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새벽예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12:16)
녹취자: 이새봄
성경이나 또 우리의 실제적인 신앙의 경험을 보면 참 고난의 길을 헤치면서 믿음을 지킨 신앙의 사람들이 또 어느 한 순간에 그 믿음에서 멀리 떠나서 그래서 범죄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고난의 때에는 믿음을 잘 지켰는데 그 고난의 때에 믿음을 잘 지킨 신앙이 오히려 또 평안할 때에는 그 신앙을 잘 지키는 일에 기여하지 못하는 그런 광경을 우리가 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좇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할 때에 그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그 두려운 광경을 여기에서 사도가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더럽힐까 주의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제 도를 더해가서 이번에는 음행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음란하다, 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음란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경향이나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내면적인 이야기지만,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러한 마음의 경향성들이 바깥에 나타난 상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음행에 빠지게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육욕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은혜와 이런 육욕의 세계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 인 안에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음행의 위험을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지 않는 삶을 살게 될 때에 그만큼 이러한 세상의 유혹에 아주 극단적인 유혹에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과 죄악된 삶은 동쪽과 서쪽이 먼 것같이 완전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거룩한 삶과 죄악된 삶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에 이르지 아니하면,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중간에 무슨 중립지대가 있어서 한참 지나고 나면 죄악된 삶이 나오는 게 아니라, 거룩한 삶에서 이탈되면 곧바로 옆이 죄악된 삶입니다. 여러분,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삶과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삶이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이 생각이 되지요? 정 반대의 삶인 것처럼 생각이 되지요? 그 중간에 무슨 중립지대가 있느냐,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나면 한참 서쪽으로 이동을 해야지만 죄악된 삶을 만나느냐, 그게 아닙니다. 은혜 안에 사는 삶을 살면서 잠깐 이탈하면 바로 거기는 죄 가운데 사는 삶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솔직히 얘기해서 죄와 은혜는 비슷합니까? 아니면 전혀 다릅니까? 전혀 다릅니다. 거룩한 삶과 죄악된 삶은 그것도 비슷한 게 아니라 전혀 다릅니다. 옆 동네에 있는 삶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된 삶에서 이탈하면 즉시 죄악된 삶이고, 은혜에서 멀어지면 즉시 죄의 삶입니다. 반대도 성립하게 됩니다. 죄의 길을 떠나면 한참을 가야지만 그 신앙의 길이 나옵니까? 아닙니다. 죄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곧바로 신앙의 길이 나옵니다. 그만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도 아니면 모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을 추구하라, 그 명령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삶이 아니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버린 삶입니다. 이렇게 죄와 은혜의 신앙과 불신앙은 매우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그 예수님을 추구하면서 피 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서 싸우는 그 진지하고 분투하는 삶이 아니면 즉시 이러한 그 끔찍해 보이는 엄청난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 이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큰 죄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깊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나면 그 죄가 바로 문 앞에 엎드려있는 것입니다.
그런 많은 죄들 가운데 이 음행은 아주 극단적인 자기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극단적인 자기사랑을 위해서 이 빠질 수 있는 죄인데, 이러한 죄에 빠지고 나면 그러면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 속에 깃들였던 그 좋은 은혜의 세계들이 급격하게 허물어져 버리는 그런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걸 깊이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뒤에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이것은 무엇입니까? 에서의 경우 한 그릇 식물, 그러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지요? 결국은 에서 자신이 그 장자의 명분 자체를 팥죽 한 그릇과 더불어 팔았을 때 이미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주님을 기업으로 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그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렇게 배가 고픈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유익이 있으료, 하면서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이게 바로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축복들이 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야곱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냐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결핍에 처하거나 어려움에 처해서 혹은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될 때에 그 때에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때가 이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거나 벗어날 수 있다면 내가 신앙 같은 것 얼마든지 양보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 나중에 이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오늘 그 뒤에서 내일 보면 알겠습니다마는, 나중에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였지만은 그러나 그것을 다시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고 회개하면 우리를 받아주시지만, 그러나 미리 내가 지금 이렇게 범죄하고 신앙을 버려도 나중에 회개하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실 것이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더 많은 벌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구약에서 말하자면 징집, 혹은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이러한 죄는 구약에서도 제사에 의해서도 용서받을 수 없었던 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피 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 모든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전적인 헌신입니다. 나 자신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아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있어서 가장 귀하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절실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얼마든지 뒤로 물러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오늘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어제는 어제 지나간 것이고 오늘은 오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필요하고 그리고 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우리가 온전히 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이미 붙잡았다 함도 아니라, 그런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매일매일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 은혜를 받고 우리들이 매일매일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어져야 할 우리의 신앙의 자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타협과 양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 타협과 양보를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얻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의 어리석음은 오늘날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 수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믿음의 길에서 수없이 부패하고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순간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매순간 주님을 위해서 죽을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예수를 바라보는 삶의 본질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고 매 순간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받고 신앙으로 사는 그런 삶이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을 살든지 세상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이지, 신앙의 중간지대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죄 가운데 거하고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범죄에 가까워지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다른 길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신앙으로 살아야한다는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