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새벽예배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사 16:35-40)
녹취자: 이춘수
이렇게 해서 간수와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일이 종료가 된 것입니다. 사명이 끝나면 움직이게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상황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고난을 받는 다든지, 시련이 온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끝나고 나면 시련도 없고 고난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간수와 가족들을 사랑하셔서, 바울과 신라를 옥에 들어가게 하시고, 거기서 하나님께서 구원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사명이 끝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시게 되는데, 거기에 책임 맡은 사람이 아전을 보내어 큰 죄가 아닌 것 같으니까 “가라” 하였으나, 바울과 신라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사실, 로마재국 큰 땅 덩어리에서 고유한 로마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매우 특별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는 황제가 다스리기는 했지만은 권력이 왕 한사람에게 있는 전재국가가 아니라 공화정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에서 넘어온 민주주의적 정치체제가 구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영토, 자기나라, 특히 로마에 고유한 민족은 일등 국민으로 치고, 그렇게 인권을 무시하여 다룰 수 없었고, 그 사람들에게는 최대한의 민주정치에 의해서 인권을 보장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사람들에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다룰 수 없었습니다. 고발을 하면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해서, 변호를 통해서 고발을 하고, 변호를 통해서 변호를 하고,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고 형이 내려지면, 그 판결에 의해 형이 집행되도록 하는 공정한 사법제도가 되어있었으며, 거기에 불복하면 마지막으로 황제에 까지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로마 사람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판단하기에는 설마 유대인이니까 로마 시민권이 있으랴 생각하고 로마 사람에게는 하여서는 안 되는, 공중 앞에서의 구타라든지,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감옥에 집어넣는 등에 무례하게 행동을 하고는, 이제는 그냥 가라하니까 바울이 안 된다, 로마에 시민권을 가진 사람인데 너희들이 이렇게 무법해도 되느냐 하고 따지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움을 느꼈고 와서 권하여 가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하니까 나왔고 옥살이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언젠가는 그들을 높여 주십니다. 오해와 억압, 핍박이나 고난, 이런데서 그를 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이 하나님에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우셔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 복음을 위해서 받는 많은 고통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도 갚아 주시구요, 이 세상서 다 갚아지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다 갚아 주십니다. 주님의 사명을 위해서 낮아지고 비참해진 자들을 주님이 일으켜 세우시고, 죽은 자처럼 그렇게 낮아진 사람들을 하나님이 높이셔서, 그 이름을 많은 사람들 위에 높이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은 그 일들을 통해서 영광을 거두시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신라와 함께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위대한 힘은 고난을 받을 때 나타나고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을 때 나타납니다. 그러한 희망에 넘치는 비전을 가지고 주님을 섬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주님이 위기 속에서 이들을 건저 내시고 이처럼 이들을 위로하시고 높이신 것입니다.
이들이 옥에서 풀려난 다음에 이들이 바로 간곳은 루디아에 집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빌립보에 왔을 때 처음으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가정을 통해서 빌립보교회가 서게 되고, 아주 좋은 교회가 서게 됩니다. 복음에 기쁜 소식들이 이 빌립보 교회를 통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어서 성도들과 사도들에게 위로가 된 그런 교회가 서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성도에 진실한 교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투옥당해서 감옥에서 많은 고초를 격은 후에, 제일먼저 그리운 것이 아마 성도에 교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심심한 위로를 받고, 그리고 성도들을 만나 교제를 하고, 많은 위로와 권면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성도의 교통입니다.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복음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해도 성도들에 위로가 있으면, 성도에 교통 속에서 주고받는 위로가 있으면, 그 안에서 성도는 새 힘을 얻을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루디아는 선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투옥당하여 많은 고난을 당한 사도에 일행을 영접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마음에 안식과 쉼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성도들에게 쉼을 얻고, 또 성도들을 쉬게 하고, 이렇게 성도들과 교통이 있을 때 영혼과 육체가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넉넉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고 충만한 은혜를 가지고, 실의에 빠진 자들을 돕고, 고통가운데 처한 자들에게 안식을 제공하고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도 루디아처럼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