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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새벽예배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8)
녹취자: 박은경
큰 환난과 시련을 당하면서 고난을 받아서 어떻게 보면 세상이 이긴 것 같습니다. 칼로 찌르면 죽고 돌로 때리면 피가 터져서 사망하고 톱으로 켜고 잘라지는 것을 보면 사실 세상이 이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핍박을 당하고 죽고 고난을 받아서 심지어는 순교하는데, 어떻게 세상이 이긴 것 같은데 반대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겼다 졌다’를 세상에서만 승부가 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육체밖에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었으나 오히려 그 믿음으로 말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을 따라 죽었기 때문에 땅에 쏟아진 그 피가 소리쳐서 주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을 옳고 가인은 잘못 됐다는 판결을 받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세상이 감당한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비참하게 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믿음을 지키며 죽어 가는 사람도 모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 심어놓으셨는데 그들에 의해 이 세상이 변화되려면 그들이 세상보다 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믿음생활을 할 때 끊임없는 고난이 있는데 그것을 이기면서 살게 하는 힘이 바로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만이 믿음을 따라 죽을 수 있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고 믿음을 따라 죽은 사람들은 사나 죽으나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암혈과 토굴과 광야와 산중의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이 높여주신 적도 있지만 세상에서 전혀 그런 기회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유리하며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세상이 그들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따라 산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도 동시에 세상을 버렸습니다.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대신에 그들도 세상을 버리고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을 유리하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야합과 타협의 시대입니다. 나는 이세상의 풍조가 어떠하는지 믿음을 따라 살겠다는 결의보다는 적당하게 세상과 야합하고 타협해서 고난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인 시대입니다. 파도가 암벽을 치면 거품이 어마어마하게 일어나나 잠시 후면 모두 사라지듯이 우리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모두 거품과 같은 인생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론 약할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고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출 때도 있지만 돌아서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믿음을 따라 살기 위해서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고 시련을 받아야 하는 그 때에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큰 위로를 주고 또 하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당한 것을 묵상하는 것도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이 그들도 도우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매일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큰 사랑과 위로가 넘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