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4일 새벽예배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편입니다. 구약성경 804쪽입니다. 시편 1편입니다. 1절부터 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오래전에 시편 전체를 아마 한 2년 정도 걸려서 새벽시간에 설교한 적이 있는데 ‘다시 한 번 설교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 시편은, 그 멀리는 주전 한 1500년 경부터 시작을 해서 가깝게는 한 400년대에 까지 아 그렇게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쓰여진 책들을 후에 모은 겁니다. 아마 ‘주전 3세기경쯤 모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모을 때에 이것들을 분류를 했습니다. 그래서 1권부터 5권까지 5권으로 분류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분류를 할 때에 머 연대순으로 분류를 했는가, 저자순으로 분류를 했는가, 그것이 아니라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성경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인 모세 5경 창세기부터 시작을 해서 신명기까지 이 5권의 율법서를 기준으로 이 시편들을 분류를 한 겁니다. 그래서 1권에 나오는 시들은 대개 창세기의 노래라고 부를 수 있어요.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 창조의 아름다움, 창조된 인간, 창조된 세계, 이런 것들은 1권에 대개 모아져 있구여, 2권은 레위기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성전, 제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 하나님께서 열납 하심, 이런 것들이 이제 2권에 나오니까 이런 제사를 드리는 곳이 성전이니까, 성전에 관한 노래도 역시 제2권에 나옵니다. 아~ 출애굽기, 레위기가 아니라 출애굽기입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2권에는 지금 말씀 드린 것은 3권이고 2권에는 광야의 생활,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인도, 보호, 불순종으로부터 돌이킴, 이런 것들이 출애굽기의 노래에요. 그래서 2건에 나오고, 3권은 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레위기의 노래에요. 그래서 거기에는 성전, 제사, 제사를 드리는 것, 제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 이런 것들이 여기에 나와요. 그 다음에 민수기 제 4권은 민수기의 노래에요. 여기에는 불순종과 방황, 거기로부터의 돌이킴, 광야 생활의 고달픔, 이런 것들이 인제 이 4권에 나와요. 마지막 5권은 이제 신명기의 노래인데, 알다시피 신명기는 여러분 그 광야 생활에서 모세가 했던 설교를 다시 한 번 모아놓은 것이 신명기예요. 근데 이 신명기의 노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말씀의 영광, 말씀의 능력, 말씀과 위로와 보호, 인도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 이 5권 신명기의 노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이제 이것들을 1, 2, 3, 4, 5권으로 분류하고, 그 다음에 속에 흩어져 있는 1편부터 150편까지의 시를 배열할 때에는 사실 무슨 원칙이 있었는지를 우린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인제 이렇게 150편의 시를 배열 할 때에, 그 1편으로 시를 올려놓을 때에 얼마나 사람들이 심사숙고 했겠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때에 이 시가 1편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근데 이 1편의 시가, 사실 많은 시들이 누가 이 시를 지었는지 잘 모릅니다. 표제가 안 되어 있는 것들은 누가 지었는지 잘 모르고, 다만 ‘인제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 많은 작품들이 성격상 다윗에 속한 것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1편의 경우에 1편에서 노래하는 것은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합니다.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이 히브리의 성경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의 행복이여’ 이렇게 나와여. 우리에게 행복이라고 하는 단어, 복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쉘’이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거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받는 그런 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성도가 받는 복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우리들이 흔히 복이라고 말할 때에 세상적인 복과 그 다음에 천상적인 복이 있어요. 이 세상적인 복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으니까 그것을 복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예요. ‘돈이 많이 생겼다, 높은 지위가 올라갔다, 얼굴이 이뻐졌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돈을 많이 지니지 못했더라면 불행하게 되지 못했을 사람이 불행하게 되죠. 지위도 마찬가지구.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돈은 복이 아니고 화라고 봐야 되지 않아요? 네. 그러니까 복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내 눈에 좋은 어떤 것을 손에 넣게 되는 거 그것이 사실은 복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온전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행복이어야 해요. 그런 종류의 행복이어야 해요. 그게 바로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바로 성도의 행복이예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돈만 있고, 명예만 있고, 건강만 있는 그런 행복이 아니예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행복이예요.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행복이예요.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그렇게 나와요. 복 있는 사람은 그렇게 나와요.
그러면서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이 나와요.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이예요. 먼저 말하자면은 ‘소극적 의미로 복 있는 사람은 이러지 말아야 한다’ 악인의 꾀를 쫓는 다는 것은 악인의 도모, 악인들이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는 그런 거, 그런 거를 쫓지 않는 다는 거지. 애차라는 단어인데 ‘카운슬링’이예요, 카운슬링. ‘악한사람의 의문을 쫓지 않는다’ 라고 하는 거, 악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러한 모의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여기의 죄인은 하나님을 잘 믿으며 살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어쩔 수 없는 연약함에 의해서 잘못하는 그런 종류의 죄인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죄를 계속 지어서 죄가 그 사람의 인격의 특징이 된 그런 사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의 길, 거기에 서지 않는 다는 것이예요. 돈을 많이 벌 것이다, 지위가 좀 높아질 것이다, 등등의 이유로 거기에 서지 않는 사람이다 그거예요. 거기에 서지 않는 사람이예요. 세 번째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여기서 오만한 자라고 하는 것은 그냥 일반적인 의미에서 겸손이 부족된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점점점점 죄가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죠. 악인의 꾀를 가끔 가서 빌리다가, 그다음에 죄인의 길에 들어서서 걸어가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사상에 하나님 없다고 비웃으면서 거기에 앉는 거예요. 앉는다는 이 말이 ‘야삽’인데, 집을 짓고 아예 사는 걸 의미해요. 거쳐하는 거죠 .그러니까 가끔 들렀다가 그 길을 걸어가다가 그 길에서 주저 앉아서 사는 것이죠. ‘이런 식의 삶을 살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오는 것이 ‘의인은 이런 삶을 산다, 주야로 여호아의 율법을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런거죠.
묵상이라고 하는 것이 머냐하면은 우리 이럴 때 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탁’ 알고 있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자기의 삶에 적용되어서 작동되지 않을 때, 그럴 때가 있잖아요.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한다’라고 하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가슴 속으로 흘려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묵상이예요. 흘려 내리는 것, 이 흘려 내리는 이 일을 말하자면은 묵상이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묵상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갖는 관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바로 그것이 바로 묵상이예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얼마나 시시해요? ‘복 있는 사람은 이것도 안하고, 이것도 안하고, 이것도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복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시시하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예요. 왜냐하면 시편의 첫 번째 편에서 우리가 어떻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예요. 복의 근원이 함께하는 그 사람이 바로 복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그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인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묵상하며 율법을 묵상하며 그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예요. 우리가 세상을 많이 생각하면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을 많이 생각하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신실한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