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새벽예배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행 3:20-21)
녹취자: 이한슬
병자가 나았는데 이제 그 사건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고 또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 반응하는 방식으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라 그러면은 성령님이 오셔서 너희를 그 모든 죄의 짐에서 벗기셔서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다 이렇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만약에 다시 살아나셨다면 그 어디로 가셨는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이야 아주 분명하게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여전히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어떻게 되셨을까에 대해서 이제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니까 사도가 그 예수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그거였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다음에 성령 보내심 그리고 다시오심 이 네가지 사실이 이제 사도들의 매우 중요한 선포의 제목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그리고 이제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하고 믿고 성령을 받을 것, 회개하고 믿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을 것, 이것이 강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부활하신 후에 어디 가셨느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 올리우신 것처럼 또한 그렇게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그 재림신앙을 아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그 일이 매우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이렇게 미래에 일어날 종말적인 사건들을 앞당겨서 경험하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은혜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경험할 때, 혹은 보내심을 경험할 때,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그 놀라운 일들을 생각할 때에 그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사신 그 고난이 지금 금방 이루어진 것 같은 그런 착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게 착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처럼 종말의 사건을 현재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또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지금 현재 경험하게 하는 그런 강력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그것은 아주 분명한 사도들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그리도 또 하나는 뭐냐하면 그렇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그분이 하늘에 계실 것 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분을 받아주실 것이다. 그러면 하늘이 어떤 식으로 받아주느냐 그래서 이제 하늘이 그분을 받아주실 것이다 라는 이것은 소위 이야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전사상에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라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 그다음에 하나님의 주권과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그를 받아준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늘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임을 그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에 그냥 갇혀 잇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보좌에 앉으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금 사도들이 이 사실을 선포하는 순간에도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그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는 분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거기 계셔서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으로써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좌에 앉으셔서 통치하시면서 온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결국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일들을 이제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뒤이어 가게 하시는 그것이 예수님이 하늘보좌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늘보좌에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하나님이 이제 성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나라와 우주를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보면은 예수님에 대해서 물론 주라고 부르는 명칭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희귀합니다. 그리고 주라고 부를 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모든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 아들을 부활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를 모든 만물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게끔 만드신 것입니다. 이같이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으면서 사도들과 꼭 같은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당하셨지만 구속을 완전히 이루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은 구속하셨지만 그러나 아직까지도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심으로써 결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간에 우리가 하는 일들이 종말의 그 날에 그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살아가는 그 사람이 종말의 그 날에 주님을 향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의미 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은 금방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을 살아도 영원을 향해서 살고, 순간을 살아도 영혼을 향해서 그렇게 살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