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하지 마옵소서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 22:12-21).
본문은 시인이 악인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앞선 말씀들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갈급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산”이라는 곳은 사마리아에 속한 지경인데, 좋은 소를 길러내는 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짐승은 많이 있을 런지 모르나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짐승들 가운데 소만큼 힘이 센 짐승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이렇게 힘센 소들이 자신을 공격하며 들이받고 찢는 것 같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그 사람들 안에 있는 엄청난 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잘 믿고 성화되어갈수록 우리 안에는 힘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그때의 힘이라 함은 혈기, 정욕, 욕망, 세속적 성취를 위한 강한 추진력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은혜 안에서 꺾이는 것입니다. 반면 성화됨이 전혀 없는 악인들에게는 이러한 힘이 아주 싱싱하게 살아있기에 그 힘에 있어서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성화로 자기를 죽이는 절제함이 저들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정신이 악에 의해서 강력하게 충동질 된 사람들이기에 거침없는 생각, 말, 행동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확신에 차고 힘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힘의 원천은 혈기와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은혜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러한 강한 욕망과 힘에 있어서 그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혈기, 욕망, 정욕 등과 같은 것들은 죽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강한 원수들 앞에서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고통의 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왜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으며, 하나님은 왜 그를 그렇게 내버려 두는 것일까요? 사실은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하신 분이신가를 생각나게 해 주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악인으로부터의 커다란 공격을 받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드는 힘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마음, 그분과의 바른 관계, 하나님을 의지하는 친밀함에서 나옵니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상황은 위급한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이 나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의 결핍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간절히 매달리고 의지할 때에 이런 놀라운 구원과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세상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사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 은혜의 힘에 붙들려 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