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편에 서 있을 때
“날이 세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국데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좆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행 23:12-21)
사람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성품이 있는 것 만큼, 자기가 싫어하는 것 만큼 배척하는 성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열심보다 싫어하는 것을 배척하는 힘이 더 크게 나타날 때가 있는 것이죠. 자신들이 믿는 것과 바울이 믿는 것이 다르다고 하면 그러면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그리고 자신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도를 따라가면 그만 일텐데 근데, 이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바울이 너무나 확실 하게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니깐, 그들이 이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을 한 거죠. 사십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과격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게 뭘까요? 금식이잖아요. 그러니깐,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도를 들으면서 이 도 자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중대한 모독이라고 들은 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중대한 모독이고 하나님을 향한 그런 중대한 모독이기 때문에 이제 자신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중대한 모독을 행하고 있는 바울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겁니다. 예수님을 박해한 많은 종교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박해를 했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에 뒤를 따라서 사도들을 박해한 많은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박해 한 것입니다. 사실은 오늘 핍박을 받고 있는 바울 자신이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다메섹에서 그렇게 예수님의 도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달려 갔습니다. 근데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거기에 자기 자신을 헌신할 때, 그는 아주 굉장히 커다란 죄를 지어도 스스로 모를 정도로 그렇게 완전히 눈 어두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눈이 어두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범하는 큰 죄에요. 무엇을 확신한다라고 할 때에는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아주 명백히 드러나는 그런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근데,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런 것을 심명을 바쳐 헌신하게 될 때, 그는 반드시 하나님앞에 죄를 짖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사람들은 유대교에 뛰어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제 그들이 궁리하는 방법에 의해서 드러납니다. 속임수에요. 그리고 살인이에요. 그래서 이제 다시 지난번이 그냥 돌려 보냈지만, 요번에는 공회에서 할 말이 있다고 그래라, 공회는 사실은 유대인의 공회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권리가 없어요. 그렇지만, 종교적인 관용 정책에 의해서 이것이 종교에 관한 문제이니깐,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 이니깐, 그들에게 법적인 권한은 없지마는 그들에게 있는 이 종교적인 규율이나 제도를 로마가 인정 했다 이것입니다. 자기들은 모르니깐, 한번 너희들이 판단을 해봐라, 너희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그래서 바울을 데려 간 것이니데, 자기들 끼리 싸움을 하느라고 결국은 판단을 못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다시한번 청해라. 바울을 결국은 보낼 테니깐, 그러면 공회에서 이야기 해 봐야 어짜피 죽일 권한이 없으니깐, 매복해서 중간에 습격을 해서 쳐치해 버리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까! 사람을 이렇게 죽이는 것이, 또 모세의 율법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신성모독의 죄를 지으면 죽일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도 분명히 증인들의 판단에 의해서 재판에 따라서 그렇게 죽이게 되는 것이지, 이렇게 거짓말로 오라해서 중간에 습격을 해서 죽여버리는 이런 것들이 진짜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당신을 섬기라고 이야기 하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며는 이런 식으로 교회에서 자기내 생각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려고 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존오웬 같은 청교도는 개탄을 합니다. 어떻게 자기들하고 예배드리는 방법이 틀리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느냐 이거에요. 교회에 주어진 권세는 영적인 권세이니, 만약에 그것이 옳지 않는 것이면 기도하고 성경으로서 논증을 해서 옳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진리로 깨우치고 그리고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거짓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하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섬리 가운데서 그들이 그 진리인 것처럼 위장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영적으로 교회를 방어 해야지, 자기내들이 믿는 카톨릭하고 틀린 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또, 자신들이 믿는 국교도 하고 틀린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 때문에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여버리고, 가족들을 모두 결박해서 투옥하고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느냐, 개탄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일입니다. 옳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 그래서 이교가 되었거나, 이단이 되었거나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죽여버리겠다라고 하는 적개심을 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한거름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깨닫게 하고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앞에 돌아 오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해야지, 이렇게 죽여버리겠다라는 이런식은 진짜 하나님이 당신을 이런식으로 섬기라고 우리를 부르셨냐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것들을 보며는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지니라 이런 식으로 하는 열매를 보면서, 결국 그들 안에 있는 그 종교적인 열심히 정말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배의 정해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또하나 배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그릇 된 것을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입니다. 그릇된 것을 일단 믿게 되며는 그다음에 그것이 진리가 되어서 그것과 다른 모든 것들을 거부해요. 그것을 올바로 선택하지 못할 때, 그 영혼에는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진리를 믿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신앙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올바른 신앙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탐구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배울 뿐만아니라 그것이 진리인지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그 진리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고 그리고 그 진리를 실천하고 그래서 그 진리 안에서 참된 것과 거짓 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가야 합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신자의 성화의 목표를 이 참된 것과 거짓 된 것을 구별하고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흠없이 이르게 되는 것. 이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잘 분별 할 수 있고 그다음에 사랑으로서는 점점더 순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해서 흠이 없는 사람이 되고. 행동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허물없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주님이 구원 받은 신자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의 계획이요, 의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보니까, 그다음에 어떤 일이 생겼냐하며는 그들의 계획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궁리를 했는데, 그들중에 스파이가 있었습니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사도바울의 생질이라고 여기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와서 그 사실을 바울에게 전하니깐, 백부장 천부장에서 부탁을 해서 그것을 전하는 겁니다. 그때에 이사람들은 이사람이 전하여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 밖에 없었어요. 왜 그렇습니까? 이 죄수는 보통 죄수가 아니에요. 로마인입니다. 만약에 이사람을 그곳으로 데려가다가 습격을 받아서 만약에 죽었데더라 그러면, 이건 엄청난 벌을 받아야 됩니다. 죄수도 아닌 사람을 잡아다가 잘 못 관리를 해서 중간에 죽였다, 그럼 엄청나게 중대한 과실을 범하게 되고 그리고 결국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깐 이 지휘관들의 입장에서는 이 소식은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였고 아주 굉장한 소식 이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을 의지 하고 주님의 편에 서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망성이 없는 것 같은 막다른 골목길과 같은 그 위기 속에서도 벗어 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홀로 놔 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중요한 것은 우리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우리가 헌신하고 우리가 믿는 바가 진짜 주님께 속한 것이냐.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삶이 주님이 당신의 편에 서있는 삶이라고 인정해 주시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신이 진리 편에 서있으면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떠 받들고 추앙해도 자기가 서있는 그곳이 진리의 편이 아니면 그는 혼자입니다. 왜냐이면, 혼자이냐 혼자가 아니냐의 문제는 진리의편인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고 계시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생활 하면서 진리의 편에 서려고 할때에 많은 반대에 부딫히게 됩니다. 오른 가치를 유지하려고 할 때 많은 저항들을 만나요. 그때에 그 모든 저항, 그 모든 방해 이런것에도 불구하고 진리편에 설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외톨이 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보니깐 주님이 뭐라 하셨어요? 바울이 홀로 있는데 밤중에 나타나셔서 담대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거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지금 너가하는 일을 인정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네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 한 것처럼 황제앞에서, 로마에 가서도 네가 이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예수님그리스도께서 말씀 하셨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진장한 다수는 많은 무리들 지은 사람들이 아니라 진리편에 서있는 사람이 다수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 사람, 그 사람이 다수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두려운 것은 난관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는 그런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가 주님의 편에 서있는가 그리고 나의 생각과 지금 내가 행하는 것 그리고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 정말 주님께 열랍되는 성질의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편에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짜피 이세상은 진리의 편서 서면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진리를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위로를 받지만, 때로는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