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1일 새벽예배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16-22).
쫌 길게 읽었죠? 유언 이야기가 나오는데 느닷없이 유언 이야기냐. 여기서 유언이라고 그런거는 원래 히랍어로 이야기 하면은 약속이에요 약속. 물론 그걸 히브리어도 약속을 이야기 하는거죠. 영화에 보면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든지 간에 그 맺어지는 약속을 promise 우리 약속한다 그러잖아요. 근데 그 단어 말고 Testament라는 단어가 있어요. Testament라는 단어. 그래서 똑같이 약속으로 번역이 되는데 그거는 죽음과 함께 이루어지는 약속이에요. 그러니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그런 약속 그걸 가리키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이루어지는 약속이에요. Testament라고 하죠. 혹은 영어로 will 이거는 유언과 같은 것이에요. 왜 이야기를 말씀 드리냐 하면 여기서 쓰여진 유언이라고 하는게 원래 히랍어로 돌아가면 약속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그것이 유언에 뜻으로도 쓰일 수 있는 거에요. 단어로 이렇게 여러 가지 뜻으로 쓸 수 있는 거에요. 그럼 여기에서 구약 신약 할 때에 약이 약속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유언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약속. 또 유언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거죠. 유언이라고 하는 것은 이젠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런것도 유언이죠.그래서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써서 변호사에게 맡겨 놓죠.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유언이 효력을 발휘 할 수 없어요. 죽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변호사에게 맡겨둔 유언장을 개봉하는 일이죠. 살아 있을 때에는 언제든 그 유언을 바꿀 수가 있어요. 이처럼 유언은 죽음과 함께 효력을 같게 되는 것이다. 이 얘기에요. 그러면 구약도 유언적 의미가 있고 신약도 유언적 의미가 있다면 그러면 거긴 그 이야기를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왜 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이유가 분명하다 왜? 어차피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도입된 새 언약은 유언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언약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심으로써 유언이 유언으로 효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 앞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에 대한 설명을 계속 연장해 나가다 그것을 논증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면은 만약에 새 언약이 그런 죽음을 가져오는 것으로써 도입되었다라고 한다면 옛 언약은 어떤가 옛 언약도 역시 유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누가 죽냐? 옛 언약 하에서 누가 죽어요? 그렇죠 짐승이 죽죠. 그럼 도대체 짐승이 죽는게 유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냐 그럼 짐승이 살았을 때는 약속이 성취가 안돼고 짐승이 죽었을 때 성취가 되느냐? 그랬기 때문에 결국은 구약이 완전한 제사가 될 수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는건 뭐냐 하면 피 뿌림과 거룩함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피 뿌림과 거룩하게 됨. 그 거룩하게 되는 방법은 용서를 통해서거든요. 근데 그 피 뿌림과 거룩하게 되는 용서 그거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 피 뿌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 이였고 구약에서도 역시 피 뿌림과 함께 죄 사함이 다가왔는데 그것은 짐승을 죽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거죠. 특별히 여기서는 제사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으로 함께 묶여지는 걸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잖아요. 신에 산에서. 율법을 주고 율법을 다 낭독한 후에 백성들이 아멘 아멘 아멘 화답을 해요. 근데 그 아멘이라는 화답이 있기 전에 반드시 무슨 사건이 있어야 했냐면은 짐승을 죽여서 그 다음에 그 피를 율법 책에 뿌리면서 아멘 아멘 하는 일이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율법을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지키지 못할 때에는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지킬 때에 우리에 마음은 치사맹약입니다. 죽기까지 이르는 약속입니다. 고걸알아야. 그래서 그 하나님에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약속되지만 어기고 불순종 하는 사람들에게는 피를 뿌리기 위해서 죽어간 그 짐승들에 그 죽음과 같은 심판이 심판으로 들어가겠다 라는 무서운 맹세를 하나님 앞에 하고 있는 것이였다. 자 그러니깐 그 다음엔 어떻게 됐냐 하면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했는데 율법을 잘 지켰어요? 못 지켰어요? 못 지켰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에요? 그 무서운 심판을 당해야 하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요. 살아 남을 사람이 별로 없겠죠. 그 다음에 어떻게해 그렇게 피를 뿌리면서 율법에 피를 뿌리면서 온 백성이 아멘하면 하는 그것이 율법을 어기면 죽임을 당하겠습니다. 이거거든요. 근데 그런 하나님에 진노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해서 하나님 제사에 제도를 함께 그들에게 계시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깐 그 율법을 어긴 자에 대한 피 뿌리는 그 진노에 심판이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그 제사 속에서 나타난 거예요. 그러니깐 율법을 봐도 하나님에 놀라운 구원에 계획이 나오는. 그렇게 그 율법을 어기면 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피 뿌리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 맹세로 묶은 사람들에게 용서에 길을 주셔서 그 무서운 심판을 짐승들이 대신 당하게 하는. 근데 그 모든 율법이 들어 온게 죽음을 통해서 들어 왔다 이거에요. 피를 통해 들어왔다. 그 피 없이는 그리고 피를 통해 들어왔고 또 그 율법을 어긴 사람에게 그 피의 심판이 제사를 통해 모면 되었으니깐 제산는 죄 사함을 의미하는 거죠. 똑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는데 그 피 뿌림으로써 새 언약을 도입하신 거에요. 그러니깐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시는 심판을 통해서 두 번째 새 언약이 우리에게 도입되었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면 좋지만 믿고 구원얻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죽음과 의미는 다르지만 그런 무서운 심판이 가해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것이 옛 언약 하에서 죽으신 것이였기 때문이죠. 그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는 사람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러지 못해도 역시 그렇게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그 속죄에 의해서 영원히 우리에 죄를 용서받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영원히 용서받게 하셔서 그래서 새 언약 아래서는 그 무한한 용서와 은혜와 그 은총 속에서 살게 하심이죠. 그리고 이제는 율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에 그 고난에 십자가를 보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주심으로써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려 하는. 그래서 우리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다스림. 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뜻하시는 바가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받게 하심으로 당신에 뜻을 분별하게 하고 그 분별된 뜻대로 살게 하는 힘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급해주심. 그 역시 그리스도 예수에 죽음을 통해서 들어온 유언의 형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결국은 옛 언약 하에나 새 언약 하에서나 피 흘림과 함께 다시 말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피가 생명이거든요. 그 흘린다 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흘린거에요. 다 흘리고 죽은 거예요. 죽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피 흘림 자체가. 그러니깐 그 생명버림을 통해서 옛 언약도 새 언약도 도입되게 되었고 지금은 그런 영원한 속죄 아래서 살아가는 그러니깐 너무 감사하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