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8일 새벽예배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행 9:16-19).
아나니아가 이제 예수님께 말씀드렸죠. “예수님은 사울이라는 사람에게 가서 안수하라 그러시는데 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고 또 지금도 여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가려고 그렇게 온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니다 그것은 옛날의 변화되기 전의 사울의 모습이고 나는 이제 그를 택해서 이방과 임금들에게 나의 복음을 전하는 그릇이 되게 하겠다. 오히려 그가 예전에는 나를 박해하고 나를 핍박했으나 이제 나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게 될지를 그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아나니아는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말씀에 토를 달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변화의 역사예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사 사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던 제자 된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사울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동족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박해하고 심지어는 스데반을 죽이는 데까지 그렇게 각변 투표를 하면서 그렇게 열렬한 마음을 가지고 믿는 자를 박해하는 그런 삶을 살았는데 사실은 정말 여러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어떻게 자기가 믿는 신앙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그럴 수가 있겠어요. 그렇죠? 이게 순수하게 영적인 영역이고 은혜의 영역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취급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사람을 변화시켜서 자기가 핍박하던 예수의 증인으로 삼고 또 예전의 주님을 잘 알던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위대하고 큰일을 해서 기독교 선교역사의 새 장을 열고 신약성경의 반이나 되는 책들을 쓰게끔 하나님이 만드셨단 말이죠. 이게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에요. 그래서 항상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냐면 이 인간을 원래에 있는 모습대로 보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고 가치 없는 인간처럼 보이고 희망이 없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이 사람을 변화시키시면 이 사람을 통해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실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러면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평가를 내릴 수 없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사람을 바꾸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항상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쳐다봐야 해요.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간에 그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이 변화시키면 새로워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생각해야 되요. 또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들끼리도 보면서 사람마다 다 성화의 정도가 다르잖아요. 사실 어떤 사람들은 대하기가 불쾌할 정도로 무례하고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정리가 안 된 그런 갑갑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저런 사람을 변화시키시면 저 사람이 얼마나 놀라운 사람이 될까?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런 것이 교회의 정신이고 신자에게 있어서 사랑의 원리에요. 삶에 있어서 사랑의 원리에요.
그러고 나서 이제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서 아나니아가 가서 그래서 이제 사울을 기도해 주니까 사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들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되고 건강을 회복하게 된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는 사울이 아니라 회심을 하고 바울이 된 이후에 이제 바울의 삶이 펼쳐지는 거죠.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뭐냐면 사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언제 제대로 만나보기나 했습니까? 아마 아나니아도 예수님의 제자이긴 했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를 모질게 핍박하고 많은 형제들을 그렇게 핍박하면서 박해하는데 넘겨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아마 이 사울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갖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심정을 지금 예수님께 토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 설명해 주시니까 이제 이 아나니아가 가서 사울의 이름을 부를 때 “형제 사울이여!” 하고 부르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세상을 향한 사랑이요 사람을 향한 사랑이에요. “형제 사울아!” 이 사람이 변화되는걸 보지도 못했고 이 사람에 관해서 자세히 듣지도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그는 예전의 사울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를 택해서 주님의 나라와 내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아나니아가 금방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울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나니아가 그 핍박하던 사울에게 안수하기 위하여 “형제 사울아!” 하고 부를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세요. 주님의 그 말씀을 듣기 전에 사울이 변화되기 이전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마음속에 어느 정도 미움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이제 변화되고 나니까 과거의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이고 형제로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마음을 다해서 그를 안수해주는 장면을 한번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눈도 뜨게 되었고 아마 음식도 차려주어서 그래서 사울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울이 주님을 만나고 경험한 첫 번째 형제들로부터 받은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사울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이전에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박해했지만 그러나 이제 내가 박해하던 그 사람에 의해 섬김을 받고 또 세례를 받고 음식을 공급받으면서 그 따뜻한 격려 속에서 사울은 비로소 이제는 내가 예전과 같이 사람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자마자 사울은 같은 형제로부터 오는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이제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하신 계획을 따라서 그분의 사랑을 알아가는 그런 행로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유익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특별히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면서 그러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법을 이루어가서 그래서 곤고한 형제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예수안에 있는 형제들과 함께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줌으로서 더욱 주님을 찾고 주님을 의지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맡겨주신 교회 공동체의 또 하나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