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8일 새벽예배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60).
이 장면은 이제 스데반이 긴 설교를 계속 하다가 다 못 끝냈죠. 그리고 이제 결국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죽일 수가 없죠. 신앙적으로도 물론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종교적으로도 그렇게 할 수 없고, 또 법률적으로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죠. 종교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설령 백번 양보해서 스데반이 전파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중대한 신성모독이었다 할지라도 재판을 거쳐야 합니다. 두 세 증인에 의해서 그래서 제사장 앞에 가서 재판을 거쳐야 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난 후에 처벌할 수 있었던 거거든요. 법률적으로는 이때가 로마의 지배를 받는 때였으니까 로마법에 의해서 이 사람을 고발을 하고 마치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재판을 받아야 됐다 라는 거죠. 그런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돌로 쳐서 이 사람을 죽였으니까 신앙을 떠나서 종교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무서운 살인행위였다는 거죠. 그런데 그 일을 행한 거에요.
그게 뭐가 그렇게 행하게 했냐 그런 거거든요. 결론은 뭐냐하면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이 당시의 성경인 구약성경에 입각한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수 있었던 것이예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을 가르치면서 하신 일은 뭐냐하면 구약을 해석해 주시는 일이었어요. 당시엔 신약성경이 없었으니까요. 구약성경을 해석해 주신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 되었거든요. 구약성경을 해석한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 뭘 보여주냐 하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아주 올바른 구약신앙, 그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전파된 복음과 만나는 거거든요. 그런데 당시 이 유대인들은 그렇게 올바른 구약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나 달랐고,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지만 그분의 참된 진가를 알아보지를 못했던 것이죠. 결국 스데반을 죽인 것은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스데반이 가지고 있는 것과 일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스데반이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신앙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말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그러고 스데반을 죽였지만 결국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스데반으로 하여금 죽임을 당하겠끔 만든 요인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거기에서만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옳지 않은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무서운 힘이 나오는 것이에요.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힘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요. 그러나 이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이런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처럼 인간을 죽이고 핍박하고 하는 무서운 것으로 나타난다 말이죠. 그러니까 올바른 신앙을 가지지 않고 잘못된 것을 신앙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확신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것이예요. 그리고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이 얘기죠. 그래서 결국은 스데반이 이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그 마지막 죽는 모습이 아주 굉장히 인상적이죠. 그래서 뭐냐하면 그들이 이제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 똑같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거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것이었어요. 이번에는 ‘예수님이여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리고 죽어요. 두 번째는 뭐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첫 번째 남기신 말씀이 ‘저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시죠. 그런데 이 스데반도 똑같이, ‘저희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리고 죽는거죠. 이것이 결국 뭘 보여주냐 하면, 사랑을 보여주는 거예요. 사랑... 이게 벌써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하고 만난 유대인들과 스데반 속에 있는 신앙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들은 신앙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수 있었던 거죠. 그것은 그런 무자비함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신앙을 빙자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거죠. 신앙은 사랑이예요. 그리고 친절한 것이에요.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악을 행했는지 몰라요. 특히 이교도들에 대해서 말이죠. 무자비하게 행했어요. 예를 들면 십자군 전쟁 같은 때 보면 얼마나 무자비하게 이교도들을 죽였는지 몰라요. 그것은 정말 미친 짓이라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 사람이 비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경우에도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안 믿는 사람 혹은 심지어 이교도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동화될 수는 없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우리들이 이해할 수도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랑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필요하다 이거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에요. 오늘 보세요. 스데반과 그리고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던 열렬한 분자들인 스데반을 죽이는 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이 신앙의 격차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오늘 우리가 이교도를 보면서 느끼는 격차와 유사할 정도로 큰 것이었거든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데, 그리고 그 분이 하나님께 대해 중대한 신성 모독을 행하고 마땅히 죽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이 유대교 신자들에게 어떻게 합의점이 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죠. 저희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 이유가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이 기도를 남기신 것은 아주 의미 깊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으실 때 죽음이 곧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아니하였다면 나중에 당하게 될 끔찍한 심판을 예수님이 직접 당하시는 거거든요. 그때에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에 의해서 정죄되고 지금 자기가 당하는 것 같은 이 형벌을 하나님께 받을 것을 생각하니까 당신 자신의 아픔은 간 곳이 없고 그렇게 형벌을 당하고 죽을 백성들의 비참한 죽음과 고통이 떠올랐던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위해 기도한 것이에요. 이게 뭐냐하면 사랑의 힘이예요. 사랑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느끼는 것 만큼 그것이 사랑이에요. 스데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한 거에요.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흉내가 아니에요. 모방이 아니예요. 돌로 침을 당하고 신성모독의 죄를 저질렀다고 정죄를 받으면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생각하는 거죠. 자기 같은 사람을 이렇게 처참하게 살인한 이 죄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실 때 그들이 바로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거기에서 영혼들이 당하게 될 무서운 심판과 정죄의 고통이 지금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실제적인 이 돌 맞는 고통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거죠. 그래서 저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죽은 것이에요. 이것을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스데반이 자니라.’고 표현했어요. 결국 그가 비록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는 것과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날에 이 의로운 사람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부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좀 착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정말 친절히 행하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교도들에게 까지도 그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단 것이죠. 그것이 바로 참된 기독교 신앙이예요. 확신과 하나님을 향한 충만한 능력과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실하고 따뜻한 사랑이 한 사람의 인격 속에서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스데반이 보여준 것이예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제 유대인들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이 스데반의 순교가, 이제 내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난 사건이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해서 무서운 핍박이 일어나게 되고 그 핍박 속에서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확 흩어지게 되면서 복음이 놀랍게 전파되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스데반의 피와 사랑의 정신이 뿌려져서 예루살렘 교회가 삼지사방으로 흩어져서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