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2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1-3).
근데 이제 그렇게 도에 초보를 도에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대로 나아가면 참 좋은데 그게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라 이거죠. 그러잖아요. 요새 오늘도 밤새워서 말씀을 연구했거든요. 근데 요즘에 계속 제 마음속에 드는 고통스러운 마음은 뭐냐 하면 너무 세상이 무지한 거예요. 너무나 무지한거. 이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본성상 하나님을 대적하니깐 그러니깐 그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못 깨닫는 것은 안타깝기는 하지만은 이해가 되는 일이잖아요. 근데 지금 내가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할 그 신자이면서도 불구하고 자신에 몸 하나를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지하다 이거죠. 그것도 잘 배우고 잘 깨달으려고 하면은 좀 나은데 근데 그런게 전혀 없는 거죠. 그래서 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계시고 신자가 하나님을 향해서 사랑 할려고 하고 신앙에 대해서 진지해 지려고 하는데 무지하면 온갖 미신 같은 신앙이 생겨나는 거예요. 거기에서. 그러니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에 대해서 아예 장난치는 것 같이 이렇게 진지함이 없어요. 그럼 문제 없어요. 문제 없는게 아니라 아니 그 자체가 문제죠. 그 자체가 문제지만은 그건 어차피 불신함이니깐 근데 하나님이 계셔. 근데 몰라. 어두워. 그런데 한번 이렇게 잘 믿고 싶어요. 그런데 아는게 없어. 그러면 거기서 온갖 미신들이 거기서 생겨나는 거죠. 진지해지는데 거기서 온갖 미신들이 생겨나는 거예요. 이런 거를 보면는 그러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하냐하면 절대 행복하지 않거든요. 그 저는 오늘 밤에도 그 말씀을 연구하면서 아주 참 그거 굉장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지만은 굉장한 빛이에요. 뭐냐하면 이 신자가 이제 죄와 싸우기도 하고 신앙 생활 하기도 하고 또 게을러 지기도 하고 뭐 아니면 또 막 미친듯이 또 뭐 어떻게 바로 믿어 보려고 하고 이러는 동안에 근데 죄가 안 죽어요. 자기 안에서. 그러면서 이제 상당히 많은 세월이 흐르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자신 속에 죄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게 이게 하나님과의 평화가 없잖아요.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잖아. 근데 그 참 기가막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뭐냐면 말이죠 뭐냐면은 당신이 그렇게 오랬동안 자신 속에 있는 죄를 죽이지 못하고 죽일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여러 방법에 호소해 보기도 하고 울부 짖어보기도 하고 하는 동안에 그러면서 긴 세월을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아직 자기 속에 그 죄가 안죽은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저 노예는 말하기를 뭐라고 말하냐 하면은 그 죄는 만만한 죄가 아니다. 비유하자면은 산전수전 다 겪은 죄라는 거죠. 그래서 요동치는 파도를 헤치고 수많은 항해의 길을 지나온 말하자면은 많은 풍랑과 파도 속에서도 살아남은 죄라는 거죠. 그러니깐 그거는 쉽게 발견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살아 남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하면은 신자인 우리가 어떻게 반응 할꺼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신자가 그렇게 반응하면 자신은 어떻게 피할 꺼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말씀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영적인 broke에 걸렸을 때에 그것이 보다 심각하다 라는 말씀을 제가 드리는 거죠. 그니깐 죠 노인이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에 이 진리에 계시를 누린 제가 보기에는 다섯 손가락안에 꼽을 정도에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청교도들을 만약에 알프스에 비교하면 종교개혁자들은 히말라야 산맥이고 이런 죠 노인같은 분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거든요. 근데 그 분이 오늘 있다보니깐 연세가 많이 드셔서 영적인 깊은 침체에 걸립니다. 그때 데이비수 라는 젊은이가 와요. 그래서 뭐라고 했냐면은 이보게 젊은이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되지? 너무 기초적인 질문이니깐 예 선생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노령에 영적인 거장이 말하기를 그건 참 맞는 말이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러면서 하는 말이 뭐냐 면은 자기는 일평생 그리스도를 설교해 왔고 그리고 기도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자신이 영적인 broke에 걸려서 자기를 보니깐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조금밖에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 그 영적인 거장이 어디서 배우겠어요. 누구에게 상담을 하겠냐고요. 그러니깐 하나님 앞에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했는데 그게 시편 130편 4절 이였습니다. 이게 뭐냐하면 사유하심이 주께 있사오니 거기에서 하늘이 열리는 그런 놀라운 영혼에 계시를 경험하는 거예요. 