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을 통해 높이시는 하나님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니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행 27:20-26).
I. 본문배경
본문은 폭풍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번에 제가 가까운 바다에 갔는데 정말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특히 겨울이면 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전기 줄이 우는 소리가 아주 굉장하고 바닷가에 나가보면 외투를 꽉 붙들지 않고는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바람이 부니까 바다에 풍랑이 많이 일어납니다. 본문에 나온 그 날도 파도가 아주 험하게 쳤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냥 여기에서 머물자고 했습니다. 그레데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크레타라고 하는 섬입니다. 에게해 남부쪽에 있는 꽤 큰 섬이고 거기에서 그리스 문명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그 밑은 이집트이고 이집트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장사를 하면서 문명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기원전 2200-2300년 유물이 나옵니다. 크레타 문명은 여러분들이 가끔 들은 적이 있는 사라진 도시 아틀란타라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그 앞바다에 크고 화려한 아틀란타라는 섬으로 되어있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는 지진이 굉장히 많은 지역이었고 그 도시는 지진 때문에 사라졌다고 가정들 합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으로 문명이 전해져 내려오고 그것이 종자씨가 되어 에게해 전체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이 형성됐다고 보는 겁니다. 어쨌든 그 섬은 굉장히 큰 섬이고 이렇게 바람이 불고 폭풍이 이는 겨울철에는 크레타 섬의 한 항구에 출발하지 말고 여기 머물자 하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크레타 섬 안에 뵈닉스라는 항구가 있는데 겨울을 나기에 거기가 훨씬 좋으니 항해를 하자고 우긴 쪽은 선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항해를 했고 커다란 풍랑이 잃어나면서 이 본문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도를 따라 살아온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유익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도 듣는 것이 좋을 뻔 하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은 뱃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기후와 모든 것들에 익숙한 뱃사람들 못지않게 바다에 대한 상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지시가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뱃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일을 진척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나아가자 본문에 나온 것처럼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배로도 쉽지 않은데 옛날의 배로 그 큰 풍랑을 만났으니 이 사람들이 큰 시련을 만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배가 물건들을 다 버려야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만나고 사람들은 일주일이나 지나도록 그 폭풍속의 휘둘리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II. 환란 속에서의 으뜸이 되는 자
바로 그때 바울이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타이르면서 왜 안심해도 되는지 설명을 하는데 이 자체가 전도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하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바울아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는데 그 때까지 안전 하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떤 목적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부르셨기 때문에 안전하다라고 예기하는 겁니다. 바울은 죄인으로써 재판을 받기위해 호송되어가는 비천한 신세의 죄수였고 뱃사람들은 배의 일꾼이거나 바울을 호송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분과 위치로 보면 바울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풍랑을 만나고 나니까 바울은 마치 이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가 된 것 같은 평화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우리주위에 풍랑과 폭풍들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폭풍과 풍랑이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붙들어주는 으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사물의 질서 속에서는 우리가 높아질 수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고통스러운 사물의 질서 가운데서 우리들을 높이심으로서 사람들을 어루만지시고 그 사람들을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평범한 사물의 질서 속에서는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지만 이런 풍랑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으뜸이 되어서 그 평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위로자가 됩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안심하라고 말씀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 (바울)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힘으로 안심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환란과 어려움이 읽어나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그분께 붙어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를 초월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환란과 어려움을 만날 때 이 뱃사람들처럼 불평하고 고통하며 살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의 지도력을 회복시키시는 방법이실 것이다 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 안에서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가 잘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