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4. 19 새벽예배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시 3:1-4)
녹취자: 김은정
이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표제에 보니까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이다.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나은 아들 가운데 맏이였고 아주 똑똑한 아들이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말년에 나라를 다스리면서 요즘으로 말하자면 레인더 향상이라 할까 나라를 잘 장악하고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제 압살롬이 한 3년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성 앞에서 재판을 받으러 가는 백성들에 편을 들고 거들어주고 위로하면서 마음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군사를 준비하고 차근차근 무기를 준비하면서 아버지 슬하에 있어서 아버지를 공경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것을 돕던 사람들과 군인들을 지도자들을 빼내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반란이 일어나고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 때에 그런일이 일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다윗은 황망하게 피난하게 됩니다. 그때에 지은 시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보면 크게 셋 토막으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사방을 에워싸봐도 전부다 자기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람들로 온통 둘러싸여 있는 겁니다. 이런 일들은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이 없다든지 시련을 만나서 몸이 아프다든지 순수히 물리적인 것들로 오는 어려움들은 극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친구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고난이 오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는 고통이 가중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압살롬은 적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몸으로 낳은 피붙이이고 자식입니다. 동서고금에 부모를 향해 칼을 들고 일어선 예가 없지는 않지만 다윗은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일어난 사람들이 퍼뜨린 소문이 무엇이냐면 이제 하나님이 다윗을 버리셨다. 사울의 집안을 가로챘기 때문에 결국은 다윗이 하나님을 버리셨다. 저는 이제 하나님께 더 이상 도움을 얻지 못하는 자다. 이렇게 평판을 깎아내리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파다하게 소문이 퍼지면서 다윗의 시대는 끝나고 압살롬의 시대가 열린다. 이렇게 고도의 홍보 전략을 짠 겁니다. 그리고 실제 사람들이 보니까 다윗이 너무나 비참한 모습이 되어서 적들에게 쫒겨서 도망을 가는 겁니다. 그렇게 가련하게 도망을 가는 모습은 정말로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의 말로, 그것과 꼭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가고 너무나 황급한 나머지 버선발로 도망을 가야할 정도로 그렇게 인생의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오, 또 영광이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오류에 빠질 때고 있고 또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이 세상의 사랑에 눈일 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흔들릴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어려움과 고난을 만나면 그는 즉시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형식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도 진짜 어려운 일이 생기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에 오히려 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고 여름이 와서 녹음이 온 천하에 우거지게 되면 어느 것이 상록수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어떤 나무가 사시사철 푸는 나무인지 구별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오 방패는 비오듯 쏟아지는 적군의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막아줍니다.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방패를 가지고 자기를 보호하면 그러면 능히 이길 수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방패의 역할은 상대방이 칼을 휘둘러도 그 방패로 그 칼을 막아줍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스스로 당신을 방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란다 내가 너를 지켜준단다. 보호의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다윗이 압살롬에게 반역을 받아 도망을 가면서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벗은 발로 황망하게 도망을 갈 때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은 다윗을 버렸다. 저는 하나님께 더 이상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다윗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십니다는 그 신앙이 여전히 살아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이십니다. 나를 보호하는 자이십니다. 내가 지금은 아들에게 쫒겨 이렇게 황망하게 도망을 가고, 사람들은 내 뒤에서 저놈은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비난을 하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이제껏 내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러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며 지금도 또한 하나님이 나의 방패이십니다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아이들이 엄마를 안 찾고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다가도 정신팔려 놀 때에는 엄마의 소리에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치거나 넘어지든지 어려움이 생기면 신속하게 엄마의 품으로 달려옵니다. 그와 똑같은 원리입니다. 그 아이가 엄마를 알면 엄마가 옆에 있는 사실을 알면 그렇게 돌아오듯이 물론 시인에게 고난이 닥친 것도 사실은 직접적으로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렇지만 더 넓게보면 그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시인을 말년에 시인을 쇄신시켰습니다. 아주 놀랍게 쇄신시켜서 그래서 노년에 흐려지기 쉬운 그의 영안을 열어서 그래서 그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과 하늘의 놀라운 계시와 그 은총을 보게끔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방패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실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영광이 무엇이냐면 알아주는 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들과 함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수 백명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다들 방석없이 맨바닥에 앉아 밥을 먹느라고 쭈그리고 있는데 그 집 주인이 방석 하나 남은 좋은 것을 자기 옆에 두면서 "아무개씨 여기와서 내옆에 같이 앉읍시다"라고 해서 앉았다면 그것이 영광입니다. 