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4일 새벽예배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여기에서 잠깐 교회전체의 상황을 보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변화되어서 바울이 되고 또 그의 회심을 믿지 않는 사도들과 교회에 바나바가 중재를 서서 그의 회심의 진실성을 입증해주고 하는 이러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날 때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에 흩어져있는 모든 교회들 이미 이때 오늘날 볼 수 있는 이런 지역교회가 선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니까 그들의 연합을 가르쳐서 이제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런 믿는 사람들이 벌써 상당히 많이 생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것이 이제 8장에서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수님의 사도들을 제외 해놓고는 완전히 흩어지게 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일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산되어 나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때에 이 이후로 생겨난 그런 예수 믿는 사람들이에요. 그 교회들이 이제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게 되었다는 거죠. 우선 일단 사울이 그런 박해에 앞장서던 사람이었는데 꺾어지니까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박해하는 사람들의 기세가 꺾이게 되었고 또 하나는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울과 같이 완악하고 무지막지한 사람도 변화시키셨더라 하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복음에 대한 담대함 주님을 믿는 담대한 마음들을 갖게 되었을 거에요. 그러면서 이제 교회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것이 지금 현재 3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주를 경외함’ 이것이 교회가 성장해가는 모습이었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 이제 많은 교인들이 숫자적으로 늘어나지만 그냥 늘어난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이 예전보다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가운데 수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죠.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겠어요? 예전에는 주님을 경외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한순간에 사울처럼 꺾어져서 주님을 만나고 회심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님을 공경하는 사람들로 변한 거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 거죠. 두 가지 방식으로 이 일들이 이루어졌을 텐데 하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겠다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에요. 그래서 그들이 다시 회심이 새롭게 되는 은혜의 체험을 하면서 주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전혀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 만나고 변화되고 그래서 예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거죠. 사울이 대표적인 경우 아니에요? 그죠? 예전에는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그런 극악무도한 사람이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회심함으로서 이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단 말이죠. 이런 참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거죠. 이런 것이 없는 교회의 성장은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에요.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 이 세상에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고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뀐 것 그것을 의미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교회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데 그런 것 없이 사람들의 숫자만 늘어나고 하나님을 향한 태도도 바뀌지 않고 인간을 향한 태도도 바뀌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들이 어떻게 성장이 될 수 있겠느냐는 거죠.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비유를 하자면 밥을 많이 먹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키가 자라고 몸무게도 늘어나고 신체의 모든 발달과 머릿속의 인지발달이 함께 이루어져가는 모습이 성장이지 어느 날 마치 두드려 맞아서 혹이 나고 부었는데 그걸 가지고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이 이것이에요. 그래서 이미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참으로 주님을 만나고 더 변화되어서 예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변화되어서 진짜 우리들이 사랑해야 할 것이 이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이것이 주님을 경외하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교회가 성장한다고 할 때 이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얘기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성령의 위로가 있었어요. 위로라고 번역된 이 부분은 성령의 지지, 성령의 후원, 시쳇말로 성력의 뒷받침, 성령의 백(back)으로 말이지 그렇게 교회가 서왔다 말이에요. 무슨 얘기냐면 교회가 이렇게 성장해 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인간의 재주와 방법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인정해 주시고 그들을 후원해주시는 거죠. 마치 우리가 이번 사경회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에 삶 대해서 말씀드렸잖아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삶이 있듯이 교회도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모이고 있어도 그 영적인 상태는 모두 같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교회 성령님의 후원이 있는 거에요. 성령님이 말하자면 이렇게 밀어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이 진실 되게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교회가 되면 성령님께서 그렇게 되는 과정에도 함께하시지만 그 교회를 특별히 인정해주셔서 그 교회를 후원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성령님께서 감화와 감동을 주셔서 교회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고 교회가 가야 할 바를 보이시고 교회에 지혜를 주시고 교회를 모든 핍박과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해주시고 하는 이런 놀라운 일들을 성령님께서 하시는 거에요. 그게 바로 성령님의 후원이에요. 바로 그런 것이 이 교회에 있었어요. 성령님의 후원이 있었다는 거죠. 오늘도 마찬가지죠. 진짜 교회의 성장을 말하려면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성령님이 교회를 놀라운 방법으로 후원하시고 그래서 그 성령님이 교회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성령님 안에서 세운 교회의 뜻을 성령님께서 후원하시고 그러면서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교회의 성장 이것이 진짜 성장이다 하는 거죠. 마지막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수가 더해지는 거에요. 성경에 보면 뭐라고 묘사 되었나 하면‘수가 더 많아 지니라’ 그랬어요.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성령님이 그들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후원하시는 역사가 있게 되자 그렇게 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제자들 여기서 제자들이란 주님을 믿기로 결심한 무리들을 가르키는 거죠. 그 무리들이 점점점 늘어나요 그게 진정한 교회의 성장이에요. 교회가 수적으로 늘어나지 않고 가만히 멈춰있다는 것은 양에 충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이 상실되고 있다는 거죠. 아이가 밥을 잘 먹고 튼튼하게 뛰어놀고 그러면 아이들이 쭉쭉 자라잖아요. 그래서 한창땐 아이들이 자다가 아프다고 하잖아요. 성장통 이라고 그래요. 너무 빨리 자라니까 몸에 통증을 느끼는 거에요. 그런데 잘 먹는 것 같고 잘 자는 것 같은 데 아이가 전혀 자라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가 지금 내실을 기하고 있는 중이 아니라 중대한 변화가 생긴 거죠. 뭔가 속에서 고장이 난거죠. 그러니까 아이가 안자라는 거죠. 마치 식물과 똑같아요. 건강하게 양분을 공급받으면 쭉쭉 자라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성장의 원리에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항상 어떤 생각을 해야 하냐면 교회가 그렇게 나무가 자라듯이 쭉쭉 뻗어져 나가야 되요.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냐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어주는 영혼의 참다운 변화, 성령님의 전적인 후원,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는 그런 역사의 계속으로 숫자가 늘어나는 거죠.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거죠. 그러니까 호세아 14장에 보면 택한 백성들이 마지막 날에 포도나무 같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쭉 뻗어나가면서 이파리 줄기가 이렇게 뻗어나가는 거죠. 포도나무 한그루 심으면 12m씩 뻗어나가는 거죠. 그렇게 쭉 뻗어나가야 되요. 그러기 위해서는 끝임 없는 성장이 있어야 되잖요. 그러나 사실은 성장자체를 추구해서 성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진실한 회심의 역사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에 섬김과 사역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는 그 간절한 마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쭉쭉 뻗어나가는 거에요. 그렇게 됨으로서 교회가 하나님 앞에 건강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교회의 모습으로 서게 되는 것이죠.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