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3일 새벽예배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억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한 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행 10:9-16).
고넬료가 자기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욥바에서 베드로가 기거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보내었는데 그때가 9시에 기도하다가 그랬으니까 이 베드로는 6시였단 말이죠. 결국은 어떤 결론이 나오나하면 베드로나 고넬료나 장시간동안 기도하고 있다가 결국은 기도 속에서 서로 교통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한편 베드로는..’ 이렇게 시작되는 거겠죠. 그래서 베드로는 6시, 유대인들에게는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깊이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런 깊은 기도 속에서 베드로가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네 귀를 묶은 커다란 보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베드로는 아마 시장했고 사람들을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려오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베드로야 이것을 먹어라’ 거기에는 네발가진 짐승과 날아다니는 곤충, 많은 벌레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율법에 의하면 먹을 수 없게 지정된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부정한 것이었죠. 율법에 부정하다고 규정된 것이었는데, 그 부정한 것을 먹으라고 소리가 들리니까 베드로가 ‘그럴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율법에 부정하고 속되다고 하는 것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천사의)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고서 올라가는 거죠.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일깨우시기 위한 중요한 사건이었죠. 그 사건이 있고나서 바로 이제 고넬료가 보낸 수하의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치 구약에서 금한 벌레 먹어서는 안 되는 짐승,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내가 오늘 너에게 먹으라 하는 것처럼 예전에 이방인들을 네가 그렇게 생각했고 부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사실은 이제 그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 이방인들을 구원해야 하는 사명이 너희 예루살렘 교회에 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죠. 세 번이나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과 속히 그 일이 시행될 것임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거죠. 그러니까 베드로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생각이나 이런 것들은 그대로 있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면 요즘 우리나라가 일본과 상당히 냉각관계에 있는데 우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예전에 미워하던 일본에 대한 감정이나 이런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어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견해에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편벽된 성향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럴 때 그런 것들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종류의 편견들을 갖는 것들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죠.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아주 분명하게 성경의 사상에 비춰볼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저러한 것들, 이러이러한 것들을 옳지 않은 거, 성경적이지 않은 사상이나 생각, 이런 것들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신앙적인 것과 동일한 무게를 가지고 우리들이 거기에 붙잡히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베드로의 경우에는 성령이 강림하시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그래서 자기가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충성해야 된다는 기본적인 감화와 변화는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감화와 변화를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겠다는 뜻은 있었지만 그러나 오랫동안 구약을 배워오고 율법을 지켜오면서 굳어진 그러한 마음의 사고 유대인들 이외의 이방인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보편적인 구원의 역사, 우리에게 임하게 하신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동일하게 베푸실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선택된 백성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베드로 속에 꽉차있었던 것이죠. 이것들을 허물지 않고는 이제 이교회를 예루살렘교회로 하여금 선교하게 할 수 없었단 말이죠. 역시 지도자를 움직여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들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일깨우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의 마음이 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이 구속의 놀라운 역사가 사실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너희는 만천하에 복음을 전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의 마음을 여시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를 끌어안게 하시는 거예요. 이건 어마어마한 정신적인 변혁이었죠. 엄청난 사건이었죠. 그래서 그 베드로로 하여금 직접 예루살렘교회에 가서 고넬료의 집안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임하셨던 그 성령의 동일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를 일깨우신 하나님의 그 일깨우심이 모든 유대인들에게 미치게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세계를 품은 교회가 되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베드로가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이 구약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불쌍한 이방인들을 볼 수없었고 성령의 부어주시는 위대한 역사에 대해 저항하고 있었다면 오늘은 또 다른 종류의 것들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릇된 폭 좁은 자기사랑, 자기사랑, 자기교회사랑 그리고 자기민족사랑 이런 것들 때문에 이번에는 하나님의 복음이 온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이 위대한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끌어안고 이 세상을 위해서 흘러가야할 존재라는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성경이 주지 않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해요. 그래야지만 사람이아니라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영혼들을 끌어안고 주님이 섬기셨던 것처럼 섬겨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