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2일 새벽예배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서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오십 년간)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니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13-23).
그 일이 있고나서 이제 다시 장소를 이동하게 되죠. 이때 이미 벌써 바나바를 제치고 사울이 선두에 서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데 왜냐하면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원래 이 회당은 유대인들이 자기네 유대교의 교훈을 따라서 구약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종교를 신앙하게 할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회당이 생겨지게 된 것은 이스라엘에 성전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그들의 신앙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데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죠. 그러면서 이제 제사를 드릴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회당들이 생겨나게 되요. 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에서 책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 바뀌게 되요. 이 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구약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었죠. 구약성경이 완성되긴 했지만 지금처럼 한권에 묶어서 다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두루마리나 이런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이 이제 모세와 선지자, 시편 이게 구약성경의 세부분이거든요. 율법서, 선지서, 성문서 이렇게 이루어지는 데 어쨌든 책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 바뀌게 되요. 이것이 후에 기독교가 생겨나는 데 섭리가운데서 큰 도움을 주죠. 어떤 도움을 주느냐 하면 우선 로마의 핍박을 피할 수가 있었어요.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는 것에 대해서는 로마에서 기뻐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은 워낙 철저하게 자기네 종교를 믿는 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상당부분을 로마에서 양보했다고 과언이 아니에요. 그리고 또 제국을 통치하다보니까 종교에 대한 관용정책을 펴지 않고서는 그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를 다스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두 가지만 반대하지 않으면 관용을 베풀었어요. 황제를 숭배하는 것과 세금을 내는 것, 사실은 유대교는 그것도 잘 안했거든요. 세금이야 억지로 냈겠지만, 끊임없이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황제숭배를 안 하려고 했죠. 그런 와중에서 이 기독교가 생겨나게 될 때에 유대교를 사용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맨 처음에 분쟁이 일어날 때는 로마에서 ‘자기네 종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유대교와 전혀 다른 기독교가 생겨나게 된 거죠. 책의 종교였기 때문에 책과 매우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전도자들이 책을 펼쳐놓고 성경을 설교하게 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죠. 방식 자체가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유대교에서 성경을 풀어서 가르치는 방식과 아주 유사한 방식이었기 때문이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셨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회당을 빌려주게 됩니다. 그때에 바울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책의 종교화 되면서 이제 신앙이 의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말씀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서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요. 그런 방식으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졌던 것이죠. 처음부터 기독교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증거하는 것으로서 선교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주목해야 되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풀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외치는 말씀 활동을 통해서 선교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오늘 성경 보면 그렇게 하면서 사울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데 사울이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까지 이 짧은 시간 안에 쭉 증거 하는 거죠. 이것이 설교전체를 모아놓은 것은 아니고 그렇게 외친것 중에서 줄거리만을 추려놓은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해서 가나안땅을 주시고, 그리고 애굽에 포로로 끌려간 것부터 시작해서 거기에서 탈출하게하시고, 또 가나안땅의 일곱 족속을 몰아내신 것, 나라를 세우게 하신 것, 이새의 아들 다윗을 주셔서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예언하게 하신 것, 등등을 쭉 기록하면서 마지막에 육체적으로 그 씨에서 예수가 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왜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하고 있느냐면 예수님이 이렇게 중요한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동의하지 않고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일 수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제 이 사울은 자기도 예전에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 바로 인간을 구원하기위해서 주님이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인 다윗을 통해서 주신 약속을 따라서 오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선택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역사를 거슬러 내려가는데 그러면서 다윗까지 내려온 이야기에 대해서 유대인이 모두 동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거든요. 그런데 그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이지점에서 이제 ‘그 약속을 따라서 예수님이 오셨다’ 여기에서 갈라지는 거예요. 사울의 설교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신학적인 생각은 뭐냐 하면 ‘이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다윗의 씨에서 나고 그가 큰 능력과 권세로 그 후손이 태어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규합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인 것처럼 다윗시대처럼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사람들이 처한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에 적용이 되면 로마를 뚜드려 업고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는 때가 올 것이라는 거죠. 바로 이지점에서 바울이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죠.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 바로 너희들이 생각하는 다윗의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세상의 권력과 권세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그 아들이 오셔서 그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죄인들을 위해서 속죄의 공로를 담당하심으로서 그들을 구하셔서 이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신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 세상에 있는 나라의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껍질을 깨고 그 육적인 이스라엘의 아들이 불순종한 나라가 이제는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나라들로 바뀌어서 그래서 인간의 구원을 이루어갈 것이다. 지금 바로 그때니까 너희들이 이 예수를 믿어라.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에요. 결국은 바울의 설교를 통해서 보면 이 모든 기독교적인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께 집중이 되요. 그래서 이세상의 다른 종교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사람을 의지하는 종교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이 기독교에서는 한사람,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의해서 이제 서고 넘어지는 그런 종교가 되는 거예요. 그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사실이 거짓이라면 기독교는 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바로 그 예수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또 그 구원을 친히 이루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오늘도 신앙생활 한다는 그 의미는 예수님을 잘 믿으며 살아간다고 하는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