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대하는 자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9-10).
악을 행하는 자와 선을 행하는 자를 비교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와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를 비교합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악을 행하는 자의 반대말은 선을 행하는 자일텐데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 이러한 평행법을 통해서 우리는 악인의 한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의 특징이 뭐냐면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는 것,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지 않은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악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자기도 똑같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참으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시비와 선악을 가려주실 일이 있을것이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또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없으면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대를 내포합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이것은 떨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이는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인을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 악에 치우칠 뿐이라’ 라고 말씀 하셨잖습니까? 그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끊어질 때 그 때에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과 하나님을 향한 불평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절망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절망하면서 하나님께 불평하는 그것이 바로 기대가 끊어졌을 때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얘깁니다. 그러나 반대로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대를 할까요? 하나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오늘은 주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오늘은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저러한 상황에 처하게 하시지만 이 어려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까? 항상 가슴 설레는 기대감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끌려 다니면서 사는 길이 있고 인생을 스스로 이끌면서 사는 길이 있습니다. 원래 이 삶이라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말은 ‘살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삶 이런 것들은 모두가 ‘살다’라는 동사와 관계가 있는 거죠. 그래서 삶이라고 하는 것 그 자체가 결국은 자기가 인간으로써 자신의 삶을 직접 이끌 듯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삶입니다. 그러니까 일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사는 것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까 그 사람이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령이 된지라’ 했거든요. 결국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러한 믿음생활을 우리들이 영위해 나가는데 그 신앙생활 자체가 우리가 직접 살아가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거기로부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 삶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스스로 주인 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으로서 하나님을 따라오고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일매일 끌려가듯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인생이 끝나게 되는 것이며,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생명은, 참된 생명은 영혼의 생명이고 그 영혼의 생명은 결국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은혜의 힘이 아니면 우리들이 그렇게 자신의 인생의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삶을 이끌면서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 자기를 질질 끌고 다니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질질 끌고 다니고 하는 이런 식의 인생, 이런 식의 삶이 되는 것이며, 결국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기대하며 사는 그런 선한 사람들에 대해서 희망을 주십니다. 지금은 악인이 번성하는 것 같지만, 잠시 잠깐 후면 그들 중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너희들이 보게 될 것이다. 왜, 하나님이 그들을 깨끗이 쓸어버리신다. 깨끗이 쓸어버리시면 그것이 바로 선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결국 선한 사람들은 반드시 선한 마지막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러나 악한 사람들에게는 그 끝이 결국은 없는 것,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깨끗이 쓸어버리시는 것, 그것이 악한 사람들의 마지막 끝입니다. 그러니 성경도 모르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의 속담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자의 끝은 없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께 기대하는 삶입니다. 이런 곤경에서 결국은 나를 이끌어 건져내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결국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믿음생활이고 신앙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