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3일 새벽예배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 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륙 인이러라(사도행전 27:27-38 )
녹취자: 주영혜
폭풍가운데서 헤어 나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겠죠.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그쪽 지역 폭풍은 겨울이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붑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무섭게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 바람이 폭풍을 몰고 왔으니 작은 배야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엄청나게 고통을 당한 거죠. 그러면서 14일이라는 시간이 지납니다. 어떻게 배가 풍랑을 만났는데 14일씩이나 이럴 수 있느냐 하는데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14일 동안 계속 불 수 도 있고 또 혹시 바람이 잠시 멎는 때가 있다 해도 바다의 풍랑은 바람이 멎는다고 금방 가라앉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그러니 간간히 바람이 그렸다 해도 한번 성나서 널뛰는 풍랑이 그렇게 간단히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풍랑이 그 정도로 분다면 그 당시 기껏해야 일부는 노를 젓고 많이는 바람을 의지해서 가는 배인데 물론 바람, 해류 등등 모든 것을 이용해서 갑니다. 그러니 거기서 어디 목표를 정해서 항해할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가기는 가지만 폭풍이 워낙 거세지니까 그것에 의해서 떠밀리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리저리 쫓겨 갔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뭍으로 가까이 와야 할 텐데 이미 항구로 들어가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육지로 가까이 다가가려하니 주변의 암초가 많아 물이 요동치고 배가 흔들리고 사고 나기 십상이 됩니다. 배 한군데만 꽝하고 부딪치면 쪼개지면서 엄청난 물이 들어오게 되어있는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당시 배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어 이렇게 하다 배가 부딪쳐 죽는 거 아닌가? 해서 작은 배를 타고 도망가려 합니다. 바울이 저 사람들을 도망 하지 못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여기서 구원받지 못하게 되리라 하면서 이 상황의 주도권을 잡고 사람들에게 당부합니다.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 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두 가지 이유였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 배에 있는 사람 누구도 상하지 않고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씀 안하셔서 이 배에 머물러 있어야만 그 약속이 유효할 거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만약에 이 사람들이 탈출해서 자기네들끼리 어려움을 벗어나서 뭍에 오른다면 내분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몰래 자기네들끼리 도망가려 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아직까지 폭풍과의 싸움이 끝난 게 아닌데 온 배에 있는 승무원들이 힘을 합쳐 극복해도 될까 말까 인데 일부 사람이 탈출하면 배 안에 모든 기능이 마비될까봐 사도가 그러지 말라고 당부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권한 것이 무얼 좀 먹으라고 권합니다.14일 동안 생사의 고비를 넘어오면서 뭘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풍랑이 엄청나게 치는데 사람들이 기운이 너무 없으니 사도바울이 무얼 좀 먹어야 된다며 간곡히 그들을 타이르고 자기 손으로 음식들을 챙겨놓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축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기도에 동참했겠지요.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의 질서가 올바른 가운데에서는 절대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때로 이렇게 커다란 풍랑과 같은 인생의 위기와 고난의 시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중심에서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큰 풍랑이라는 위기상황을 통해서 포로로 끌려가던 바울로 하여금 그 상황을 수습하게 하고 주도권을 갖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큼 그들은 바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잘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인상 깊었을 것입니까? 큰 풍랑이 일어 목숨이 간데없는 그때에 온전히 평화로운 얼굴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안심해라 이렇게 타이르는 바울의 이 모습이 그들에게 얼마나 인상적이었겠습니까? 그러한 온전한 평화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 그 뒤에는 하나님과의 평화에 대한 깊은 확신이 있었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일하게 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평안함과 안전함 그 속에서만 하나님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큰 풍랑과 고난 속에 넣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안한 사물의 질서 속에서는 마음이 고정되어서 하나님께로 향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이런 풍랑과 고난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하나님께 향하세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평화로운 질서 속에서라면 볼 수 없었을 하나님을 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풍랑과 고통과 환란과 시련 속에서 평화를 잃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그 안에서 담대해지면 그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 선교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와 온전한 하나님과의 삶과 마음의 일치는 평탄한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가득 찰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늘 마음을 지키고 주님의 뜻대로 그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이런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때를 여러분이 만났다면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담대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런 풍랑과 깊은 고난 속에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고난의 때이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고 우리가 그들의 중심가운데 설 수 있는 때이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때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