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12일 새벽예배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 59-60).
이것이 스데반의 최후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진짜 참된 진리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가 하는 것이 여기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얼마나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 사람들은 마지막에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순간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우리들이 매우 특별한 헌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때문에 신앙을 잘못 갖게 되면 그러면 굉장히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약에 이 사람들이 오히려 무엇이 진리일까에 대해서 확신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면 아마 이렇게 커다란 범죄를 하진 않겠죠. 제일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잘못 알고 확신하는 것... 더 무서운거죠. 그렇게 될 때 그는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 되는 거죠. 굉장히 무섭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예요. 이것이 오늘 나타나고 있는 거죠.
이 스데반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 마지막에 순교하는 순간을 통해서 보면서 우리가 몇 가지를 배우게 되는 거죠. 첫째는 뭐냐하면 그리스도와 매우 친밀한 교제를 나누던 사람이었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것을 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정죄하고 돌로 쳐서 죽이는 그 상황에서도 이 사람 스데반은 자신의 영혼을 그리스도 예수께, 하나님께 부탁할 마음이 생겨났어요. 이것은 고난을 받는 어느 한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들이 흔히 고난이 오면 주님을 의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고난이 왔을 때,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깊이 고뇌하면서 주님을 깊이 의존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평소에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 평소에 주님을 향해서 가지고 있었던 신앙, 이런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지 없었던 것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은 주님을 향한 깊은 친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주님과 친교하던 사람이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죠.
두 번째는 뭐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돌을 던지면서 죽이는데, 이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잔아요.. 하나는 뭐냐하면 그 사람들이 자기를 박해하고 있다 라고 하는 거죠. 사람에게 먼저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핍박을 받는거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두 번째 의미는 뭐냐하면 그 자체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자기를 돌로 쳐서 죽이는 거예요. 그들이 율법을 어긴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심판 행위에요.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신들이 심판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처단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심판하고 처단을 하는데, 그런데 그런 것을 이 사람이 한몸에 다 받으면서 그러면서 고난을 당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죠. 이것이 하나의 사랑이거든요, 사랑...그런데 이 사랑은 원래 엄격하게 말하면 그 사람의 인격 안에 맺히는 특성이에요. 인격의 열매죠. 그래서 어느 한 순간에 확 하고 사랑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어떤 은사라기 보다는 주님을 알고 그 다음에 자기를 알고 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인격 속에 생겨나는 하나의 긍휼히 여기고 그리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기여하고자 하는 하나의 성향이예요. 그건 사실인데, 그런데 그런 사랑이 인격 안에 맺히지만 성령께서 특별히 어느 한 순간에 그에게 더 큰 은혜를 깨닫게 하실 때에 이 사랑이 불 일듯 일어나는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의 인격 안에 맺히는 특성이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사랑이 특별히 불 일듯 일어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잘 이해가 될거예요. 정욕있잖아요. 정욕... 사람에게는 이 정욕이 언제나 마음에 있죠. 그러나 이 정욕이 항상 똑같은 정도로 역사하는 것은 아니예요. 마치 불이 계속 있지만 그 불에다가 잘 타는 것을 집어 넣었을 때에 불이 확 일어나고 그것이 다 탔을 때에 불이 꺼지진 않지만 사위듯이 정욕도 그렇단 말이예요. 자극을 받지 않고 타는 물건들이 옆에 없으면 정욕이 계속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불타오르진 않아요. 그것이 적당한 계기를 만나면 확 하고 타오르는 거예요. 사랑도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사랑도 죄를 죽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감화를 받은 만큼 우리 속에서 늘 살아있지만 우리 속에서 어떤 계기가 있으면 이 사랑이 확 하고 타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랑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사냐, 아니면 인격에 맺히는 은혜의 결과냐... 이게 두 가지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거란 말이죠. 그걸 여기서 보는 거죠. 그래서 원래도 스데반은 경건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마 사랑의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자신을 돌로 내리치며 그러면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그 순간에 성령님께서 다시 한번 역사하셔서 이 스데반에게 정말 사랑의 마음을 불 일듯 일어나게 하신거죠. 그러니까 그 사랑이 확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그들이 자기를 돌로 죽이는 악행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기를 죽이는 영혼들의 비참함이 먼저 생각나는 거죠. 사랑은 이처럼 자신의 행복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상태를 더 먼저 생각하는 특성이 있는 거죠. 그게 사랑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는 거에요. 그것이 사랑의 특성이예요. 이런 특성을 이 스데반이 보여준 것에요.
마지막 세 번째는 뭐냐하면 이러한 모든 모본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주어지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데반은 예수님을 그대로 닮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라는 그 스데반의 기도는 예수님의 일곱 번째 기도예요.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 하는 것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예요. 일부러 흉내를 내려고 이렇게 했던 것은 아니예요. 오히려 깊이 스데반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은혜에 붙잡혀서 그래서 사랑의 모본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모본을 닮게 된거죠. 그분에게서 배운거죠. 단순하게 흉내가 아니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향해 돌로 치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거예요. 스데반이 바로 이제까지 증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리고 자신이 돌로 맞아 죽는 순간에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과 똑같은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고난을 받는 거죠.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살았던 스데반의 일생의 모본을 반영하는 것이예요. 이런 사랑에 힘은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힘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주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결과예요. 그리고 그 은혜가 어느 한 순간에 불 일듯 솟아나면서 그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깊은 연민에 붙잡히게 되는 거죠. 이 정신이 바로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의 신앙이었어요. 이후로 이런 신앙이 모든 순교자의 핏속에 흐르는 거죠. 그리고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죽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예요. 우리가 바로 이런 삶을 살도록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무리 이 세상이 악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반대해도 원한이 맺힌 사람처럼 세상을 미워하고 살면서 그러면서 이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이것을 이기게 만드는 힘은 원대한 사랑의 힘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이기게 되고 그리고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