그 영광은 알아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고,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알아주신 바되고 또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 때문에 나를 알아주게 됩니다. 그런 뜻입니다. 영광이십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를 그 사람들 앞에서 그 주님 때문에 알려지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영광입니다. 다윗의 생애가 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그는 이새의 집에 보잘 것없은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알아주시니까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쟁터에 가는 곳마다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하나님이 끊임없이 그에게 영광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고난으로 가득 찬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기에 그 사실을 회상하는 겁니다. 내 인생 사는 날 동안에 주님이 나의 영광이셨습니다. 주님이 저를 기억하셨고 그리고 주님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기억했습니다. 알아주었습니다. 그 고백을 잠잠히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런 반역이 일어나서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다윗의 마음에는 자기를 치기위해 달려오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먼저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왕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누구냐면 무언가 잘못해서 징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죄인은 머리를 들라는 얘기는 왕이 그를 대면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긍휼과 사랑을 베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머리를 숙이시는 법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시는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주여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시옵소서. 이게 시인들의 노래의 제목이었습니다.
왕이 우리에게 얼굴빛을 비춰주면 거기에서 왕의 백성들은 사랑과 용기와 힘과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가 행한 악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 하나님이 징계하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인생의 혹독한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련 앞에서 자기가 만약에 완전히 정당하다면 그러면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어쩌면 조금 어리석었던 욥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 댓구 할 수 있을 겁니다. 환란이 오는 그 날에 다윗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동시에 자기의 죄들이 생각이 났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도망을 가면서도 마음 적으로 하나님의 큰 존전에서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때에 왕이신 하나님이 죄인은 고개를 들라 그것을 마음 속으로 상상했습니다. 더욱이 이 사람이 왕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을 많이 당하였을 것입니다.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수치를 당해서 부끄러움과 그리고 모욕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소망이 없을 것같은 그때에 고개를 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물질만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명예도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 때가 있는가하면 우리를 부끄럽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실제로 오류에 빠지고 안 빠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주님이 우리를 높이시기도 하고 주님이 낮추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로 하여금 경험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그 시련 가운데서 완악한 마음을 녹이십니다. 그 고난 가운데서 병든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그 위기 가운데서 잠들었던 신앙을 소생시키시고 깨어나게 하십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에 보니까 다윗이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산 시온, 명백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는 예표입니다. 자기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주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든지 주님이 안 계신 곳이 없지만 특별히 하나님이 택하신 산 시온에서 부르짖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던 것처럼 주님의 약속이 깃들여져있는 교회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하나님 앞에 예전에 인생의 고난이 골짜기를 넘어오면서 그런 경험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가면서도 내가 성산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겠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고 자신의 인생에 말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의 방패시며 내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주님만이 나를 부끄러움의 늪에서 건져내어 영광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고백을 하는 겁니다. 신자의 유일한 소망, 믿는 자의 유일한 희망, 하나님의 자녀의 절대 유일무이한 마지막 희망이 하나님 자신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어느 곳에서든지 그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도 부끄러움을 당할 때도 영광을 받을 때도 멸시와 천대를 당할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삶에 모든 상황과 기회를 통해서 방패이시고 영광이시며 머리를 드시는 자이신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시련을 통해서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우리를 쇄신시키셔서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정하신 성산에서 주님께 부르짖을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다윗이 놀라운 영혼의 쇄신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우러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