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찾는 자들
“[다윗의 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시 24:1-6).
많은 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행동들을 하려고 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감격을 이후로 오랫동안 유지하며 사는 자들은 더 소수입니다. 그렇듯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은혜를 유지하는 신앙의 삶은 더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전 인생의 길을 돌이키는 것, 그것을 기초로 하나님을 좇아 살아가는 삶을 인생의 비전으로 삼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복락을 누리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신의 전 삶을 돌이키는 회심과, 그렇게 받게 된 은혜를 보존하는 회심의 보존이 교회의 사명인 것이지요. 회심과 회심의 보존을 위해 교회가 성도들을 돕고, 성도는 그 도움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는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부유한 것, 연약하거나 건강한 것, 지위가 높거나 낮은 것 등은 삶의 양태일 뿐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속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알게 됩니다.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평화를 회복하는 회심, 그것을 유지하며 사는 보존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토록 중요한 신앙의 본질,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잘 하지 못할까요? 이에 대해 본문은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 성경은 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경험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산이 그랬고,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시내산이 그렇습니다. 이렇듯 ‘거룩한 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나주기로 지정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산에 오를 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산에 올라야 하는데, 성경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산에 오를 자는 제사를 드리거나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과 그의 실제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곧 하나님의 산에 오를 자는 실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그의 마음이 삶에 그대로 적용된 자들을 말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러 나올까요? 전심으로 당신을 의지하는 자, 전심으로 당신을 찾는 자를 하나님은 기쁘게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그 간절한 소원을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과의 만남이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삶의 변화, 간절한 소망이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