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날 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시 15:1-5).
이것도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의 시인데 교훈적인 시죠. 시인은 1절에서 여호와의 장막과 성산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며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인가라고 말합니다 이 성산이라고 하는 거룩한 산이죠 그거는 어제 말씀들인 바와 같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시온 산지를 의미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성전은 성소 혹은 성전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맨 처음에 장막이라고 나오고 뒤에 성산이라고 나오는데 성산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분지죠 그리고 장막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거죠 성전을 가리키죠. 성전 그래서 이 성전이 다윗시대 까지만 해도 성전이 아직 지어지지 않고 솔로몬 시대 때 지어지고 그 때까지는 이제 성막이었죠. 그래서 성막이 저 멀리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때부터 시작해서 이동을 하게 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상당히 긴 세월동안 이 성막이 이제 그 가나안 땅에서 움직입니다. 그렇게 되게 되는데 후일 이제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지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죠 어쨌든지 간에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성막 성막 장막 그리고 그 다음에 성산 이것은 앞에 나오는 성막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고유한 장소를 가리키고 성산은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고유한 장소 후일에 예루살렘이 될 그 장소를 에워싸고 있는 그 산지를 가리키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아마 이 시를 다윗의 시를 이해할 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어요. 장막이 하나님께서 여기에 멈춰라 그러시면 제일먼저 장막이 펼쳐지고 장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들이 진을 쳤어요. 장막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임재를 상징하는 징조가 그 장막 위에 아주 선명하게 나타나죠. 그래서 불기둥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이러한 장막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산은 아마 하나님과의 장엄한 만남이 이루어졌던 시내산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다음에 제일 먼저 도착한 시나이 반도에서 이제 이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가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당히 긴 기간동안 머물면서 1년 가까이 머물면서 거기에서 은혜를 받고 애굽에서 묵었던 구습들을 다 떨쳐내버리게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의 공동체적인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 주의 장막에 유하며 이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산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죠 성산에 거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있는 그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최고의 축복에 대해서 지금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자녀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는 거죠 그의 위엄과 영광 앞에서 악인들은 두려워하고 떨어도 언약의 백성들은 그 임재의 영광 앞에서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복해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있는 장막에 그것도 잠시 들어가 있는게 아니라 거기 유해요 그래서 인제 장막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장막은 이제 한 18평정도 되는 그런 작은 장막이었어요 근데 이제 맨처음에 장막들에서 번제단과 모든 것들을 지나서 들어가면 성소가 나오고 6평정도의 방이 나오는데 그게 지성소에요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딱한 번 들어갈 수 있는데 거기에서 그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보는 그 가운데 죽는 경우가 발생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임재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의 근원이고 영광이지만 하나님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심판의 영광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염두해 두고 이 시인이 여호와의 장막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계속 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여호와의 성산에 올라 하나님의 임재와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노래하는 거죠.
그러면서 2절서부터 마지막 절까지 이제 이런 사람이어야 된다 하고 쭉 이야기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것은 하나하나 이런 삶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요 2절서부터 마지막 절까지 나오는 것은 구체적인 삶인데 이웃을 향하여 신의를 지키는 삶이에요 이웃을 향하여 신의를 지키는 삶인데 그 신의라고 하는 것이 이웃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신의에요 여기에 나오는 쭉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함 보세요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잖아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 삶속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이게 뭐냐하면 이것을 다 뒤집으면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 이웃에게 그러면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겠죠 그러면 이웃에게 선을 베풀기만 하면 그 사람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과 마주할 수 있습니까 그 얘기는 아니구요 그 얘기가 아니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웃에게 베푸는 이웃을 향한 이 선의의 이 아름다운 삶은 이웃을 향해 베푸는 이 선의의 아름다운 삶은 이웃에게 베푸는 이 선의적인 삶은 그러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 나는 자연스런 삶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뿌리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만약에 뿌리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이렇게 이웃을 향한 말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사랑 이런 것들은 열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예화) 그러니까 어 나무가 있는데 교회 바깥에 단풍나무가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그 지금 교회 마당에서 막 그 은행이 막 떨어지더라구요 더 익어야 되는데 막 떨어져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니까 떨어진 은행 알들을 실로 정성껏 단풍 나무에 아주 감쪽같이 매달았다고 해서 그 단풍나무가 은행나무가 됩니까 그럴 수 없죠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는 본질 자체가 틀려요 질 자체가 틀리다 이 얘기에요 틀리다 이 얘기에요 그렇게 매달 수는 있어요 근데 그 문제가 뭘까요? 항구적이질 않아 시간이 지나고 나면은 매달린 은행 알 은행 열매들이 시들어가겠죠 은행나무에서처럼 진액을 먹는 게 아니니깐요 그러니까 안되는 거죠 그러나 만약에 얼핏 보기에는 단풍나무처럼 키도 비슷하고 섞여있어서 잘 모르고 매우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그 나무가 은행나무면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반드시 거기서 은행 열매가 맺게 되어있는 거죠
(예화) 그 뷔페에 가면은 요새도 주나 모르겠는데 왜 그 무순을 샐러드로 이렇게 주잖아요 그게 참 신기합니다 그거를 하나만 딱 들어서 앞니로 살살살살살살 씹어서 그 맛을 보세요 그러면 꼭 무슨 맛이 나냐하면은 왜 그 무 매운 거 딱 잘라서 그 앞은 맛있는데 파란 건 맛있는데 이 뒤는 좀 맵잖아요 그 먹을 때 맛하고 똑같은 맛이 나요 모양은 연한 순 같은 거 연한 순으로 자란 그걸 보면서 무를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러나 동일 본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맛이 나는 거에요 동일 본질의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먹어 보면은 그런 맛이 딱 나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동일 본질의 맛이 나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오늘 여기에서 시인이 이러이러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그 성산에 오르고 주의 장막에 거할 수 있다 이거는 이런 일을 하러 가면 그렇게 된다 그런 뜻이 아니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니까 이 마음 속에서 이웃을 향한 인자한 마음이 생겨나는 거에요 그렇게 만드는 힘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만드는 거죠 이건 우리의 본성을 바꾸는 아주 위대하고 놀라운 힘이 있는 거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고 은혜가 하시려고 하는 방향에 내가 순종하고 나님의 은혜가 역사하고 은혜가 하시려고 하는 방향에 내가 순종하고 하는 이 일들의 반복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본성이 변화되어 가는 거에요 이웃을 향해 모자랐던 사람이 이웃을 향해 사랑이 많은 사람 그리고 이웃을 향해 정말 온유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변화되어 가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주님을 닮아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의 성실하심을 힘입어서 그래서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거에요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고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며 살아가게 되는 거에요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 가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거에요 하나님이 아무나 만나주시는 거 같지만 그러나 준비된 사람들의 마음에 찾아오셔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그 은혜를 소중하게 사용해서 자기 자신이 계속 바뀌는 사람 그리고 변화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 곁에 주님께서 오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삶과 그리고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에요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같이 한 번 기도하실 때 오늘 이제 일본팀이 아웃리치를 떠나고 북경 인도 그 다음에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금 다 떠나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놀랍게 붙드시도록 그리고 오늘 말씀을 의지하면서 우리 같이 한 번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