 너희가 오늘날 주에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그거하고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강팍해 질때 어떻게 하냐? 거기에 대한 처방을 여기서 내려주는 겁니다. 그 처방이 하나님에 말씀이라 는 거죠. 그러니깐 이 죄많은 세상에서 신자들은 그 안팎으로 우겨상을 당하는 거예요. (찬송) 그런거죠. 이 세상 온갖 시련 나를 흔들고 수많은 원수 안팎에 있으나 해서 속으로는 이 부패한 인간에 내면에 세계에 마음에서 떠오르는 그런 불순종하고자 하는 강팍함과 밖으로는 환란과 시련 그리고 핍박들이 우겨싸서 우리들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게 신자의 삶이에요. 신자의 삶. 그런 속에서 아무리 외부적으로 환란과 시련 핍박 이런 것들이 몰려 온 다고 할지라도 그가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정결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은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그런 행복과 축복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찾아 오는데. 근데 인간이라는게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거든요. 절대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 마음으로부터 인간에 깊은 내면으로부터 강팍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살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솟아 납니다. 그런 것들이 근데 자기도 그런 줄을 모른다. 그게 뭐 문제냐 이거죠. 자기가 그걸 모른다 이거죠.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나를 확인 시켜줄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이거죠. 건강 진단이 그런 거잖아요. 건강진단. 아파서 가는 건 건강진단이 아니잖아요. 나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갑자기 쓰고 들어 누운거 아닌데 신뢰할 수 없어요 내 느낌을. 그니깐 그 진찰을 하는거죠. 그렇게 객관적인게 필요한데 이 신자가 안팎에 그런 원수들로 우겨쌈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객관적인 진단을 해주는게 있는데 그게 하나님에 말씀이다 하는 거죠. 그 말씀이 신자들에게 깊이 이해되고 받아들여 질때 그때에 아주 놀랍게 자기도 모르는 자기 안에 있는 이 강팍함과 강팍해질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강팍해진 증거들을 들어 내어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새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