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6일 새벽설교
“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1-6).
이 시편, 그 2편은 하나님과 그리고 그가 세운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와 영광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권세 있는 사람,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 어쨌든 이 세상에서 지위와 권세가 높아지게 되면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그 권세와 모든 영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이 세상의 큰 나라의 황제나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기 되신 적은 없지만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일들은 똑 같이 일어납니다. 무슨뜻이냐 하면은, 무슨뜻이냐 하면은 우리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셔서 염려와 근심이 없고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자원들이 주워져요. 그러면은 사물들의 질서를 우리의 마음에 맞도록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나게 되요. 사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권력이거든요. 사실 권력이라는 것이 무슨 높은 지위에 올라야지만 되는 게 아니라 그런 힘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물질이 많고 지위가 높아지게 되면, 그만큼 사물들의 질서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요. 이게 권력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힘이 생기게 되면 예전에는 하나님을 많이 의지했었는데 하나님을 안 의지하게 된단 말이죠. 그것이 바로 독립의 정신이거든요.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독립하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 한 인간이예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도록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주 더러운 것이예요. 추해보이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들이 생겨나는 것이예요. 그러니 진짜로 수천만, 혹은 수억의 사람이 자기의 지위 아래 굴복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움직여서 살 수 있는 그런 커다란 힘과 권력이 있을 그때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은 당연하지 않아요?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 이런 일들은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새 열방과 새 군왕들과 방백들이 세상의 권력이 많아지고 나니까, 이제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은 받은 자와 관계를 끊자, 결박한 것을 끊자, 그래서 결박이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할 어떤 의무 이런 거예요. 이런 것을 끊어버리자 결국은 그것이 무슨 의미냐 하면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지시를 받고 그분의 명령과 분부를 따라서 사는 이런 종류의 삶을 집어 치우자’ 그리고 오히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인 것 것처럼 살자’ 그런거죠.
그러면 그런식으로 시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개입하셔서 그들을 요절을 내시냐하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인간들이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해도, 마치 하나님이 말씀이 없으신 것처럼 모든 일들이 조용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를 보여줄 뿐이지, 하나님 자신이 무능하다거나 혹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해 한없이 업신여기는 삶을 살아도 하나님께서 두고 참으신다고 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래서 오늘 머라고 하냐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하나님은 인간들의 그런 시도를 보면서 ‘비웃으신다’ 왜냐하면 그러는 동안에도 하나님 홀로 온 땅과 만물의 주인이시고 하나님 홀로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런거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의 첫 걸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안젤모스’라고 하는 교부는 자신의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신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이 살아계실 수 없고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뜻대로 사는 것과 살지 않는 것 사이에는 현저한 격차가 있어서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한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야 할 뜻을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 그 부인할 수 없는 그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죠.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시온에 세우셨다고 말해요. 여기서 이 시온은 머냐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예요. 그게 시온이예요. 원래 이 ‘시온’이라는 뜻은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닌예요. ‘찌온’인데 ‘찌온’은 ‘마른땅’, ‘요새’ 그런 뜻이예요. 그것이 예루살렘이 있고 예루살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산지예요. 그것들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그 산지들은 아주 매우 신성하게 여겨줬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이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 시온은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이 시온은 이거는 항상 성경에서 교회의 상징으로 여겨줘요. 이것이 교회의 상징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은, 우선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 거기가 시온이고 예루살렘이예요. 그래서 거기는 성전이 있어요. 두 번째로. 세 번째는 거기에서 그 시온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시는 거예요. 그 왕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행사하시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이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죠. ‘이 시온의 하나님이 당신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세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나실 것을 말씀 하신 것이구요, 단순이 미래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비로서 기름 부은 받은 자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삼위 하나님 가운데, 2위 이신 성자는 넓은 의미에서 이미 하나님께 구별되어 기름부음 받아 세워진 자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아들과 함께 시온을 중심으로 통치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 앞에 굴복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말씀의 감화를 받고 그 말씀의 힘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며 살아가요. 그 모든 일들이 바로 성자께서 하시는 몫이였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왕권들을 펼치고 그 왕권의 행사를 통해서 궁극적인 왕이신 삼위 하나님의 그 위대한 존재가 그들을 통해서 펼쳐지는 거예요. 존재가 그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나타나는 거예요. 그 일의 핵심에 ‘기름 부은 받은 자, 주님이 계시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권력이 많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이 세상은 언제든지 ‘우리가 매인 것을 끊자’고 말해요. 그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시온이 되어서 하나님의 임재의 통치를 보여주고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왕권이 행사될 때 그때에 이 세상의 있는 모든 나라의 어리석음을 우리들이 꾸짖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들을 회개시켜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오게 하는 거예요. 이런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가 이 교회 안에 충만히 계셔야 해요. 그분이 바로 성령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예요. 그 분이 교회 안에 충만히 계실 때에 그때에 열방과 관원들 방백들이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은 받은 자와 맺은 것을 끊자’라고 말할 때에도 그 끊을 수 없는 하나남의 통치를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게 되는 것이예요.
이걸 여러분 개인에게 적용을 해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자신은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시온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실 때에 그리스도가 느껴지고, 그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다스리고 통치할 때에 여러분을 에워싼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을 비웃고 멸시하는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멸시하는 그들보다 오히려 멸시당하면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여러분들이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여러분들이 빛들이 되어서 어둠을 꾸짖고 여러분들이 소금이 되어서 썩어가는 그들을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진리의 증거자가 되어 서 그들을 꾸짖고 그들을 빛 가운데로 돌아오게 한다 이거죠.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교회를 충만하게 다스려주시는 이런 통치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