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5일 새벽예배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는데,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에는 ‘의인은 의롭게 사는 사람이고, 악인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게 사실 맞죠. 맞는데, 성경에서 생각하는 의인의 사상, 특별히 시편에서 이야기하는 이 의인 사상은 인간의 도덕적인 행실을 보고 그것만을 기준으로 의인과 악인을 가리는 것은 아니예요. 물론 의인은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지만은, 그 뿌리 자체가 자기의 도덕적 생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그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말, 그 사람의 글 모두 사랑스럽구요,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이 속한 모든 것이 다 싫지요.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는 말의 내용은 고사하고 목소리 조차 듣기가 싫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성립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은 하나님의 음성이 듣기 좋고, 그 하나님이 전해주시는 그 음성이 우리에게 매우 기쁨이 되요.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되는 것이예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뿌리라면, 율법은 그 뿌리를 통해 계속 섭취되는 물과 양분이예요. 그리고 도덕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은 나무가 그것을 빨아들여서 맺은 열매, 혹은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울창한 그러한 번성의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죠. 이 사람이 바로 의로운 사람들이예요. 의인들이란 말이죠. 악인은 어떠하냐? 악인은 그 뿌리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예요. 자기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예요. 뿌리를 내려서 빨아들이면서 섭취하려고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예요. 빨아들이는 것이 머냐면 자기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생각과 지상적인 사념들이예요. 그런 것들이 뿌리를 통해 섭취되니까 그다음에 거기에서 올라와서 열매 맺는 모든 것들이 사악한 것들이죠.
그렇게 되니까 아주 뚜렷하게 그 둘이 근본은 물론이고 나무, 그 열매와 줄기 가지까지 모두 구분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당연히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그렇게 의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뿌리와 또 삶의 본질과 또 삶의 열매와 모든 것들 가운데 악인과 의인은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겉으로 보기엔 사람들이 함께 섞여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은데 사실은 둘을 비교해 보면은 아무 것도 일치하는 것이 없어요.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까 그 둘이 섞여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회중에 들지 못하리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회중에 들지 못하게 하신다’ 라는 뜻도 포함되지만, 또 하나는 그들이 생각과 좋아하는 것들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함께 섞여 있을 때에 그들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유유상종이란 이야기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죠. 삶의 뿌리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 행복할 수 있는가? 결국은 두드러지게 되 있는 거죠. 그러면서 그 악인은 번성하는 것과 같지만,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무가치함과 덧없음을 보여주는 거죠. 무가치함과 덧없음을 보여요. 모두 지나가는 것들이예요.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이렇게 그 의인들이, 의인들이 다 이러한 의인으로서 이러한 삶을 하나님 앞에 받은바 특징들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결국은 ‘우리의 뿌리가 삶의 뿌리가 깊이 하나님의 말씀에 내리고 거기서부터 오는 그 진리를 계속 섭취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된다’ 그것이 의인의 삶의 길이요. 삶의 방식이예요. 그러니까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도 여러분들이 무엇에 골몰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나무라고 할지라도 뿌리에 물이 공급되지 않고 번성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죠.
언젠가 한번 93년도쯤의 일로 기억이 되는데 충청도 쪽인가로 집회를 내려가는데 경상도 였던 것도 같고, 경상도 였던 것 같아요. 근데 아주 엄청나게 가물 때였어요. 여름인데, 그 비가 안 와가지고 전국이 난리이던 시절이었어요. 근데 가다가 너무 피곤해서 인제 기름을 넣고 이렇게 있는데, 그 가로수들이 전부다 시들시들해요. 저쪽에 있는 나무 하나가 촘촘해요. 그래서 신기해서 이렇게 가까이 가보니까 그 나무 바로 옆에 실개천이 흘러요. 그 물이 그쪽에 있는 논들에 물을 대는 수로였어요. 그러니까 그때 생각난 게 시편1편이예요. 그 많은 나무들이 다 시들어 가는데 이 나무는 개천 옆에 물이 마르지 않는 개천 옆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잎이 촘촘하게 자라는 거예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이 끊어지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아름다운 특징은 다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기품 있고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라도 물기가 없어지게 되면은 뿌리에 더 이상 물기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그러면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며 산다’ 라고 하는 이 경외하는 삶의 뿌리가 하나님의 말씀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매일매일 은혜를 받으면서 그 말씀이 가슴에 물이 되어 흐를 때 거기에 뿌리를 박은 우리의 삶이 계속 이렇게 성장된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매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 기도하고 살 때에는 그 말씀에 부합하기 위해서 살고 또 반성할 때에는 그 말씀을 기준으로 반성하고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때 우리의 마음에 그것이 물이 되어 흐르는 거예요. 예전에 내 인생을 바꾸는 말씀이 오늘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그것을 깊이 가슴에 담고 그것이 물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속에 흐르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다, ‘묵상한다’ 라고 하는 것은, 머리에 있는 지식을 계속 생각해서 가슴으로 흘려 내려오게 하는 거예요. 우리의 삶은 머리에 있는 지식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담긴 지식 속에서 삶이 나오는 것예요. 그것이 오늘 이 시편 1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세요. 기도하시고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거예요. 성경을 몇 장 휘딱 읽어버리는 그것이 아니라, 천천히 묵상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말씀을 계속 섭취하고 그것들을 묵상해서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씀이 내안에 살아있어야 해요. 여러분 꾸준히 성경을 읽는데도 마음이 건조하고 신앙생활이 뒤로 물러가는 적 있어요, 없어요? 있죠. 무슨 성경을 읽는 것이 요술 같은 효과를 우리에게 일으키는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사모해서, 그래서 늘 그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 성격을 읽고, 테잎을 듣고, 그 다음에 일하면서도 생각하고 이러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이 말씀에 의해서 그 물기를 공급을 받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