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의지하는 자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 9:1-10).
시편 제9편입니다. 이 시는 감사의 찬송 시입니다 시인이 원수들이 멸망하는 것을 인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있는 거거든요 이것과 관련해서 심심치않게 논란이 되는 게 뭐냐면 이게 정말 옳은 태도냐 원수들이 무너지고 멸망하고 이러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영성이 깊은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이러는 것이 성경적으로 볼 때 올바른 신앙관이냐 라는 문제들이 종종 제기가 됩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저는 우리들이 크게 두 가지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애요 우선 첫째는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가 구약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구약에서도 물론 하나님께서 형제 자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펼치고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셨지만은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렇게 아주 찬란하고 명백하게 사랑의 정신과 계명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은 오히려 복음보다는 율법이었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아직 사랑에 관한 계명이 충만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시인이 원수에 대해서 이런 태도를 가진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죠 그러니까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는 계시의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분명하고 명료한 계시를 보여주셔서 마지막에는 찬란한 신약의 시대의 계명이 드러나고 나타날 때까지 이 찬란하게 보여주었던 영광스러운 이 계명이, 영광스러운 이 계명이 드러난 것을 가지고 거꾸로 들어가서 구약에 있는 시인이 왜 이런 정도의 사랑을 갖지 못했느냐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한 판단이다 라는 이야기구요 두 번째는 뭐냐하면 여기에서 나오는 원수의 멸망을 인하여서 시인이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하는 이런 것들을 모두 개인 감정화 시켜서 해석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죠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 시인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 시인에 대해서 원수들이 압제하고 핍박하고 시인을 파멸 시키려고 하고 하는 수많은 도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진 일이라기보다는 이 시인이 하나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의해서 하나님과 함께 받는 고난이에요 그러니까 시인이 원수의 무너짐을 하나님 앞에 찬송할 수 있었든 것은 개인의 대적이 무너지고 멸망 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신도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무너져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주님의 말씀이 서게 되었으니 그것을 하나님 앞에 찬양하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은 이 시인이 원수의 멸망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영광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우리가 해석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구약에 나오는 시인들이 원수의 멸망을 인해서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그것을 우리들이 경솔하게 개인 감정화 해서 해석하는 잘못된 것이다 라고 하는 거죠.
이 시인이 오늘 그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에 대한, 대적하는 원수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파멸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은 원수들이 일어나고 일어난 원수들이 시인을 박해하고 공격하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자신들이 일어난 것이었지만은 그들이 무너지고 넘어지는 것은 스스로 그들 안에 있는 어떤 원리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의 통치아래 두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앞에서 우리들이 읽은 시편 8편을 우리들이 기억해보면은 거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창조하셔서 그래서 그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 있는 만물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게 하셨거든요 여기서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비교해서 조금 모자란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그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인간도 그러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모든 만물에 비해서 뛰어나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게 하시기 위함이었거든요 그러면 그런 인간의 기본적인 자격이 뭐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이 주셔서 다스리게 하신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것이야 말로 그런 일을 수종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격이란 말이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에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그런 하나님에 대한 영광의 갈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파멸되는 원수들 그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높아지신 이름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찬송하게 되었다 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10절에서 마지막 결론을 내리는 것이 주를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를 안다 하나님을 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런 뜻하고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왜 그 원수들을 무너뜨린 그 위대한 능력을 보면서 자신도 만약에 하나님을 향하여 원수로 행하면 자신도 그렇게 파멸할 것이요 또 자신이 만약에 하나님 앞에서 그런 원수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주님을 위하여 일하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모든 원수의 압제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이런 신앙을 갖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 하나님의 간섭하시고 통치하시는 이 모든 세상의 질서들의 추이를 보면서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인간의 많은 죄악된 행동과 하나님을 거스르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너무나 질서 있게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 보이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찬송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할수록 의지하게 되고 의지할수록 그 분에게 자신의 삶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이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난을 받더라도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편에 서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편에 설 때에 지금은 당장 고난이 오는 거 같고 악인들에게 박해를 받는 거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그 악인들의 박해에서 벗어나서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매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신앙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