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7일 새벽예배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7-18).
이렇게 고넬료 집에서 있었던 일의 자초지정을 모두 설교한 베드로는 마지막에서 그것을 자신의 삶과 사역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되어진 모든 일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자기가 자의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행하시고 이루신 일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신은 하나님이 주권적인 의지를 가지고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똑같이 성령 부어주시려고 하는 그 구원의 계획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거기에 항거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베드로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후 보여준 예루살렘교회의 반응은 정말 성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베드로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일들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정면으로 충돌했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들을 인정하고 높이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들이 이렇게 베드로의 보고에 대해서 성숙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오순절에 성령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를 보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주권적인 의지의 역사라는 강물에 흘러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래서 성령 받은 이유에 대해서 어떤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가에 대해서 사도행전 5장 32절에서 그 예수님의 사도들은 말하기를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는 성령도 그러하리라” 그래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 부어주신다는 사실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에게 부어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 순종하는 사람들인 자신들에게 부어주시는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이들이 경험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자신들이 이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그 뜻에 순종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있었고 또 그런 순종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예민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말씀이 이렇게 유대인들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이 있었지만 그러나 예전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못 깨달았어요. 그런데 이 고넬료 집안의 사건을 통해서 그것이 자신들만의 편견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예전에 성령이 역사를 안 하셨습니까? 아니거든요.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옳다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을 높이는 대신에 그것을 성령의 역사에 굴복시켰어요. 그랬더니 더 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요.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사명감을 주셔서 이제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데 동참하게끔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러면서 두 번째 나오는 고백이 뭐냐 하면 그 고백의 내용이에요 먼저는 태도였고 두 번째는 내용이에요.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 했는가 하는 이들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생명과 회개에요.
오늘날 우리는 자칫하면 성령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령이 마치 자기 자신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일을 도와주고 그리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자신이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을 많이 얻고 하는 마술사 시몬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비슷한 견해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이 세상에서 모든 일들이 잘되고 운수가 대통해서 그래서 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이상하게 굽은 사상들이 우리에게 유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령님의 우선적인 역할은 그런 일이 아니에요. 성령님의 우선적인 역할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심으로 그들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회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고넬료가 의인이요, 또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와 기도에 힘쓰던 사람이었지만 그 집안에 가서 예수그리스도와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선포했을 때 그들이 제일먼저 성령을 경험하면서 회개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요.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죄와 그리고 죄가 가져올 비참한 결과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시니까 그들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서 그래서 깨뜨려지는 역사가 나타났던 거죠. 그것을 통해서 아주 놀라운 변화가 그들에게 일어났던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고넬료와 고넬료의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서 경험한 거란 말이죠.
이것이 바로 성령의 가장 중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성령님이 함께 해주시는 생활, 그 성령님과 동행하는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그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말씀의 도움으로 인해서
우리의 영혼의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우리의 지성에 빛이 들어오고 우리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죠.
두 번째 안에 다시 두 번째는 이제 생명을 얻는, 생명을 주셨다는 거죠. 생명이 뭐냐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이루어진 관계가 끊어진 것이 죽음이라면 그것이 다시 이어지는 것이 생명이에요. 그 생명을 통해서 우리들이 영혼에 하늘의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것이 생명이니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곧 영생이란 말이죠. 그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신 위대한 일이란 말이죠. 이것이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방인의 선교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이후로도 바로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가 이루어지는 거죠.
이방인들에게 선명한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이 회개하고 그리고 거기에 영생을 얻는 역사가 나타나고 그 영생을 힘입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도 바울도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청해서 유언적인 회고를 남길 때도 그래요. “첫날부터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고 심판, 회개를 전했다.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아주 분명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그 앞에서 회개하여야 할 우리들의 인생들, 이 모습을 전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그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자기의 맡겨진 소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거예요. 바로 이러한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죠.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께 그들이 영광을 돌리게 된 거에요. 그래서 자신들의 사상과는 맞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해서 그것들을 무시하거나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을 꺾고 그 일을 행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그래서 즉시 자기의 생각을 부복시켜 주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이 아름다운 신앙의 행동이 나타났던 거죠. 이것이 바로 이들이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반응이었어요. 그랬더니 성령의 역사는 이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담을 넘어서 이방인들에게 강력하게 전파되며 폭풍우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불러 일으켜서 그들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한 몸이 되게 하셨고 그래서 이제 신약교회가 형성이 되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일들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 분별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