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새벽예배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히 11:39)
이 성경구절을 보면서 좀 이상 하다라는 생각을 갖죠.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죠.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갔더니 하나님이 그곳에 믿음으로 오신 것 아니에요! 노아에게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죠. 물론 모세에게도 약속을 주시고, 요셉에게도 약속을 주시고, 야곱에게도 약속을 주시고, 이런 약속을 받았고, 이런 약속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믿음을 따라 산 사람으로 여겨 질 수 있었고, 또 이들이 많은 고난을 당했는데, 그런 많은 고난을 당할 때 에도, 무엇 때문에 그 고난을 당한거에요? 그렇죠. 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거거든요. 그랬는데, 이 사람들을 가리켜서 증거를 받았지마는 약속은 못 받았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거거든요. 어떻게 해명이 되냐 하며는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증거는 뭐고 약속은 뭐냐 이것을 생각을 해야되요. 여기서 나오는 약속은 아까 제가 말씀드린 구약의 인물들이 각 시대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받았던 그 약속은 아니에요. 그 약속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니에요. 그 하나님을 만나고 받았던, 각기 각기 받았던 약속은 보다 더 완전한 약속을 증거하는 것이였어요. 그 보다 더 완전한 약속이 뭐냐 하며는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런 예수그리스도 자신이 사실은 약속이에요. 여기서 약속은 약속의 실현을 이야기 하는 거거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께로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 그래서 우리를 모든 죄와 불의에서 해방 시켜 주시는 것. 이게 바로 말 하자며는 여기서 이야기 하는 약속이에요. 그러니깐, 구약의 인물들이 굳게 믿었던 하나님의 많은 약속들이 최종적으로 이 약속을 증거하는 것들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그들의 시점에서만 보면 그들이 받은 약속이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최종적으로 그들에게 드러나고 싶어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었으니까, 그렇게 보며는 그들이 받았던 많은 약속들이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성경의 예를 하나만 더 들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살았죠. 근데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기를 애굽의 모든 보화를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보다도 귀하게 여겼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예수님을 보기나 했습니까? 보지 못했잖아요. 그럼 그게 뭐냐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증거하는 약속을 붙들면서 산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력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좋아 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이었다 이거죠. 그러니깐,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은 결국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완전한 구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죠. 증거하고 있었다 이거죠. 그러니깐, 구약 쪽에서 신약을 바라보면 그 약속 하나 하나가 훌륭한 약속이었는데, 그래서 충분히 그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었어요. 신구약 다 있어도. 근데 신약 쪽에서 이렇게 바라 보며는 참 신기한거죠. 야! 그 히미한 등불을 붙들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죠. 이쪽에서 보며는 그 시대의 사람들마다 다 감격했던 자기에게 주어진 그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사실 알고 보니깐, 완전한 약속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그 구원을 증거하는 증거에 불과 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시대에는 이 신앙의 책임이 더 막중 한거에요. 왜냐하며는 이제는 우리가 단순히 그런 증거를 붙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확실한 약속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살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의 이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보다 더 믿음으로 살 위치에 있고 이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았던 것 보다 더 훌륭하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믿음이 없이 불순종 가운데 살면, 구약의 성도들에게 꾸지람을 받을 거에요. 어쩜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빛을 주시고 너희에게 이제는 죄와 어두움의 뿌리치고 빛 가운데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셨는데, 여전히 죄에 지고 종노릇 하며 사는냐! 믿음이 없이 사느냐! 라고 말이죠. 그래서 이들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았지마는.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면서 살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거에요. 그래서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일에 마음과 생명을 드리는 그런 진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