조명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조명을 경험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완전히 헤어 나옵니다. 근데 그 사유하심이 주께 있사오며 그 한줄을 가지고 깨알같은 글씨로 260페이지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한절을 가지고.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하냐면은 누가 도에 초보에만 가만히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느냐 이거죠. 말씀에 대해서 완벽하게 무지한 인생들이 아니면은 자기 발전하고 싶고 영적으로 성숙하고 싶어요. 근데 도에 초보에서 벗어 그것을 버리고 그 복음 교리를 아는 더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게 이게 자기 맘대로 되는게 아니에요. 그게 뭐가 필요하냐면 여기 나오잖아요. 뭐냐면 하느님께서 허락 하시면 하느님께서 허락 하시면 그러니깐 하나님이 열어 주셔서 그 하나님에 진리에 말씀들을 받아 들이게 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신앙에 도에 초보를 버릴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깐 그 안에 갇혀서 신앙이 자라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완전한 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허락을 해주여야 하느냐 말이죠. 우선 첫 째는 뭐냐면은 영혼에 빗을 비춰 주셔서 그래서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게 해 주셔야 되요. 이거는 순수한 성령에 역사에요. 인간에 어떠한 학문이나 인간에 어떠한 말재주 인간에 어떠한 아름다운 재능 가지고도 이건 불가능 한거에요. 영혼에 어두움이라고 하는 것은 본성적 어두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해 주셔서 그 영혼에 비늘을 벗겨 내시는 것과 같은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야는 거예요. 이건 논리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지식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깐 어제까지도 예수님이 ()몸에서 나셨다는 사실이 안 믿겨 졌는데 오늘 믿어지는 거예요. 그건 뭐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그래서 이 세상 신이 우리를 믿지 못하도록 복음에 광채를 가리고 있어서 이 영혼에 어둠이 생겨나게 돼서. spiritual darkness가 있게 되는데 이거를 하나님이 성령이 역사하셔서 열어주신 거예요. 그렇게 허락해 주셔. 이런 것들이 안 믿는 불신자에게만 있는게 아니라 믿는 신자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남아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하나님이 영적 어두움을 성령에 역사로 걷어 주셔야 되는. 공교한 말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란말. 두 번째는 어떻게 허락을 해주셔야 하냐면 지성을 열어주셔야 하는거죠. 그래서 뭐냐 하면 영적에 어두움은 성령에 역사함으로 물러가고 그리고 지성의 눈 멀음 은 부지런한 탐구를 통해서 해결하는 거예요. 물론 지성에 탐구고 성령께서 빛을 비춰주시지 않으면 안되요.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되요. 대신 그거는 성령님이 혼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그런 영적인 어두움을 비춰 주시는 것 그래서 영적인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시는 것 이거는 믿을 수 없는 진리를 믿게 하시는거 이런 것들은 인간에 노력이 협력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님이 홀로 역사하심. 그러나 이제 지적인 눈 멀음을 극복하는거. 이거는 자신이 부지런히 하나님에 말씀을 배우려고 탐구하려고 해야 하는거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령님이 계속 도와주실 때 그때에 이 하나님에 진리에 말씀들이 놀랍게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 거에요. 그러니깐 우리들이 정말 이 얼마 안되는 인생에 날 동안에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알아야 할 것이 그래서 요즘은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만 교회 건축하고 막 그럴때는 몇 달에 한번씩 책꽂이을 붇들고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이렇게 많은데 시간은 없어요. 그리고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데 상황은 책이나 읽고 있겠금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슨 취미로 독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죠. 우리 어떻게 생각해야 하면은 배워야할 것도 많도 알아야 할것도 많아요. 그런데 한가지 원칙을 가지면 되요. 뭐냐 하면 사람들에게 박수 받을 만한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지식이 아니면 아무리 큰 지식이라도 부러워하지 말고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지식이라도 실제로 우리를 거룩하게 순결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더 온전한 신자에 삶을 살게 하는 그런 종류에 지식을 사모하고 그런 종류에 지식을 얻기 위해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헐떡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지식과 함께 우리 삶이 거룩해져 가는데 이게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안돼는 것이다 이 얘기죠. 뭘 기도 무얼 위해서 기도해야는지 여러분 알겠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