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소서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개인적인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개인적인 문제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죠. 그래서 병원에 심방을 가게 되면 찬송을 불러주는 것은 원하지 않아도 기도해주는 것은 모든 불신자들도 좋아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그런 소원함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을 이렇게 보면 좀 걱정스러운 것은 뭐냐면 신앙이 너무나 개인화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 신자가 제대로 만나고 나면 그러면 분명하게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의 주도적인 소원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지 하는 주도적인 소원이 생겨나면 그러면 그 마음의 소원을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라는 주도적인 소원이 생기게 되면 자기만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될 텐데 하는 공동체적인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상황을 이렇게 보면 신앙이 너무나 개인화 되어갑니다. 그래서 쉽게 이야기 하면 자기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자기의 필요한 것을 얻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에 자기에게 주신 그 도움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이죠. 뭐 겉으로 보면 문제가 있을 수 없지만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신앙이 이렇게 개인화 되어가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능력과 은혜, 사랑, 이런 것들은 모든 것을 구해도 역시 개인적인 삶을 안전하게 하고 개인적인 삶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이런 것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을 때에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 가야할 전체적인 삶의 계획, 그리고 계획과 관련된 하나님의 공동체의 소명,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말하자면 분명한 인식이 없고, 자기중심적이고, 안일한 신앙에 빠지기 쉽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이 에베소서를 쓸 때에 바울은 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도 이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것은 뭐냐면 나로 하여금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파하도록 도와 달라. 사실 옥 속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그 옥 속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아니하고, 무엇보다도 빨리 그 옥살이에서 풀려나오는 것이 가장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옥사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부탁했고 또 감옥 속에서 쓴 빌립보서에서도 역시 똑같이 이렇게 자기는 옥 속에 매였지만 그러나 이 옥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관심사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그를 통해서 복음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가? 거기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도가 오늘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그것을 보면 감옥 속에서도 이 사도바울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쉼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그 말씀을 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고 변화 받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항상 이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그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하나의 커다란 저수지라면 그 우리 개인의 삶은 그 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그 물줄기가 흘러드는 그 저수지 아래 흩어져 있는 논이나 밭과, 유사합니다. 그 저수지에 물이 넉넉하면 그 물길을 따라서 그 맑은 물이 저수지에서 흘러나오고, 흘러나온 그 물이 물길을 따라 두루 돌면서 논에 밭에 넉넉하게 물을 대는 그래서 파종을 해도 거기에서 곡식들이 자라고, 그리고 모를 심어도 거기에서 벼들이 자랍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 물이 넉넉하게 흘러 내려오면 그러면 이제 아주 넉넉하게 물리 흘러들어가죠. 그래서 가득 채워져서 그래서 그 모든 논과 밭은 넉넉하게 물댄 그런 논과 밭이 되어서 결실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 저수지에 물이 마르게 되면 그러면 그 밑에 있는 논과 밭은 모두 함께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저수지 관리를 매우 엄격하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낚시를 하거나 보트를 타는 일이 금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물을 함부로 빼면 큰일 납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식 때 받은 반지를 까불고 놀다가 저수지 물에 풍덩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으면 아이고, 그 깊은 저수지에 반지가 빠졌으니 어떻게 하나. 아깝지만 할 수 없다. 그리고 생각을 접었을 것인데 이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 도저히 그 반지 빠진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이 사람이 밤중에 몰래 가서 그 큰 저수지의 물을 반지 하나 찾으려고 다 뽑아버렸어요. 그래서 결국은 그 물을 다 흘러가게 해서 결국은 그 반지를 찾고, 자기는 구속되었습니다. 왜? 그 물을 다 뽑아버렸으니 1년 농사를 어떻게 짓겠습니까. 그 아래 있는 농토지에 말이죠. 교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보면 개인이 시험에 많이 드는 그런 성도들을 보면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교회가 말랐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교회에 은혜가 넘쳐서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그 교회에 복이 넘칠 때 그 때 그것들이 흘러들어가서 이상하게 성도들의 삶에 기쁜 소식들이 들려오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그리고 왜 그런지 자신의 개인의 삶에서 고통 받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변화되고, 은혜를 받고, 그리고 회심하지 않던 사람들이 회심하고 하는 이런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회는 수원지와 같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면 이 교회의 영적인 축복과 개인의 삶의 축복이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가 성전을 짓지 않고 중간에 멈추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외치잖아요. 그 성전을 짓지 않고, 이제는 성전을 지을 때가 안 되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부지런히 돈을 벌어서 애를 쓰는데 결국은 보니까 끊임없이 돈을 갖다 집어넣어도 구멍이 뚫어진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지체 한 사람을 만났는데 신앙적으로 많은 시험이 들어서 그래서 교회를 좀 멀리 떠났어요.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그래서 어떻게 좀 많이 벌었냐? 그랬더니 그 고백이 참 재미있어요. “목사님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그럴 때에 목사님이 평소에 설교하던 구멍 뚫어진 전대생각이 났어요.” 부지런히 벌어서 돈 주머니에다 열심히 집어넣는데 그런데 얼마쯤 지나고 나서 이렇게 보면 번쩍 들어보면 돈은 어디로 다 세어 나가고 빈 주머니밖에 없데요. 