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여기에서 ‘이러므로’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12장 1절이 11장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그러므로 우리에게 둘러싼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허다한 증인들이 누구일까요? 앞에서 나왔던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다 거론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사람 몇몇을 거론하다가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하고 끝났던 그 허다한 사람들, 믿음을 따라 살았던 수많은 증인들, 그러한 사람들이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증인들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들, 그래서 믿음으로 불의를 이겨내기도 하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돌로 침을 당하고, 톱으로 켬을 당하고, 그래도 결국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이 구름같이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환난을 당한다고 해도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는데, 그 많은 증인들을 보면 지금 너희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처절한 투쟁들이 결코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세상이 다 썩은 것 같고 사면을 돌아 보아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전혀 없도록 하나님이 시대를 모두 타락하도록 내버려 두신 때는 거의 없었습니다. 항상 소수의 사람으로라도 어디든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선 신앙으로 살게끔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고 또 그렇게 살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은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처절한 세상을 얼마든지 이기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구름같이 허다하게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사도로부터 들었을 때,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나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지금 내가 믿음 때문에 당하게 된 고난이 매우 특별하고 놀라운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앞서간 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죽어갔는데도 그들이 결국은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고, 세상의 힘이 그들보다 큰 것 같았지만 사실 그들은 죽었으나 오히려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끝내고 난 뒤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그 쉼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어려움과 고난이결코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고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있었던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걸 격려하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경주로 보는 것입니다. 그때는 로마시대니까 운동경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기에서는 달리기를 이야기 합니다. 이미 이때도 달리기도 있었고 마라톤도 있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두꺼운 옷을 입고 온갖 장식을 잔뜩 매단 채 달리는 사람과 잘 달릴 수 있게 최소한으로 간편하게 입고 좌우를 두루 살피는 것 없이 오직 결승점만을 바라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가는 모습이 경주하는 모습니다. 그렇게 경주하는 모습이 아주 단순한 차림에 아주 단순한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치열하게 달려가는 그것이 경주입니다.
이것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달리기하는 사람과 함께 군인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에 나가기 위해서 군인이 된 사람은 자기를 모집한 사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달리기 하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 모두 절제를 하면서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그저 달려갑니다. 치열하게 달려가면서 오직 푯대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걸리적거리게 가로막는 것이 있습니다. 운동선수에게는 무거운 옷, 필요없는 장식품들 이런 것들입니다. 영적으로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을 달려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주저앉도록 유혹하는 것들이 모든 얽매인 죄를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입니다. 죄의 속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죄의 속성이 나옵니다. 얽매이기 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우리로 하여금 얽매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은 전심으로 그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구약에 사사로 등장했던 삼손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특별히 삼손의 경우는 하나님이 사사로 부르신 뚜렷한 소명이 있었는데 들릴라를 만나서 그 육신적인 죄에 얽매이게 되니까 자신이 가야 할 길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히브리서 11장을 보십시오. 환란이나 핍박이 그들을 가로막을 수 있었습니까?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이나 고난이 그들을 가로막을 수 있었습니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들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경주를 가로막는 것은 밖에 있는 환경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수많은 환란과 어려움, 고난과 시련을 당하면서 이 사람들은 그런 모든 것들을 감당해 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안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린 사람들만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서 허다한 증인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이 아닙니다.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영혼이 어떻게 자유로웠는지, 죄에 얽매이지 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함, 그 자유함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것들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근심과 염려, 죄와 유혹, 이러한 것들에 매여서 살다가 믿음의 길에서 이탈한 사람들로서 그렇게 생애를 마칠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서 고통과 환란과 박해를 당했지만, 그리고 끊임없는 시련과 도전 속에서 고난을 당하였지만, 결국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구름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높이는 그런 영광스런 삶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