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지하는 하나님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시 37:11-14).
시인은 욕을 당하는 이야기를 경험으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때로는 자신이 범죄하고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욕을 당하게 하신적도 있고, 그리고 또 믿음을 따라 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당연한 귀결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고 자기의 사명을 따라 살 때 존귀하게 하시지만 그렇지 못할 때 수치스럽게 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한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거기에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 거기엔 말할 수 없는 수치가 있었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처럼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지으신다 그런 뜻이 아니라 자기가 이 온 우주의 주인인 것처럼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인간이 죄를 짓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지막은 노예처럼 거기에 얽어 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인 것처럼 교만하여 죄를 짓지만 그 후에는 노예처럼 매이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운 영광도 함께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 안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복을 하나님 바깥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하나님의 놀라운 뜻,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이런 것들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이 여기에서 보면 첫 번째 경우라기보다 두 번째 경우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올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는데도 워낙 악한 사람들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으면 그들에 의해서 멸시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아주 치열한 멸시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욕을 당하고 그리고 고통을 당하게 되는 됩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과 같았느냐하면 파기와 같습니다. 깨어진 그릇이예요. 하다못해 양은그릇이면 깨어지지 않지만, 찌그러져도 아쉬운대로 쓰거나 아니면 국 퍼먹다가 찌그러지면 개밥그릇이라도 하든지 뜬물이라도 푸는데 질그릇이 깨어지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그것이 파기입니다. 질그릇이 있는데 뚝배기가 깨어졌다 어디다 쓰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만약에 쇠붙이라면 팔 수도 있고 온 구멍이 뚫어지면 떼워서라도 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어렸을 때 보면 ‘솥 떼우세요, 냄비 떼우세요’ 그러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기가 막히게 떼워줘요.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에 많이 쓰던 토기나 그런 그릇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죠. 사람들이 오히려 사기 그릇 같은 것들이 깨어지면 더 멀리합니다. 왜, 다치거든요. 그니까 그릇은 그대로 있을 때와 깨어졌을 때의 그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렇게 파기와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자기의 가치를 알고 이해해주고 존귀하게 여기고 이러던 사람들이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그리고 자신은 한없이 멸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 바로 그런 경험을 직접 했습니다.
한 나라를 영광스럽게 다스릴 때에 그 때에 많은 사람이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그를 높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통치에 복종했습니다. 범죄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멸시하기 시작하는 거죠. 멸시한 그 사람이야 하나님 앞에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다윗은 기름 부은 받은 자로써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은 함께 의논하며 저 사람의 생명을 빼앗자, 죽여 버리자 그렇게 의논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에게 그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은 환란이 아닙니다. 그렇죠? 돈이 많은 사람에게 작은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는 것은 환란이 아닙니다. 아주 큰 육체의 힘이 있는 사람에게 작은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환란이 아닙니다. 그 자신의 힘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란과 시련은 항상 자기가 있는 자원을 능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도 보면 힘이 남아있고 자기가 움직일 수 있으면 모욕하는 자들은 불러다 목을 치면 되고, 자기를 깨진 그릇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 가두면 됩니다. 자기의 생명을 노리기 위해서 해치려는 자들은 모두 쓸어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죠. 그럴 때 그것이 환란이라는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수시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련, 환란, 어려움 이런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두십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시련입니다. 연단입니다. 고난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성경구절하나가 떠오르면서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감당할 시험 이외에는 우리가 당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건 우리 홀로 있을 때에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을 고려할 때 감당할 시험이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돈을 써도 능력껏 써야지 자기는 늘 감당할 능력도 안 되면서 돈을 쓰면 파산 하는 것입니다. 파산하면 어떻게 됩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면 어떻게 되죠?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써의 존귀함을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파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은 능력이 없지만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럽니까? ‘시험을 당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거나 혹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감당할 힘을 주시는 것을 고려하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우리에게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어떤 사람들을 자기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많이 주신 사람일수록 이런 상황에 자주 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서에서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고난 가운데 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는 삶의 방향이 올바로 정해지지 않으면 그 많은 능력이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이루는데 이바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능력을 많이 주신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할 일이 많게 하시니까 결국은 고난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그런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게 능력이 많으면 아주 힘들게 할 수 있는 일도 쉽게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많이 주시면 다른 사람이 몇 달을 걸려도 못 할 일을 단 몇 일만에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난이 덜 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능력이 많으면 하나님이 고난을 더 많이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능력 때문에 편안하게 살게끔 내버려 두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안하시면 하나님 의지 합니까? 의지하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그렇게 깨어지며 순전하게 살았던 사람도 정말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 보세요. 싸움에 나가면 늘 이기는 장군이었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한 깊은 비밀을 알고 있는 그런 영성가였죠. 그런 것들을 경험해도 말로 풀어내는 것은 별개였는데 이렇게 많은 시를 썼으니 저술가였죠. 거기에다가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었죠. 나라를 탁월하게 다스릴 수 있는 행정가였죠. 무엇하나 어쩌면 그 모든 재능을 한 인간에게 이렇게 몰아주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하셔야 할 필요가 있었겠죠. 그래서 어쨌든 자기 깨어짐과 끊임없는 참회 속에서 인생을 살아왔는데도 교만했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이 금하신 인구조사도 하고 이렇게 해서 영광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 마음이 하나님을 더 많이 붙들게 되는 은혜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면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을 수 있는 그 일이 자기의 영혼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일 때 기도도 잘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가슴에 다가오고, 그리고 하나님이 한없이 소중해 보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꼭 붙들고 의지하고 싶은, 눈물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