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새벽예배
내가 피곤하여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시38:8-9)
녹취자: 김은영
38편 전체는 다윗의 참회를 기록하고 있는 참회시입니다. 해아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다윗이나 이 시인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섬겼고 우리는 신약시대의 하나님을 섬기며 살지만 신앙생활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세월이 흐른다 해서 자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이 다윗이 자기의 정수리까지 가득 찬 죄를 인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범죄했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우리가 매일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쫒아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면 살아 갈수록 자기 안에 있는 더 많은 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불결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소유하고 있는 말씀의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양심이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예민해질수록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의 거룩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하기를 자신이 썩고 또 썩어서 그 악취가 나는 것이 자기에게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매어 달릴 때 이시인의 마음은 처절해졌고 영혼의 그런 견디기 힘든 고통은 육체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내가 피곤하고 상하였다고 고백을 하고 또 불안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영혼은 피곤해졌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영혼에 대한 현실인식이 가미되자 시인의 영혼은 그 죄와의 싸움에서 매우 피곤해졌고 그리고 또 어떻게 그 죄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견디기 힘든 무력감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 시인의 몸은 상하게 되었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얼마나 밀접한 연결을 이루고 있는지 우리는 놀랄 따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없는 자유와 은혜를 힘입을 때면 우리의 육체는 놀랍게 소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어두움 속으로 들어갈라치면 연약했던 우리의 육체는 더더욱 힘을 잃고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죄를 뉘우칠 때 자신의 마음과 영혼은 물론이거니와 육체까지 심각하게 상하는 것을 경험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시 속에서 잠자리에 누워 만져보는 자신의 육체를 통해서 자신이 수척해진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시인이 하나님 앞에 영혼이 말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으로 뛰놀 때면 그의 육신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인해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강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장사도 힘을 잃을 때가 있고 사자도 주릴 때가 있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 시인에게는 하나님이 언제나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육체가 매우 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매우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셨던 영적 친밀감을 거두셨기에 불안해졌고 또한 한편으론 자신의 주변에 머리를 드는 수많은 대적들로 인해 불안해졌습니다. 또 예전에는 자신을 사랑했으나 지금은 자신을 배반하는 수많은 무리들로 인하여 가슴아파하며 벌어질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고 죄 가운데 떨어진 신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주님을 찾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자신 안에 죄를 발견하고 그 죄와 자신 홀로 싸우기를 애쓰다가 어느새 자신의 영혼은 피곤해지고 그 죄에 삼킬 바에 처해지고 그리고 육신은 상하고 그리고 마음은 불안하게 된 그런 처지가 오늘 우리의 처지와 얼마나 유사합니까! 주님께서 주신 그 많은 은혜를 잃어 버린 나를 용납하실까 주께서 주신 그 많은 사랑을 보답하며 살지 못하고 나를 구원하신 계획을 쫒아서 분투하며 살지 못하는 나를 하나님이 받아 주실까하는 그 두려움과 떨림 속에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이 시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시인이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영혼이 피곤했을 리도 없고 육체가 상했을 리도 없고 마음이 얼굴을 감추신 아버지로 인해 불안할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실 때 이처럼 영혼의 피곤함과 육체의 상함과 마음의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하나님보다 죄를 사랑하여 그 죄를 선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죄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선택한 죄가 가져다 준 악과 비참과 고통이 시인의 영혼을 누르고 육체를 부수고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입니까? 그렇게 죄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보다 죄를 사랑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 또한 그 결과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죄 대신 하나님 사랑을 선택했더라면 그 때에는 고통스럽고 죄에 대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희생이 있었을 진 모르지만 그러나 죄 대신 하나님을 선택한 이들에겐 잠시는 사망이 있는 것 같으나 영혼은 활기를 얻고 육체는 새 힘을 얻으며 마음은 평정을 누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그렇게까지 현명하진 못했고 자신의 죄를 선택했고 자신의 죄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되자 그는 죄의 기쁨보다 죄가 가져다주는 비참함과 쓴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무지가 얼마나 큽니까! 어린아이들도 한번 불에 손을 대고 나면 두 번 다시 그 불과 가까이 하지 않고 두려워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우리 인간은 타락이래로부터 끊임없이 그 불에 대어서 죽는 수많은 시체들을 보면서도 생각없이 불길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처럼 그렇게 하나님 버리고 죄를 택하고 그 죄를 사랑하며 거기에서 오는 모든 비참함과 고통을 자신의 육체와 영혼과 마음에 물려받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아침에도 기도하러 내려오면서 마당을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받은 그 은혜가 얼마나 큰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과 그 자비가 얼마나 큰가. 우리가 만약에 우리의 마음에 품고 우리가 진 사랑의 빚과 우리가 받은 주님의 무한한 은총과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인가를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면 아마 우리가 죄를 선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은 어찌 다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이 두 가지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시인이 홀로 벗어날 수 없는 그 죄의 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우선 첫째는 자신의 소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소원이라 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가장 큰 바램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리고 그 바램이 크면 클수록 다른 모든 것들, 다른 작은 바램을 그 큰 바램의 성취아래 굴복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소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을 누르고 있는 것은 죄였고 영혼은 죄와의 싸움에서 지쳐 피곤하여졌고 죄의 맹공격을 받아서 그의 육체는 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하나님 앞에 참회하면서 그의 소원은 이제 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되었고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께 소원을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소원이 하나님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고 살아가는 신자의 행복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방법으로 우리들이 선택한 죄를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십니다. 단 우리가 그 죄를 그냥 움켜쥐고 있고 주관적으로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 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수 없지만 우리가 그 죄의 악함을 깨닫고 그것을 버리려고 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향해 두었던 소원을 거두고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그 소원을 돌려 바치며 자신을 죄에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할 때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오묘한 지혜와 방법으로 우리의 죄를 통해서 오히려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불결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통해서 우리가 깨끗해질 필요가 있는 인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악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신뢰할 수 없고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의지할 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인이 자신의 소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을 때 죄가 그를 이기고 있을 그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죄의 늪에 빠져 고생하는 신자들이 자신의 소망이 이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 죄에서 건져주시고 진리와 거룩의 빛 가운데서 살게 하시는 아버지께 있다고 고백할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그 죄의 늪에 빠져 죽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두 번째로는 이 시인이 자신의 이 죄로 인해 탄식조차도 하나님께 열납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 그리고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깊은 찬송만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신음하는 자신의 탄식도 하나님께 열납 된다는 것을 시인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가운데 깨달은 하나님의 부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인은 죄 가운데 버림받은 것 같을 때에 아버지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죄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그 어두움에서 벗어나면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죄로 인하여 병들어 토해내는 신음소리조차 들으시는 아버지의 부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 죄 대신 하나님을 다시 선택하게 되었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관계의 복원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자신은 말할 수 없는 절망을 안겨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이고 우리의 죄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에 깊이 뿌리박혀있습니까! 그러함에도 주님이 고치지 못하시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치유할 수 없는 죄의 상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용서하시고 자기의 자녀들의 작은 탄식에도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듣고 아버지 앞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오늘도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이런 주님을 찾는 마음을 주시고 그래서 사죄의 은혜를 주시고 그 크신 은혜를 경험하며 오히려 죄를 인해 하나님을 더 자랑하게 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