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4일 새벽예배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
그래서 지난 말씀 드린바와 같이 여기에 이 사람들은 참된 신자들이 아니다 이렇게 보는거죠. 그러면서 이제 타락할 사람이 따로 있고 안 그럴 사람이 따로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 하면서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주의해야한다 라는 것이죠.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또 사도가 우리에게 이 교훈을 준 의도다 라는 것이죠. 그러면 왜 이렇게 하늘에 은사를 맛보고 한 번 비춤을 받고 이렇게 영혼에 이렇게 중대한 그 성령에 어떤 작용들을 경험한 그런 사람들이 다시 타락했을 경우에는 새롭게 할 수 없는 그 이유가 뭐냐? 이거죠. 오늘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랬거든요. 사실 예수님이 물리적으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힐 수는 없잖아요.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리고 우리 죄를 구속하셔서 그래서 부활하고 승천하셨는데 다시 예수님이 물리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이냐. 물리적으로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는데 배교는 말하자면은 그렇게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유사한 행위다 라는 거죠.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도 죄 용서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고 우리는 봐야 되잖아요. 그죠? 그렇게 봐야죠. 그런데 이렇게 배교하는 사람들에 죄는 예수님을 직접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의 죄보다 더 나쁘다는 거죠. 왜 더 나쁘냐면 우선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사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잘 몰랐고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들이 자기가 하는 짓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사실 잘 이해를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거죠. 또 오늘날에 불신자들도 사실 누구 정확하게 복음을 전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안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은 이해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거죠. 근데 여기에서 상정하고 있는 사람은 성령에 성령을 경험하고 그 다음에 진리에 말씀도 경험을 했고 그리고 하늘에 능력도 맛보았습니다. 참 신자가 그러는 것처럼 깊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측면은 있지만은 그러나 그런거를 경험하고 맛 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것들을 다 맛보고 다 경험한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도 알고 예수님이 고난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다 깨닫고 그 능력도 맛본 사람이 이렇게 다시 타락하고 그리고 배교했다 라고 하는 이것은 그런 면에서 이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과 불신자들보다 훨씬 더 악한 것이다. 그것이 마치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다. 만약에 만약에 누가 자칭 신자라고 하고 자기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일에 동참하면서 자기 손에 피를 뭍인다면 그러면 정말 하나님게 용서 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보다 더 악한 하나님을 향한 대적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니죠. 그니깐 그런거를 상정하면서 만약에 그렇다면 그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거를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단코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에 구원을 의심하라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에 구원을 확신하지만 그 우리에 구원을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 확신 때문에 거룩하게 살고 그 확신 때문에 하나님에 뜻대로 하는 그런 동기가 되어야지 내가 구원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젠 아무렇게나 살아도 까딱 없을꺼야. 천국은 따논 당상이지. 그렇게 살으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에 확신을 주시는 것이 아니거든요. 구원에 확신이 꼭 필요 합니다. 확신 없이는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누릴 수 없어요. 그러나 그 확신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 허리띠를 동이고 깨어 있도록 그래서 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거룩한 삶에 성화를 살도록 그렇게 우리를 부르는 그런 종류에 확신이여야 하지 우리를 거짓에 흐르게 하고 아무렇게나 살게하는 그런 종류에 확신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거죠. 그래서 하나님에 뜻대로 더더욱 살고 아버지에 말씀대로 사는 그런 삶을 위해서 확신을 가져야 된다. 그러면서 항상 그 확신과 함께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나도 이렇게 주님을 버릴 그런 배교에 위험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러니깐 항상 깨어서 매일 매일 자기에 신앙을 점검하고 두려워 하면서 이 신앙에 허리띠를 동일수 있는 그런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확신도 더 증대되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