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시 25:5-7).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의존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곧 자기의 가는 인생을 지도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보다 더 잘 아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그 도움을 받은 대로 기꺼이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은 ‘진리’로 자신을 지도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시인이 진리를 따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동시에 그 진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라고 나타났을 때에는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어떤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 계획과 의도를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려면 바로 이 진리를 필요한 것입니다. 시인이 시119편에서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깜깜하고 어두운 길이라 할지라도 환하게 비춰주는 빛이 있을 때에는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가 우리 인생의 길을 비춰 줄 때에 우리는 어려움 없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인생 가운데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 근본을 캐들어 가보면 그 속에는 언제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무지가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진리를 깨닫는 자는 인생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 그 터널의 길이를 알고 지나는 자와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지나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의존하면 할수록 더 잘 깨닫게 되고, 교만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게 됩니다.
이어서 시인은 또 고백합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자하시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자비로운 분이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소원을 비는데 시인이 소시 적에 지은 죄를 기억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지난날에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았을 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또 다시 진지하게 다시 이를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할수록, 사랑하면 할수록 자기가 그런 사랑 받기에는 얼마나 합당하지 못하는 죄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깊이 회개하며 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따라가는 주님의 자녀의 모습을 이 시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소시 적의 많은 죄들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따라 관대하게 대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임을 늘 고백하며 삽시다. 그 속에서 우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은혜 베푸십니다.