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게 고통받는 자의 소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1-3).
이 시도 다윗의 시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항상 만난 것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다윗이 생활하는 행동 반경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언약 백성들 속에서 누군가가 담대하게 ‘나는 하나님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어리석은 자는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한다... 이게 무신론이거든요.
무신론은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진짜 사상이 잘못되서 무신론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또 하나는 생각 속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 실천적으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는 사람이예요. 그 사람들이 바로 무신론자이에요. 실천적인 무신론자들이에요. 그러면 오늘 이 다윗이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두 번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머릿속으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생각을 하지만 실제 삶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적용이 안돼요. 실제의 삶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적용이 안 되면 그러면 실제로 살아가는 삶 속에 있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행동하고 인생을 계획하고 이러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은 실제로 ‘하나님이 안 계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이거예요. 아무 차이가 없는거죠. 그래서 오늘 시인이 이르기를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렇게 굽어보시면서 이르기를 ‘지각이 있는 사람이 있나...’ 하나님이 내려다 보시지만 사람들이 다 이런 사상에 치우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가.’ 그리고 그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구나 그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지각해요. 지각을 하면 그 다음에는 우리의 모든 생활이나 이런 것들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내 맘 속에 굳게 믿어지고, 성령이 역사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는 라는 마음을 주시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셔요.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요. 그렇게 될 때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요. 무슨 변화가 일어나게 되냐 하면,
제일 먼저 우리의 지성에 변화가 일어나요.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무지 무각하게 아무렇게나 살아갈 때, 자기 욕심을 따라서 무지하게 마구 살아갈 때, 그때에는 이 지성이 혼탁해서 어지러워져 있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요 그러면 지성이 아주 명정한 상태가 되요. 그래서 모든 것들을 올바로 보게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이 한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기여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길 들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 구석구석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게 되면 될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알아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분 이신지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마음 속에 어제 말씀 드린바와 같은 지식의 기쁨이 샘솟듯 솟아나요. 그런 기쁨이 솟아나면 그 다음에 그런 기쁨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소원이 머릿속에서 막연히 움직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 라고 하는 아주 진실하고 간절한 소원이 생겨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는 힘들이 생겨나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더 많이 사랑을 받겠죠. 하나님께 더 많이 사랑을 받으면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게 되는 거죠. 그러면 그 연합 속에서 신자는 더더욱 자기는 죽고 주님이 자기 안에 사시는 것을 경험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서 은혜의 힘에 이끌리는 삶을 체험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러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살면서 매일매일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예요. 그러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이예요.
그래서 시인이 오늘 그런 내용들을 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라고 하는 이 지식의 기반에 두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해 배울게 별로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나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배워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요. 어떤 때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실까, 어떤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나, 어떤 삶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인가...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삶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유신론 사상이 배이게 되는 거에요. 그의 삶의 모든 방면에 있어서 온전해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자의 삶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