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을 돌로 침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 7:54-58).
역사를 말할 때까지는 그래도 견뎠는데 그 역사를 해석을 하고, 그다음에 그것을 적용하고, 그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주었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스데반을 박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제 스데반의 이 말을 들을 때에 마음에 찔렸다. 그랬습니다.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적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도록 흘러가는 역사로 보고. 그리고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오시도록 증거하고, 그리고 또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외쳤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핍박하고 죽였던 것처럼 그렇게 죽어가는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예수는 너희들이 죽었다. 너희들이 그 죄 값을 어떻게 받으려고 하느냐. 그거죠. 그래도 이제 놔뒀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죽었으니까 너희들이 회개하고 그리고 죄 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 구원 받은 백성들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설교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죄를 지적하자. 이들이 그것을 듣고 다음에는 이 스데반을 핍박하게 된 것이죠. 이것이 마음에 찔렸다. 그랬는데 이제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이 이것보다 짧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내용은 같은 내용입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신 메시야이다. 죽인 것이죠.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이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랬습니다. 둘 다 마음에 찔렸는데 베드로다 설교할 때에 마음에 찔렸던 사람들은 회개하죠. 그리고 구원을 얻는 역사가 나타났고, 이 사람들은 마음이 찔렸는데 오히려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한쪽은 마음에 찔린 그 깊은 양심의 가책이 그들을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대로 데리고 갔고, 그리고 한 쪽은 마음에 깊이 찔렸을 때에 그것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는커녕 강퍅하여서 범 죄 하는 대로 그들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두 사람들 사이의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깊이 찔려서 고통을 받다가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붙들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씀을 듣고 깊이 찔렸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아주 강퍅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뭐냐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래서 그들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제 진짜 때가 이르고 구원 받아야할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가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밭에 나가면 수박 같은 것들을 쭉 기르잖아요. 수박 매달린 것을 농부가 그냥 보는 즉시 수박이라고 생긴 모든 것을 따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죠. 아침 마다 나가서 수박 하나, 하나를 살피고 두르려보면서 그러면서 상품가치가 있고, 먹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오는 것이죠. 그다음에 또 나가서 또 두드려보면서 또 따가지고 오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이 다 전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 강퍅하게 반항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주 강퍅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 살인의 의도를 가지기까지 한 박해를 받을 때에 이 스데반은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셨다.” 라는 의미는 “앉으셨다.” 라고 하는 의미는 이제 당신의 일을 끝내고 다스린다. 라는 의미이고, 일어서셨다. 라고 하는 의미는 뭔가 당신이 개입하시지 않으시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스데반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이 현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외치는 것입니다. 그 때 이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강퍅함이 극도에 달해서 그를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서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면 자기들이 훼방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죽였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 우편에 서서 계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나타나신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니까 이 사람들이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강력한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느끼면서 생겨난 이 분노가 진짜 거룩한 분노였다면 이런 식으로 자기 동족을 쳐서 죽이는 식으로 반항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 분노가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의 혈기였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재판의 절차도 없이 돌로 쳐서 죽이는 살인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행법으로도 잘못된 것이고, 그리고 율법으로 봐도 잘못된 것이죠. 재판을 해야죠. 그런데 바로 쳐서 죽인 것입니다. 이는 살인입니다. 그래서 그 돌로 쳐서 죽인 것입니다. 그 때에 이제 사람을 죽이는 때에 옷을 사람들이 겉옷을 벗고 사람을 치게 되는데 그 때에 그 옷을 맡아주던 사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울입니다. 이 사울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펼쳐나갑니다. 얼마나 놀라운 아이러니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는 그 복음을, 복음을 대적하던 사람들에게 믿어지게 해서 그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