이것이 정말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이 두 가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교회가 건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넘치는 저수지와 같은 역할을 잘 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교회에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큰 빌딩이나, 넓은 땅이나, 이런 것이 교회의 최고의 축복이 아닙니다. 교회의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거기에 보내어주시고, 보내어주신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변화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옥 속에서 갇혀있는 불편하고 고통 받는 상태에서도 담대하게 예수의 복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옥 속에서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었다면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담대하여” 라는 말이 필요했겠습니까. 그 모든 것들을 방해하고, 억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함” 이라는 말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런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복음을 외치고 싶었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서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들은 영혼들에게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서 같은데 보면 옥 속에서 이렇게 복음을 전했더니 오네시모 같은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깊이 변화되어서 도망 나온 노예와 같이 쓸모없던 사람이 감옥 속에 들어와서 사도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 앞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무익하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 앞에, 바울 앞에 매우 소중하고, 요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축복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옥에 갇혔지만 사도바울을 통해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갇히지 않았습니다.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끊임없이 영혼들이 변화되고, 영혼들이 변화되었다는 소식이 밖으로 흘러나가서 성도와 교회에 큰 위로와 기쁨을 아울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놀라운 역사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가 이 일을 위해서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이 일을 통해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죠. 우리의 가장 축복은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들을 보내어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주님 없어도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이 없기 때문에 고단하고,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고통 받고, 하나님의 참된 영혼이 없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마음에 감동과 감화를 받아서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린 사람들이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복음을 듣다. 주님을 만나서 깊이 변화되는 그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 변화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이 변화되고, 구원 받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게 되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죠.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은혜위에 또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은사까지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고, 이 영혼들이 변화되고, 그 영혼들이 구원 받는 일을 위해서 쓰려고 하는 사람, 이 모든 일에 참다운 변화가 바로 이런 영혼의 참다운 변화가 교회를 통해서 일어나게 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 성도들을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 빨리 석방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나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내가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죠. 바울 안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죠.
저는 참 어제 주일이었는데 말이죠. 신기한 것도 아니고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참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깨닫게 됩니다. 뭐냐면 똑같은 설교를 하는데도 3부 예배가 그렇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그 한 주간 동안 그 추운데 청년들이 어떤 청년들은 머리까지 감고 나와서 말이죠. 아침 새벽에 5시30분에 나와서 그 새벽에 그 많은 청년들이 나와서 저기 3층에 다 들어갈 때가 없어서 꽉 차서 그렇게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데 그 다음날 금방 표시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 성도들이 매 주마다,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면서 일주일을 살다오면 주일이 얼마나 놀랍게 달라질까?” 지난주가 최근 6개월 동안에 성도들 중에서 제일 많이 나온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1900명 이상 나왔습니다. 매 주 숫자를 제가 보고를 받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숫자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부르짖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아주 뚜렷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합니다. 그것은 기도의 세계는 너무나 정직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기도에 당신이 살아계시다. 고 하는 것을 응답해주십니다. 이번 주에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가슴이 애달프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이 주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영혼들에 대한 진실한 회심,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 이런 것들이 나타나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하고, 그리고 주님의 은혜에 사무쳐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까요. 정말입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교인들이 사도바울에게 기도를 받아야 마땅하지 뭐 그렇게 어린 신자들이 대 사도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도해도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 우리 교회에 그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사는 것이 하나님 없이 1년을 사는 것보다도 더 많은 영광이 나타날 수 있도록 주님과 동행해,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경회 때에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는 그것입니다. 하나님 사경회에 하나님께서 이 담임 목사의 입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하고 능력 있게 전파되게 하시고 나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해주십시오. 그래서 교회가 수원지와 같이 은혜의 강물을 가득 담은 교회가 되도록 역사해주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의 개인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주님의 축복이 우리의 삶에 머무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부르짖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