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새벽예배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사도행전 4:5-10)
녹취자 : 이민희
앉은뱅이가 일어났으니까 그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렇게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남자만 5천이 넘는 사람들이 사도들이 전파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신자가 되었으니까 이건 뭐 보통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교 전체에서 커다란 문제가 되었습니다. 병든 사람이 나음을 입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병자가 나은 그 사건 자체보다도 지금 이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된 것은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경험한 그 놀라운 기적의 체험을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고, 그 기적을 믿기 때문에 사도들이 전하는 새로운 복음의 도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유대인 전체의 종교지도자들 가운데서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대제사장들이 모두 모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해에는 한사람 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면 전에 제사장을 했던 사람들까지 다 포함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전직 대제사장이 모두 모인 것입니다. 모두 모인 가운데 사도들을 모두 붙잡아 세웠던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권한은 유대인들에게 없었지만 불러다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서 심문할 수 있는 권한은 로마가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적인 권력은 로마에 속해있었고 유대인 종교회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형벌을 준다던지 그 사람을 죽인다던지 이런 권한은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종교회의를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교회의를 권위 있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를 무시하면 불복종하는 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종교회의의 권위를 인정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묻기를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고 묻자,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가 나옵니다. 처음부터 베드로가 사도들의 대표자였다라고 하는 사실은 사도행전에 나타났고 그 기원은 요한복은 21장에 나옵니다. 모든 사도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특별히 베드로를 불러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면서 그의 지도력을 회복시켜주신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 베드로가 사도들을 모두 대신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말했다고 되어있습니다. 핍박을 받는데 오히려 성령이 충만해지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외치게 된 방식이 무엇이냐면 성경에 보면 성령이 충만해서 외쳤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에 대한 은혜와 확신이 충만한 사람들은 핍박과 고난이 올 때 오히려 그의 두려움이나 하나님 앞에서의 연약함 이런 것들이 자극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함이 자극을 받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담대하고 충만한 가운데 조금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전파하려고 하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진리에 대한 강력한 체험과 강력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사도가 세 가지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너희가 예수그리스도를 죽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곧 너희의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악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너희는 죄인이다. 너희가 예수그리스도를 죽였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너무 악한 것이었다.
둘째,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너희가 예수그리스도를 나무에 매달아 죽인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저주하여 예수그리스도가 죽이심을 당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너희가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했는데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죄나 잘못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그를 살리신 것은 하나님 앞에 그가 옳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면 그가 왜 죽으셨느냐. 그것은 당신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 살아나셨으니까 결국 그가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위한 죽음이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끌어안고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 때문에 죽으셨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이득을 주기 위해서 죽으셨다.
셋째, 바로 그 분이 이 병자를 일으켜 살려주셨다.
그렇게 일생을 앉은뱅이로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세워서 뛰게도 하고 걷게도 하신 것은 성령님이 하신 것인데, 그것을 결국 예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살아 계셨다면 행하셨을 그 일을 성령님이 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지금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고 그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시어 그 사람을 고침 받게 하셨는데, 이렇게 고침 받게 하신 이유는 그로 인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려 하심입니다.
당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매여 있었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을 증거하며 살 수밖에 없는 철저하게 매인 사람이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의 경험이 필요하고, 이렇게 육신의 앉은뱅이보다 심각한 영혼의 앉은뱅이 상태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붙들어주고 일어나 걸으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