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새벽예배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브리서 10:1)
녹취자: 김용재
우리들이 극장에 가면 본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예고편을 합니다. 예고편에서는 본 영화를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곧 개봉할 영화의 몇 장면들을 엮어서 맛보기로 보여줍니다. 그것을 보면 저 영화 참 재밌겠다거나 별로겠다는 판단을 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구약은 신약의 예고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이 율법으로 대표가 됩니다. 왜 그렇게 율법이 대표가 되느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하나님 앞에 용서 받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율법이 기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다스리시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율법이고 하나는 은혜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은혜의 힘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그것은 아닙니다. 율법 안에는 그런 작용이 없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혹은 본성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세 하십니다. 그런데 율법만으로는 온전히 순종해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율법을 통해 사람들을 다스리지만 그 율법을 통해서는 사람들이 죄를 이기고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구약성경이 복잡해 보이지만 율법을 중심으로 엮어진 책입니다. 구약성경은 그 별명이 토라 느빔 우 케트빔입니다. 토라는 모세 오경이고 느빔은 선지서고 케트빔은 성문서입니다. 3부로 되어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3부 자체도 율법이 중심이 되고 그 율법을 각각의 선지자들이 자기 시대에 적용한 것이 선지서입니다. 나머지 성문서도 율법을 노래하거나 율법을 찬미하거나 그 율법아래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노래나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율법이 핵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장차 일어날 모든 좋은 일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림자라는 것은 그것 말고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나타나진 않았어도 벽 뒤에 가려있지만 그림자가 드리우면 나타났구나 하고 파악하게 되듯이 구약에서 율법을 통해서 죄인인데 그 죄인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타절 당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의 용서를 받고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새 삶을 살게 되고 하는 이런 작용이 일어났다고 하면 결국은 그가 언젠가는 그렇게 죄를 용서받는 방식 말고 정말로 완전히 용서를 받아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용납되는 그러한 본편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율법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이라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를 통해 잠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그림자에 불과했고 진짜 좋은 일은 이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는 새 언약을 통해서 다시 오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옛 제사는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하고 잠시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는 길은 열어주셨지만 그 죄인을 온전케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음에 있어서 온전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속죄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는 속죄의 효과가 있기는 있는데 온전하고 영원한 효과를 가짐으로써 그 속죄를 온전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속죄의 희생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심으로 말미암아서 과거의 율법을 통해서 잠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던 그 그림자의 실체를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영원한 구원을 우리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늘 당장 이 시간에라도 하나님 아버지 죄인이 여기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고 기도할 때 그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고 상상 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특권입니다. 감히 누구도 그런 특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새 언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그 복됨과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을 모릅니다. 요번에도 중국에 40명 가까이 갔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습니다. 뭘 느꼈는지 물어봤습니다. 모두 공통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풍족하고 부족한 것 없이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애절한 마음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혹은 너무 고민하는 내용들이 너무 부끄러운 내용들이고 사치스러운 고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정말 구약을 제대로 아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구약을 제대로 알고 구약의 의미나 이런 것들을 깊이 터득하고 나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 언약 구원을 통해서 그 언약의 수혜자가 된 이 신분과 상태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